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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푸는 자가 마음을 비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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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이정구 2002년 12월 250호
필자는 한동안 등산에 열을 올리면서 명산을 찾아 산사를 둘러보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았었다. 필자가 그 때마다 한결같이 느끼게 된 것은 심신의 평온함이었다. 대개의 경우 사찰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산수가 수려하여 세속의 어지러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하여 주었다.

그러나 도심 속의 사찰을 찾게 되면 분위기가 완연히 달라진다. 도시는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도시와 도시간의 경계가 불명할 정도로 외곽으로 마냥 확장되어 가다 보니 한 폭의 그림과 같던 산사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도심 속의 사찰 주변에 주택이 연접하게 된 모습을 보면 더욱 삭막함을 느끼게 된다.

필자가 수년 전 공직에서 물러나 변호사 개업을 하고 나서 일에 쫓기다 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산사를 찾는 기회가 자연히 줄어들게 되었고, 필자가 내자와 함께 젊은 시절부터 다니던 서울 외곽에 있는 조그만한 사찰을 가끔씩 찾아가게 되었다. 그 사찰은 워낙 규모가 작아 사찰 경내가 협소하였고 불자들이 많이 모이면 대기할 만한 충분한 공간이 부족하여 많은 불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수년 전 주지 스님이 새로 부임하여 사찰의 부지에 대한 경계측량을 하여 본 결과 상당한 면적의 사찰부지가 무허가 건물에 의하여 잠식되어 있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그 주지 스님은 필자를 만나 상담을 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확인한 필자는 비록 규모는 작은 사찰이지만 전통사찰의 부지가 아무런 명분 없이 잠식당하여서 아니 된다는 점에 공감을 하게 되어 이를 복원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필자가 그 사찰의 소송대리인으로 무허가 건물주와 세입자를 상대로 건물철거, 대지인도 및 퇴거 청구소송을 한 끝에 승소판결을 받았고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부터 발생하였다.

무허가 건물주가 세입자로부터 받아 이미 사용한 전세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반환하려는 의사를 보이지 아니하고 승소판결을 받은 사찰측에서 그 전세금을 부담하여 주지 아니하면 건물철거와 대지인도에 응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었다.

물론 무허가 건물주의 그러한 주장은 법률적으로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부당한 주장에 불과하다. 무허가 건물주가 진정으로 자금이 없어서 세입자에게 피해를 주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러한 반응을 보였다면 그런대로 이해가 가고, 그를 도와 주는 것이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 되기도 하리라 믿는다.

주지 스님은 무허가 건물주에게 그가 세입자로부터 받은 전세금 전부는 아닐지라도 불자들의 후원으로 상당한 금액을 지급하고 무허가 건물주는 자진하여 건물을 명도하고 대지를 인도하겠다는 내용의 합의서까지 작성하였다. 그러나 중생의 재물욕은 끝이 없는 것인가?

무허가 건물주는 철거하기로 합의한 건물의 대문을 수리하면서 지분권이 남아 있다고 트집을 잡아 건물철거를 방해하였다. 주지 스님과 필자는 그가 보인 이와 같은 행태가 추가적인 금전 지급을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것임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법원에 무허가 건물주의 비용부담으로 건물을 철거할 수 있게 하여 달라는 내용의 대체집행 결정 신청을 사찰 명의로 하게 되었고, 그 심문과정에서 법원의 조정으로 무허가 건물주가 건물철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는 선에서 사찰측이 대체집행 신청을 취하하여 사건을 완결시키고, 주지 스님은 사찰의 비용부담으로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고 잠식되었던 사찰부지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무허가 건물주는 자신의 과도한 욕구가 부당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사찰측은 중생에게 끝내 자비심을 베풀게 되었으니 이 사건은 부처님의 자비심으로 재물에 눈이 어두웠던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한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그런데 어리석은 중생이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심을 깨닫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문득 필자의 뇌리가 혼란스러워진다. 법대로만 해결―? 그것도 하나의 방법은 되겠지!

그러나 그것은 사바세계의 법에 지나지 않거늘―! 욕심을 부리는 자에게 욕심을 버리라고 강요하여 보아도 되돌아오는 것은 저항뿐일 터인데―!

앞에서 소개한 사건에서 상대방은 쉽사리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도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 까닭은 어디에 있었을까? 다시 곰곰이 깊은 상념에 잠겨 본다.

이 때 문득 뇌리에 번쩍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하! 바로 그것, 베푸는 자가 마음을 비운 때문이었다.

베푸는 자가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어리석은 중생에게 베풀 수 있었고, 마음을 비우고 베풀었기 때문에 그 순수한 자비심이 재물욕에 눈이 어두웠던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한 것이었다. 이제 비로소 뇌리가 맑아짐을 느낀다.

이제 필자도 산사를 찾아가 한번 마음을 비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