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 지진, 화산, 태풍 등의 자연 재해가 많은 나라이다. 여름이 되면 쉴새없이 태풍이 올라와 뉴스에서는 24시간 태풍 진로 상황을 중계하곤 한다. 이러한 자연 재해 때문에 일본의 건물들은 늘 안전 진단을 받아야 하고 높은 건물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재해에 대한 대피나 교육을 받는다. 심지어는 유치원에까지 일 년에 몇 차례씩 소방차와 소방수 아저씨들이 직접 와서 화재와 지진에 대한 대피 훈련을 시킨다. 한 예로 몇 년 전에 우리 옆집에 불이 나서 나는 우왕좌왕하면서 경황이 없었는데 유치원에 다니던 우리 아이는 자기 장난감을 가방에 챙겨서 메고 멀리 집 밖으로 나가고 없었다. 그리고 지진으로 조금만 흔들려도 재빨리 책상 밑으로 들어가 버린다. 늘 유치원에서 훈련을 한다고 한다. 아이뿐만 아니고 무슨 경보만 울리면 몇 천명 몇 만명이 순식간에 움직여 인명 피해가 적은 것은 이러한 교육 때문인 것 같다. 이러한 자연 재해와 더불어 살아가는 일본인을 보면서 늘 지진도 화산도 없는 우리 나라를 감사하게 생각한다.
98년 여름의 태풍으로 교토와 나라에 있는 문화재가 많은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9세기에 세워진 무로오지 절의 5층 목탑 쪽으로 나무가 쓰러져 탑에 많은 손상을 입혔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복원되었던 사실은 유명하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일요일이다. 무로오지 절에 가려고 나섰으나 초행길이라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긴테쯔 야마토야기(大和八木) 역에서 갈아타고 무로오구지오노(室生口大野) 역까지 가는 길은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기차는 산 속으로 달린다. 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전나무 숲 산길을 20분 정도 들어가니 절이 나온다.
이 지역은 깊은 산 속과 계곡에 둘러싸여 있어 신이 사는 신령스런 땅으로 신앙되다가 8세기 말에 산악도량으로 무로오지 절이 창건되었다. 9세기 초 이후에 당堂과 탑이 정비되면서 산림수행의 도량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진언종의 사원 중에서 고야산高野山이 여자들의 참배를 금지한 반면 무로오지 절은 일찍부터 여성의 참배를 허락하여 여인고야女人高野로도 불리고 있다.
무로오가와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산문이 나오고 계단을 올라서면 정면에 금당이 있고 왼쪽에 미륵당이 있다. 금당은 2단의 석축 위에 정면과 측면 모두 다섯 칸의 아담한 건물로 9세기에 세워진 것이다. 문과 기둥의 주색朱色이 선명하게 남아있으며 지붕의 모양 또한 특이하다. 금당의 왼쪽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진언밀교의 법의法儀인 관정灌頂을 행하던 관정당灌頂堂이 나온다(鎌倉時代). 다시 왼쪽의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자그마한 5층 목탑(전체 높이 16.1미터)이 나온다. 이 탑은 무로오지 절에서도 가장 오래 된 건축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사진의 모델로 곧잘 등장하기도 하는 탑이다. 탑 뒤로는 길고도 긴 돌계단이 이어지고 그 주위는 아름드리 전나무 숲으로 원시림의 모습 그대로이다. 돌계단의 끝에는 구카이(空海) 스님의 상을 안치한 미에이도(御影堂) 건물이 있다.
무엇보다도 무로오지 절을 유명하게 하는 것은 금당에 안치되어 있는 불상이다. 본존인 석가여래입상(상 높이 234.8㎝, 傳藥師如來像)을 중심으로, 마주보아 오른쪽으로 약사여래입상(상 높이 164.0㎝)과 지장보살입상(상 높이 160.0㎝)을, 왼쪽으로 문수보살입상(상 높이 205.3㎝)과 십일면관음보살입상(상 높이 196.2㎝)을 안치하고 있으며, 그 앞에는 십이지신상이 일렬로 서 있다. 모두 목조로 채색이 되어 있으며 화려한 당초문양이 그려진 거신擧身 광배光背를 하고 있다. 먼저 본존인 석가여래상은 연화대좌 위에 시무외施無畏 여원인與願印을 하고 커다란 대의大衣을 걸치고 있다. 어깨는 넓고 가슴과 복부 부분의 볼륨이 잘 드러나 있다. 전체적으로 옷 주름은 가늘게 표현되어 있으나 특히 복부 부분과 양 대퇴부의 옷 주름이 모아져 있다. 지그시 눈을 아래로 내려뜨고 있어 눈썹 아래로 눈꺼풀이 넓게 자리잡고 있으며 입술은 윤곽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어 전체적으로 표정은 근엄한 편이다. 몸은 황금색으로 옷은 주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몸의 채색은 떨어졌으나 옷의 주색은 잘 남아 있다. 본존 광배는 다른 불상의 광배 문양보다 화려하고 채색이 잘 남아 있으며, 광배 외연부의 당초문양 사이로 화불化佛을 나타내고 있다. 지장보살상은 크기가 가장 작은 상으로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다.
광배 문양은 석가여래상과 같으나 상에 비해 광배가 확연히 커서 원래 이 상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왼쪽 끝에 서 있는 십일면관음상을 보면, 거의 등신의 크기로 예쁘장한 얼굴 때문에 금당의 상 가운데서도 많은 주목을 받는 상이다. 양 볼이 통통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작고 앙증맞은 입술도 일품이다. 화려한 장신구를 걸치고 있으며 채색도 잘 남아 있는 편이다.
좁고 낮은 금당에 이처럼 다섯 불상이 안치되어 있으므로 원래의 안치 장소에 대한 이론은 있으나, 한꺼번에 배관하면서 다섯 불상의 작풍을 비교해 볼 수 있으니 보는 이로서는 최고의 행복이다. 흔히들 다섯 불상 중에서 어느 불상이 좋으냐고 하면 대부분 십일면관음상을 들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중에 젊은 남녀가 오래도록 진지하게 보면서 재미있게 불상을 비유하고 있었다. 이야기인즉 일본에 유명한 남성 5인조 SMAP라는 그룹이 있는데 이 다섯 분의 부처님을 그 그룹의 멤버들에게 짝을 짓고 있다. 본존인 석가여래는 그룹 리더인 누구이며 가장 예쁘게 생긴 십일면관음상은 가장 잘 생긴 누구가 아니겠냐고 하면서…. 나름대로의 불상관을 이야기하고 있어 ‘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하고 감탄했다.
무로오지 절을 유명하게 하는 것은 사계절에 따른 아름다운 경관 때문이다. 봄의 매화꽃에서부터 산벚꽃, 가을의 단풍과 은행잎, 겨울의 눈이 내린 풍경 등은 무로오야마 산의 원시림과 아울러 영원히 남기고 싶은 관서 지방의 최고의 경치로 꼽힌다.
왕복 8번 이상을 갈아타는 먼길임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시간 없이 바로바로 전철과 버스가 연결되는 운은 있었으나 그 덕분에 밥 먹을 시간이 없어 하루종일 굶었다. 그래도 기다리는 것보다 굶은 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