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 가지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은, 자기가 믿는 종교에 대하여 한번쯤 크게 의심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극단적 쾌락주의나 금욕주의를 진리라고 믿게 만드는 오도된 교리를 가진 종교라면, 그 종교는 인간에게 참다운 행복의 길을 인도하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이 진리이고 거짓인가를 무엇보다 먼저 분명하게 가리는 일이야말로 바른 믿음을 가지는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번쯤의 의심을 거쳐서 이루어진 신앙이라면 깨달음의 바다에 더 빨리 이르게 되리라.
히말라야의 설산에는 실단이라는 집 없는 새가 살고 있다. 낮이 되면 실단 새는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이가지 저 가지를 옮겨 다니면서 즐겁게 놀지만 밤만 되면 오들오들 추위에 떨면서 결심을 한다.
“아이 추워. 내일은 반드시 집을 지어 따뜻하게 잠을 자야지.”
그러나 날이 밝으면 간밤의 고생과 다짐을 모두 잊어버리고 다시 노래하고 과일을 따 먹으며 노는 데 정신이 팔려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또 밤이 되면 어김없이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내일은 놀지 말고 일어나자마자 집부터 지어야겠다. 바닥은 단단한 것으로 하고 벽은 길상초를 바르고 지붕은 커다란 잎으로 잘 덮어서 좋은 집을 지으리라. 그럼 이 추위의 고통은 면하겠지.”
하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어제와 똑같은 반복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실단 새는 평생 동안 집 한번 지어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의 인생도 이 실단 새의 삶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괴로움이 찾아들면 이 한 고비 넘긴 다음 멋있고 튼튼하고 안락한 집을 만들어 살겠다는 결심을 하면서도 그 고비를 넘기면 다시 바깥경계를 쫓아 정신없이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럼 이와 같은 인생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절대자인 하느님에게 있는가. 부처님에게 있는가. 부모님에게 있는가. 아니다 〈나〉의 책임일 뿐이다.
나의 번뇌가 나 스스로를 흔들어 무상한 이 세상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일은 무엇이 만들어 낸 것인가? 바로 중생의 번뇌가 만들어 낸 세속의 일이기에 중생들은 쉽게 놓아 버리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저런 잔꾀를 내어 끝없이 계획하고 일을 저질러 버린다.
한 가지 예로, 본분本分에 충실하고 일을 열심히 하던 사람도 돈이 생기면 이것으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쓸까 하면서 끝없는 궁리를 펴게 된다. 평소 돈을 벌면 멋있게 쓰리라 결심했던 사람도 돈이 생기게 되면 이 돈을 한번 굴려서 더 큰 돈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번뇌의 일종인 꾀는 간사하기 그지없어 아무리 ‘이것만 하고 ○○를 해야지’ 하고 결심해 보아도 이 꾀를 당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로 하고자 한다면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특히, 욕심과 허망한 탐욕, 그리고 번뇌 망상을 잠재우는 일은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시작해야 한다. 일어나는 번뇌 망상을 쫓아가지 말고 마음의 고삐를 잡아 본분으로 돌아가서 살아야 한다.
한량없는 세월과 다함없는 시간을 불교에서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 표현한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중생의 업력은 허공과 같이 광대하고 시간과 같이 끝이 없어서 어느 때 성불할지 기약할 수 없다는 말이다.
중생은 시작도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나고 죽고 하여 생사의 바퀴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기에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 한다. 삼계와 육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중생의 어지러운 마음은 끝없이 반복되는 생사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 돌이켜보면 오늘의 우리의 모습이나 사회적 위치, 빈, 부, 귀, 천, 개성, 기호 등은 저 끝없이 펼쳐지는 윤회의 흐름에서 조금씩 조금씩 익혀온 그 옛날의 습성과 과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생은 이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 끝없는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기란 참으로 멀고 먼 것이다. 과거 장엄겁 전 위음왕불 때부터 현겁 사바세계의 석가모니 부처님 시절에 이르도록 한없는 불보살님들은 과거 한량없는 세월 동안 복과 지혜를 닦고 어리석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저 모든 훌륭한 어른들도 옛날에는 우리와 다름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깊은 신심으로 인해서 오늘날에 불보살이 된 것이다. 깊은 신심이란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에 따른 진지한 실천행을 말한다.
《화엄경》에서 부처님은 ‘심불급중생무차별心佛及衆生無差別’이라고 말씀하였다. 우리의 마음과 부처님과 중생은 모두가 한 뿌리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일으킬 때 모든 불자들은 비로소 보리심을 내어 모든 불보살님과 같이 미래의 중생을 구제하는 고귀한 보살행을 자연스레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신앙에 의하여 격류를 건너고
근면에 의하여 생사의 바다를 건넌다.
정진에 의해 모든 괴로움을 뛰어넘고
지혜에 의하여 청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