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중생에게도 희망은 부처다.
다가올 삼동三冬의 까마득한 추위도 새해 봄날 작은 햇살을 기대하므로 기꺼이 견뎌지며, 오늘의 비바람과 눈보라라도 곧 보게 될 맑게 갠 하늘에 의지하여 이겨낼 수 있다. 한밤중보다 더 춥고 어두운 새벽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이제 곧 동쪽 하늘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므로 짙은 절망감이라고 할지라도 실낱 같은 희망으로 이겨낼 수 있다.
백제의 무왕이 용화산龍華山(지금의 익산시 금마면)을 택해 미륵사를 창건한 것도 까마득한 엄동嚴冬 속 짙은 어둠과 같은 시절이었다. 백제는 다시 한 번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자 하였으니 왕은 백성들에게 그 날아오를 자리가 어디쯤인지 알려야 했다.
하루는 무왕이 왕비와 함께 사자사獅子寺로 가고자 용화산 아래 큰 못가에 이르니 미륵 삼존이 그 속에서 나타나므로 왕이 수레를 멈추고 치성을 드렸다. 왕비가 말하기를 “여기에 꼭 큰 절을 짓게 하소서. 저의 진정한 소원이외다.” 하니 왕이 이를 승낙하고 지명 법사를 찾아가 못 메울 일을 물었다. 이 일은 지명 법사를 통해 세 탑과 세 금당으로 하룻밤 만에 이루어지니 신라의 진평왕이 각색各色의 장인들을 보내어 도와 주었다고 《삼국유사》에 전하고 있다. 그 때 이미 백제는 신라의 황룡사탑을 세우는 일에 아비지라는 장인을 보낸 일이 있으니 서로 정치적으로 등을 맞대고 있던 신라와 백제가 불법에 관한 일을 나누었다는 사실이 더없이 아름답다.
하룻밤 만에 이루어졌다던 그 세 탑과 세 금당은 이제 서쪽에 앉았던 석탑 하나만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그 탑마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반쪽만으로 그 때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제 와서 그 자세한 내력이야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무왕이 창건한 미륵사는 장차 미륵불이 하생下生할 자리를 미리 마련했던 곳이며, 그 미륵불의 하생이 백제의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온 백제인들의 원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석가모니 열반 후 오십 육억 칠천 오백만년 되는 해 미륵 보살이 부처의 모습으로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하생할 일이 그 언제가 될 것인가 짐작조차 못할 일이지만 그들이 찾고자 한 것은 미륵불이 들고 있는 희망이라는 용화수 가지가 아니었을까.
엄동을 지나는 중생의 마음이야 천년 전의 백제인이건 지금의 중생이건 무엇이 다르랴. 실낱같은 희망으로 부처를 삼을 때 두터운 어둠을 기꺼이 이겨낼 수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