이즈음 나는 일상 속에서 행복한 시간 한 조각을 떼어내 남 몰래 즐기고 있다. 그것은 이 곳 해인사 깊은 곳에 위치한 경학원經學院 돌계단의 댓돌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 경학원은 경전을 공부하는 학인 스님들이 모여 사는 궁현당窮玄堂 안쪽에 자리하고 있어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로는 드물게 팔작지붕에 연화초蓮花草 앙설仰舌의 공포로 마음껏 멋을 냈으나, 이제는 그 장엄함마저 세월에 흘려 보냈다. 이렇듯 은은히 묻어나는 기품과 멋스러운 이 곳으로 나는 사시 공양을 끝내고 읽을거리 들고 슬며시 찾아든다.
‘무無 자字 화두를 들고 3년여 동안 죽과 밥으로 두끼 공양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자리에 앉지 않았다. 피곤할 때에도 다른 곳에 기대지 않고 밤낮으로 이리저리 거닐었다. 그러나 늘 혼침과 산란의 두 마구니가 곁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중략… 그 병의 근원을 살펴보니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다만 의심이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 내가 경학원의 댓돌 아래서 펼쳐든 고봉高峰 화상의 〈선요禪要〉라는 책의 한 대목이다. 나는 잠시 이 대목에서 옛 조사 스님의 구도의 간절함과 낙처落處를 깊이 새기려 애쓴다. 그러나 경학원 기둥을 타고 내려와, 내 등을 고요히 짚고 선, 따사로운 햇살의 유혹에 못 이겨 자꾸만 고개를 꾸벅거리게 된다. 여기서 큰스님과 어설프게 공부하는 게으른 납자와의 살림살이가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누군가가 이 장면을 본다면 “하모요, 옛 조사 스님의 말씀은 참으로 지당하십니다.” 하고 나를 일깨워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학원 앞마당에는 신발 끄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팔각 완자 살과 빗살무늬 살창에 다가선 차가운 실바람만이 이 납자의 살림살이 전모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정신을 가다듬어 두 눈을 크게 뜨니 갈바람이 낙엽 몇과 벗을 한 채 지나가고 있다. 이들이 돌계단을 지나 대문 밑으로 빠져나가는 솜씨는 여간 교묘한 것이 아니다. 저 바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저렇게 부지런을 떨며 가고 있는 것일까. 그 태생과 죽음을 알 수 없는 바람은 전생에 무슨 악연惡緣이 있었는지 오수午睡의 즐거움에 빠져 있는 나의 어깨를 툭 치고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휑하니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기어이 그가 남기고 간 싸늘함은 서서히 귓볼에서부터 감지되기 시작하여 손과 어깨와 무릎으로, 다시 온 몸을 장악하여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한다. 옷깃을 세워 막아도 본다. 하지만 늦가을 산사의 추위는 미꾸라지처럼 매끄럽게 내 방어벽의 빈틈을 파고든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도 보지만 내 꼴만 더더욱 우습게 될 뿐이다. 그렇다고 경학원의 이 행복한 자리를 포기하리만치 세력이 강력하지도 않다. 이 놈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형체도 없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나의 표피를 통해 뇌리까지 선명하게 각인시켜 놓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자리를 뜨려 하지만 늦가을 햇살을 포기하기에는 그 따사로움이 가져다준 행복이 너무 크다. 몇 번이나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한다. 책을 한 손에 든 채 옷깃에 얼굴을 묻고 엉덩이를 들썩이는 그 자세는 가히 볼 만한가 보다. 댓돌 기단에 부조로 새겨진 이무기뿐만 아니라, 어쩌다 지나가던 학인 스님까지 괴이한 듯 옆눈으로 힐끔 보고는 키득거린다. 꼴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햇살은 너무나도 따사롭다.
다시 추위에 얼어버린 몸을 추스리려고 하는데 문득 햇살이 얼음 송곳처럼 내 오후의 경계를 가르며 지나간다. 한낮에 햇살이 가져다준 따사로움과 시린 갈바람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는 누구인가?
급수탄두박소주急水灘頭泊小舟
절수뢰파자승두切須牢把者繩頭
맥연승단난회피驀然繩斷難回避
직득통신혈병류直得通身血流
물살 거센 여울목에 작은 배를 대려면
저 밧줄을 단단히 잡아 챙겨라
별안간 줄 끊어져 피하기 어려울 때
곧바로 온 몸에서 피가 솟구치리니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지귀성성착의의只貴惺惺着意疑
의도정망심절처疑到情忘心絶處
금오야반철천비金烏夜半徹天飛
온갖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단지 성성惺惺히 의심만
붙듬이 귀한 일이니
의심을 들고 분별 끊어진 곳에
이르게 되면
한밤에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 여기는 부처를 선발하는 곳이다. 궁현당 편액 옆으로 걸려 있는 ‘선불장選佛場’이라는 또 하나의 편액이 이를 증명한다. ‘이 곳은 수행하는 곳이니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문구가 문빗장에 선명히 걸려있는 이 곳에는 의심을 들고 있는 이만이 당당히 들어올 자격이 있다.
만萬은 하나에서 출발했고 하나는 만萬으로 인해 시작된 것. 둘은 서로를 경계로 존재한다.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빼앗아 버리면 다른 하나도 존재를 잃어버린다. 이 둘의 경계가 무너져 내렸을 때 차별의 분별상分別相이 끊어진 자리에서 저 홀로 존귀할 것이다. 여기가 한밤에 태양이 떠오를 자리일 것이다.……
이렇듯 분별하는 놈은 누구인가?
누구인가?……
비로소 의심을 들고 한없이 멈추어선 자리에 어느새 따사로운 햇살도 시린 갈바람도 숨어든다. 부처를 선발하는 경학원의 행복한 뜰에 늦가을은 그렇게 멈추어 있다.
돌계단 밑에서는 바람만이 저 혼자 책장을 넘기고 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나던 학인 스님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한참이나 바라보고 서 있었는 듯 차 한잔하자고 말을 건넨다. 말의 주인을 눈으로 찾아 확인하려고 하니 머리를 누비옷 속에서 꺼내야 했다.
오! 매寐인가,
오매일여寤寐一如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