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의 한 산내 암자의 서각書刻 작품 가운데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서 가로 19cm 세로 105cm 규격의 송판 두 장에 주련柱聯 형태로 ‘은거부하구隱居復何求 무언도심장无言道心長’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것이 있다. 주저없이 일필에 힘차게 써내린 이 글씨에는 추사秋史의 필의筆意가 농후한데, 골육骨肉이 조화를 이루고 결구結構가 여유로워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스러운 느낌이 들게 한다.
이 작품의 둘째 판 좌측 하단부에는 전서篆書로 ‘만파사문萬波沙門’이라는 정방형 낙관이 새겨져 있는데, 만파는 이 글씨를 쓴 의준誼俊 스님의 호이고, 사문은 출가한 승려를 일컫는 말로 비구比丘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해인사 경내로 드는 해탈문解脫門의 편액 역시 이 스님의 필적筆跡이다.
만파는 조선 후기에 해인사에 계셨던 스님인데, 이 스님에 대해서는 1963년 해인사에서 간행한 《해인사지海印寺誌》(金雪醍 編纂, 法寶院 發行) <고승> 조에 “만파萬波 의준誼俊. 1860년경의 인물. 글씨를 잘 썼으며 …… 추사가 스님의 글씨를 항상 칭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만파 스님의 이 글씨는 곧 송나라 때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의 시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 5언 절구 12수 가운데 세 번째인 ‘은구재隱求齋’의 전구轉句와 결구結句를 쓴 것인데,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신창임영개晨窓林影開 새벽 창에 숲 그림자 열리고
야침산천향夜枕山泉響 밤중 베갯머리엔 샘물 소리 울리네.
은거부하구隱居復何求 은거함에 다시 무엇을 구하랴
무언도심장無言道心長 말없는 가운데 도심이 자라나네.
흔히 산사의 주련이나 편액은 불경의 구절이나 고승의 시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인 까닭에 혹 이 주련을 중국 고승의 시구로 아는 스님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해인사에 송대宋代의 대표적 유학자인 주자朱子의 시가 판각되어 있음은 자못 특이한 경우이다. 옛 승려들은 불경을 공부하는 틈틈이 당송唐宋 시인의 시를 외우곤 했는데, 만파 역시 불승이었으나 유학자의 시도 섭렵하여 서예를 통해 능히 그 교양을 발휘했던 것 같다. 해탈문을 지나며 옛적 만파 스님의 운치를 상상해본다.□
*필자 주 : 본문의 ‘隱居復何求’가 《주자대전》에는 ‘隱去復何求’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