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주제로 어떤 것을 다룰까 하는 것을 정해야 한다. 예전에 교계 신문기자 생활을 잠깐 하며 여기저기 개산대재 학술세미나를 취재하러 쫓아다니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개산대재 학술세미나에 대한 좋지 못한 상념도 따라왔다. 물론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그와 같은 세미나는 정말 기념 자체에 만족하는 수준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학술이라는 말을 붙이기엔 너무나 평이한 내용이거나 거창한 문구의 나열로 이어지는 주제발표와 그 격에 맞장구를 치며 함께 놀아나는 논평이 그렇다. 게다가 어디를 가든 왠지 매번 비슷한 학자들이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난 바쁘다는 생각에 소장 스님께 ‘그냥 개산대재 학술세미나 형식을 유지하는 정도로 준비하면 되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내가 잠깐 간과한 것이 있었다. 소장 스님은 세미나 광이라는 사실을. 소장 스님을 아시는 분들은 누구나 한 번쯤 “난 말이다. 그냥 이런저런 주장 하는 사람들 모아놓고 밤새도록 논쟁할 수 있는 그런 판을 벌려놓고 싶은기라.”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 분이다보니 마냥 밋밋한 학술세미나를 주최할까 한다는 내 말에 동의할 리가 만무했다. 그 순간 다시 그런 세미나를 보기도 싫어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고 스님과 함께 주제 선정에 골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인물, 사상, 문화재 등 다양한 소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유명해서일까, 아님 너무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서일까? 해인사는 전체적으로 많은 얘깃거리를 간직하고 있는 듯 하면서도 막상 뒤통수를 탁 칠 만한 그런 ‘꺼리’를 찾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우리 연구소가 아무리 연구를 해도 그 끝에 다다르기 힘든 ‘고려팔만대장경’을 주제로 다룰 수는 없었다. 이번 세미나는 해인사 개산대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인사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명하되 좀 구체적인 주제를 선정하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우선, 해인사 개산과 역사적 배경을 다루기로 했다. 이 부분을 빼놓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그 다음 성철 스님을 비롯한 해인사 관련 스님들이 근·현대 한국불교에 미친 영향 및 해인총림의 역할을 조명하는 연구도 채택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인물을 다루는 동시에 우리시대 불교를 점검한다는 의미에서 스님과 난 주제 선정 후 흡족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스님은 이 주제가 많은 논쟁 소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재미꺼리’를 찾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렇게 세미나의 처음과 끝을 담당할 주제를 선정하고 나니 이제 그 중간 부분을 채워줄 얘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뭐가 좋을까? 이런저런 연구소 일로 바쁘게 지내면서도 그 상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스님께서 한국화엄사상의 전개 과정에 분열시기가 있었는데 이와 해인사가 관련된 것으로 안다는 말씀을 꺼내셨다. 그래서 해주 스님의 《화엄의 세계》를 살피다 보니 ‘남악南岳과 북악北岳의 분열’이라는 작은 제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세한 내용은 없고 당시 남악과 북악의 논쟁을 선도했던 두 분 스님께서 그 분열 당시 해인사에 동시에 머물고 계셨다는 구절을 찾을 수 있었다. ‘이건 횡재다’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번뜩 스치고 지나갔다. 현재 상세한 내용이 없다면 이번에 찾아보면 될 것이 아닌가! 바로 해주 스님께 전화를 걸어 세미나 개최를 알리고 ‘남악과 북악의 화엄사상의 분열에 대해 주제발표를 해주십사’하고 요청했다. 해주 스님께서는 관심을 나타내시면서도 ‘워낙 관련 자료가 부족하다’고 한 발 뒤로 물러서신다. 그러면서도 역시 욕심을 내시며 해인사 관련 사실을 구체적으로 조명하기는 어렵고 사상적인 부분을 한 번 연구하고 싶기는 했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더욱 좋다. 해인사 관련 부분을 상세히 다룰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지금까지 별로 연구되지 않은 내용을 이번 세미나에서 다룰 수 있다면 더욱 값진 것이 될 것이 아닌가. 해주 스님도 그렇다면 해 볼 만 하다며 흔쾌히 동참을 해 주셨다.
여기에 연구소의 욕심이자 누구나 궁금해 하는 팔만대장경 이야기를 하나 다루고 넘어가기로 했다. 이렇게 네 가지 주제를 선정하고 이미 발표를 수락해 주신 해주 스님 외에 다른 분야 주제를 연구해 주실 학자 섭외에 들어갔다.
사실 한 3개월을 앞두고 주제발표를 해 주십사 요청한다는 자체가 조금은 무리수를 띄우는 일이었다. 게다가 해인사에서도 욕심을 내 단순 학술세미나 자료집을 넘어 하나의 학술서적으로 자료집을 준비해 달라고 한다. 그렇다면 원고 분량이 많아야하고 본래 스님과 내가 의도한 대로 깊이 있는(?) 논문이 필요하다. 이 촉박한 시간에 너무 많은 걸 요구해야 할 상황이 돼 버렸다. 그래도 어쩌랴, 그것이 내 일인 걸. 관련 분야 학자를 조사하고 조심스레 전화를 해 간곡히 주제발표를 요청하고, 예상한대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대답도 들으며 간신히 섭외를 마쳤다. 이제 원고 마감까지 한숨 돌리고 잠깐 이번 세미나 건을 뒤로 미뤄놔도 된다.
물론 원고 마감과 세미나 날짜는 금방 내 앞에 다가왔다. 다시 주제발표자들을 상대하며 마감을 알리고, 재촉하고, 마감 연기 요청을 받아들이고. 언제나 원고 마감 때가 되면 늦어지는 글이 있고 연기 요청이 들어오고, 안 되는데 하면서 이미 예상하고 확보한 2차 마감일을 알려주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부대상황을 챙기며 세미나를 기다린다. 포스터, 초청장, 논평 자료집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포스터는 디자인이 생명인데 스님의 안목이 꽤 높다는 걸 깜빡했는지, 평이한 시안을 보내왔다. 스님 왈 “이건 디자인도 아니라.”하신다. 그래 다시 며칠 걸려 다소 보완된 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해인사에 사부대중이 모여 해인사가 걸어온 길을 조명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시간만을 기다린다. 우리가 준비한 세미나가 열띤 논쟁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