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 때 스님들의 수행도량에서는 그믐날과 열나흗날 때마다 목욕하고 산행하는 날로 정해져 있는데 이것은 재가선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영남의 어느 큰 재가선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때는 하안거 어느 날, 아이들 소풍가는 날처럼 기다려지는 목욕·산행하는 날인데 공교롭게도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사찰의 최고 어른 스님은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 재가선객들은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는가 싶어 선원으로 시찰(?)을 나가 보았다. 선원이 조용하여 쉬는 날에도 가행정진하나 싶어 문을 열어 보니 젊은 처사 한 사람이 방을 지키고 대중은 아무도 없었다. 큰스님은 궁금해서 젊은 처사를 불러 물었다.
- 비가 많이 오는데 대중은 다 어디 갔나.
- 물 좋은 산에 갔습니다
- 아니! 비가 오는데 웬 산이냐?
그리고 여기 산보다 물 좋은 산이 또 어디 있단 말고?
- (젊은 처사는 머리를 끌쩍이며)비가 올 때 가는 산이 다 있는기라예.
- 아니! 비가 올 때 가는 산이라니?
- 큰스님도 참. 자! 보세요. 부산·마산·울산·양산…
-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서며 큰스님은 한 수 거들었다)
산은 산이되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되 물이 아니구먼.
큰 스님이 공부하러 온 재가처사에게 삼천배를 시켜 놓고 절을 잘하고 있나 싶어 법당에 가보았다. 건데 절은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 스님이 시킨 삼천배는 다했나?
- 예. 다해 마쳤습니다.
- 아니, 시간이 얼마 안 되었는데 언제 다 했단말고?
- 큰스님도 참. 절을 꼭 시간이나, 숫자로 채워야 하나요.
일배一拜를 천배千拜 정성으로 세 번 절해 마쳤습니더.
- 그래. 알았느니라.
다음날 아침 큰스님은 어제 절한 처사에게는 앞으로 공양시간에 밥 세알만 담아주라고 언명했다. 그리고 처사에게 다가가서는 “밥 한 알을 천 알인 양 꼭꼭 씹어서 먹도록 해라”고 하니 처사는 그 다음날 도망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