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그네는 다시 부처바위 앞에 섭니다. 이번에는 북면입니다. 평생을 두고 경주 남산을 답사하면서,
특히 부처바위에 애착했던 고故 윤경렬 선생은 이 북면을 부처바위의 정면이라고 보았습니다.
부처님은 주로 남면南面하므로 삼존상이 새겨진 남면을 정면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또 협시보살, 비천상들, 공양하는 스님상들이 화려하게 본존을 에워싸고 있는 동면을
정면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텐데 윤경렬 선생은 이 북면을 정면으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하긴 북면의 장엄도 화려합니다. 바위 중앙에 활짝 웃는 모습의 부처님이 연화좌 위에 앉아 있고,
그 위로 천개天蓋가 새겨져 있습니다.
아래쪽에는 암수 한 쌍의 사자가, 부처님의 양옆으로는 특이하게도 두 개의 탑이 새겨져 있습니다.
7층탑과 9층탑입니다.
나그네는 왜 탑들이 부처님을 협시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탑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곳”이라는 고지식한 설명으로는 도무지 해답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문득 나그네는, 탑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자신의 무지를 깨닫습니다.
바위 위의 탑들은 호사스럽게 장엄되어 있습니다. 특히 9층탑이 그렇습니다.
층마다 처마 끝에 풍탁들이 매달려 있고, 노반부터 시작하여
복발, 앙화, 보륜, 수연, 용차, 보주 등 상륜부가 세세히 분간됩니다.
다섯 겹 보륜에는 또 수많은 풍탁들이 매달려 있어 나그네는 상상으로 풍탁 소리를 듣습니다.
이처럼 화려한 상륜부 위로 다시 2구의 비천이 천의天衣를 휘날리며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장엄의 화려함은 이 탑을 새긴 사람의 신심이 지극함을 보여줍니다.
어디, 이 마애탑 뿐이겠습니까?
여느 탑이라도 사리장엄구를 보면 그 화려함은, 신심의 지극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집니다.
신심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입니까?
얼마나 간절한 염원이나 원망願望이 있었길래 이같은 지극함이 있는 것입니까?
깃대를 일컬어,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라고 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혹시 탑을 일컬어, 어리석은 중생들의 염念이나 원願이나
또는 망望의, 간곡하고 애절한 표상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