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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못난 놈이라도 -혜산 / 내소사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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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박원자 2002년 10월 248호
길면 10년이라고 생각했다. ‘스승이 가지고 있는 사대육신을 나도 다 가지고 있으니, 아무리 늦어도 10년 노력하면 이루지 않겠는가’ 하고 삼십대에 산문에 들어온 것이 어느덧 칠십이라는 세월에 이르고도 끝을 내지 못했다. 돌아보면 스승의 백분의 일 정도의 재목도 되지 못했으니, 만용을 부렸던 게다. 이를 생각하면 스승에게 부끄럽고 부처님께 죄송스럽기 그지없다.
꿈 많은 청소년 시절부터 “생각하는 이 놈, 의심되는 이것, 우주 생명의 본체인 ‘나’라는 이것은 무엇인가”를 깊이 의심했다. 마음의 병을 앓았던 것이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이를 의심하다가, 우연히 어느 절에서 해안海眼 스님이 쓰신 《금강경강의》를 읽었다. 서문을 읽는 순간 가슴을 치는 무엇을 느꼈고, ‘무유정법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有定法阿褥多羅三三菩提’의 대목에 이르러서는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이 이거다’ 하는 느낌이 왔다. 그 책을 만난 그날 밤새도록 《금강경》을 다 베껴 쓰고 두 번을 다 읽었다. 그리고 해안스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의 주인공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었던 것이다.
한 달에 한두 번, 근 삼년 간 편지가 오가는 동안 스님께선 한 번도 답변을 거른 적이 없었으니, 스님의 공부하고자 하는 후학에 대한 정성은 가히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거듭되는 질문에 어느 날 스님께서는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야 비로소 자성自性을 볼 수 있다’는 요지의 게송을 보내셨다.
그 게송에 대한 질문을 다시 보냈더니 마침내 하얀 백지 한 장을 답장으로 보내셨다. 그 백지를 대하는 순간 그간 묻고 답했던 모든 말들이 일시에 허공으로 사라져버리고 다만 깜깜한 절벽에 부딪치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더 물을 것도 없고 물어보아도 모두가 소용없는 알음알이 문답일 터이니, 다만 ‘이것’에 대한 의심덩어리뿐이었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오직 의심할 뿐, 반 년을 벙어리가 되고 귀머거리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6개월 만에 다시 ‘그간 병을 앓았습니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글월을 올립니다.’ 하는 편지를 드렸더니, 스님께선 곧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오셨다.
“모든 것이 병 아닌 것이 없다. 병을 앓고 있으면서 그를 모르면 약을 쓸 수 없으나 병을 앓고 있는 것을 알았으면 그 병에 대한 처방은 있다. 그에 맞는 약만 먹으면 된다.”
그 말씀에 귀가 번쩍 뜨였는데, 스님께선 편지 말미에, ‘서래선림西來禪林에서 21일 특별정진법회가 있으니 참석하라’는 전갈을 보내셨다. 그렇게 나의 스승과 첫 대면을 하게 되었고, 출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정진이 끝나고도 집으로 내려가질 않자 스승께서 ‘왜 안 내려갔어?’ 하셨다. ‘일을 끝마쳐야 내려가지요.’ 하고 그 다음날 그 곳에 있던 젊은 스님을 졸라서 바로 머리를 깎았다. 그렇게 일과 가족을 떠나 출가했다. 21일이면 문제 없이 생사일대사를 마칠 것이라 믿고 특별정진에 참석했던 것이 평생이 되고 말았다.
나의 스승 해안 스님께선 행자인 나를 오래 데리고 있던 제자처럼 대하셨다. 그런 스승 밑에서 《금강경》을 칠일 만에 외웠고, ‘이 뭣고’ 화두에 매달려 살았다. 《금강경》을 외우지 못하면 당신의 상좌로 삼지 않으셨으니, 스님의 상좌가 되려면 《금강경》을 외우는 것은 절대로 필요한 일이었다.
요즘 절집과는 달리 그 시절엔 하나부터 열까지 지급자족해야 하는 생활이었으니, 밥해 먹으며 김매고 나무하고 화두 정진하고 그랬다. 스승과 제자는 물론 사부대중이 혼연일체가 되었던 참으로 값진 시절이었다.
나의 스승은 대중을 지도함에 지극히 고구정녕苦口하셨고 말할 수 없이 자비로우셨다. 과문한 탓이겠으나 나는 내 스승처럼 그리 후학을 가르친 분은 뵙지 못했으니, 입산한 지 근 40여 년이 흐른 지금, 마음에 가장 큰 기쁨은 나의 스승 해안 스님을 만나 그 분 밑에서 공부한 일이다.
스님께선 그리도 자비로우셨으나, 공부함에 있어 방심하는 것엔 조금도 용납하지 않으셨다. 대중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예리하게 관찰하셨으니, 잠시라도 방심하는 기색이 있으면 금방 꿰뚫어보시고 갑자기 질문을 던지거나 벽력 같은 할을 하셨다. 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행자, 스님들 할 것 없이 조금 방심하는 기색이 보이면, “그렇게 하다가는 어느 귀신이 잡아가는 줄도 모르게 죽는다. 항상 ‘나’를 놓지 말고 살아라.”는 말씀을 꼭 하시곤 했다.
서른이 넘은 늦깎이였으나 스승의 고구정녕한 가르침 속에서 오로지 화두수행에 몰입해 있었던 세월이었고, 스승과 사부대중이 혼연일체가 되었던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대중방 위 머릿방에서 공양을 하고 계신 스님의 수저소리만 듣고도 얼마만큼 잡수셨나를 알았고, 지팡이 소리 하나에도 현재 심기를 읽을 수 있었으니, 잠시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 떠나질 않았던 것이다. 눈동자 한 번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고, 마음 한 번 어지러이 하지 않았던, ‘공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화두 하나에 몰입해 있던 행자시절이었다.
나의 스승은 일찍이 학명鶴鳴 선사를 참參하여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뚫으라’는 화두를 받고 생사를 돈망頓忘한 칠일용맹정진 끝에 본래면목을 찾고 평생의 살림살이로 삼았던 분이다. 보살의 대원大願으로 이 땅에 오셨고 가난한 일생을 통하여 선정禪定을 벗으로 하고 대중교화와 후학지도에만 혼신을 다하셨던 선지식이다.
불법에 귀의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는 선지식이다. 생사를 해탈할 수 있는 체득體得된 지혜를 얻을 수 있음은 선지식과의 만남에 있기 때문이다. 체득된 지혜가 없는 사람은 가다가 돌아서고 가다가 돌아서기를 반복하지만, 체득해서 아는 사람은 알고 있는 것을 곧바로 실천하며 동요함 없이 한 길로 매진한다.
나는 이 생에 출가자가 되어 체득된 지혜를 얻은 선지식을 만나 그분이 걸어간 길을 가려고 노력했고, 앞으로 남은 세월 또한 그리할 것이다.
성불成佛, 어쩌면 너무 멀고 막연한 길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천 년 된 동굴의 어둠도 성냥불을 긋는 한 순간에 밝아지듯, 오랫동안 쌓아온 우리들의 무명無明 또한 자신을 찾고자 정진하는 어느 한 순간에 밝아질 것이다.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바로 성불할 직전에 와 있다고 생각해보라. 사실은 성불할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와 있건만, 우리가 그런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저 옛날, 대학에서 공부할 때 들었던 학장님의 말씀을 잊지 못한다.
“꿈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 아름다운 꿈은 추적하는 자의 손에 기필코 잡히고야 마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다. 일념으로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꿈은 없다. 제도 속의 승려보다 부처님의 법인을 잇는 참다운 불자가 되려고 단기간으로 잡았던 세월이 한평생의 긴 세월이 되어버렸다. 나의 스승 해안 스님께선 평소, ‘아무리 못난 놈이라도 칠일이면 깨칠 수 있다. 내 경험에 의해 장담한다’고 하셨으니, 맨 처음 21일에 깨치지 못한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분하여 머물렀던 세월이 오늘에 이르렀다. 참으로 생각할수록 원통하고 분하다.
그러나 나는 자신있다. 그리고 곧 나 자신을 찾으리라 확신한다. 이제 곧, 그간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명실공히 운수납자로 돌아가 대중과 함께 정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스승 밑에서 ‘공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매진했던 저 초발심시절로 돌아가 불조의 혜명을 잇고자 확철대오하리라 다짐하고 있으니 무엇이 두렵겠는가. 남은 세월, 정진하다 죽으면 여한이 없으리라. 그리고 나의 스승님께 한없는 감사를 올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