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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로소 이 곳에 모여 긴 세월을 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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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종본 2002년 10월 248호
동화사에서 포교국장 소임을 보다가 지난 7월 해인사 사회국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방 정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묵직한 일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다름아닌 해인사 1200주년 개산대재 행사에 관한 것이었다. 전 사회국장 스님께서 어느 정도 계획안을 짜놓은 상태이긴 했다. 얼떨떨한 상태에서 두툼한 봉투를 받아 쥐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동화사에서 개산재를 치러 본 경험이 있다는 유일한 이유 하나로 해인사 개산 1200주년 행사를 주관하라는 특별임무가 떨어진 것이었다. ‘창건 1200주년 개산대재 준비위원장’이라는 거창한 직함도 하나 주어졌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의식 있는 스님들 사이에서는 ‘곧 장경이운 600주년, 개산 1200주년이 된다’고 노래를 불러 왔다. 하지만 구체적인 준비 없이 정작 올해 1200주년을 맞이하고 보니 소임자는 말할 것도 없고 산중 대중 모두가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몇 년 전 장경이운 600주년 되는 해에도 그냥 별다른 행사 없이 그렇게 그렇게 ‘밥먹고 예불하면서’ 지나가 버렸다. 그동안 개산재 행사 역시 그저 당일날 창건주스님께 헌공마지를 올려온 것이 행사의 전부이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미 몇 년 전부터 다른 본사에서는 개산재일을 지역의 문화행사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집안행사로만 그칠 수는 없는 그런 분위기이다. 게다가 1200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는 무겁게만 닿아온다. ‘좋은 일도 일없는 것보다 못하다’는 전통승가의 명언을 무색케 하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이미 금산사와 불국사 등은 개산재 행사로 KBS의 인기프로인 ‘열린 음악회’를 유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통도사 동화사 월정사 등의 개산재는 지역의 문화축제로 자리가 잡혀가고 있는 중이다. 주변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마냥 행사의 규모를 늘릴 수만 없는 일이다. 해인사의 입지조건이 교통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골짜기가 좁다. 또 인근에 큰 도시가 없는 산중사찰인지라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야 하는 행사는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판단되었다. 대신 수행 중심의 총림 분위기를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으로 의견 접근이 이루어졌고 전체 행사기간은 일주일 정도로 잡았다.

우선 전통적 경학연찬의 장으로 《임제록》강좌를 개설하게 되었다. 이는 은해사 종립 승가대학원 졸업생들이 ‘경학원’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제1회 경학산림을 고려대장경이 모셔져 있는 해인사의 역사성을 살리는 의미에서 법보종찰에서 하고 싶다는 부탁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방장 스님 이하 주지 스님 유나 스님 등 산중 어른 스님들도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라고 하면서 흔연해 하셨고 또 격려해 주셨다. ‘어록의 왕’이라고 하는 《임제록》을 조계종 교육원장이신 무비 스님을 모시고 출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강좌 형태로 5일 동안 하루 두 차례 4시간 강의 형태로 운영하기로 하였다.

우리 나라의 선종은 임제의 18대손인 석옥청공石屋淸珙의 법을 태고보우太古普愚 국사께서 이 땅에 전한 이래로 조계후학曹溪後學은 임제의 법손임을 자긍스럽게 여기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하여 조계종의 자기 동일성 확보 및 간화선 선양의 방편으로 전통결사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조계종지 확립에 기여하고자 함이 그 기획의도이다. 아울러 해제를 맞이한 제방의 납자들은 물론 모든 승려의 자기점검의 기회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의 법을 면면히 이어가는 해인사의 창건정신의 현현이라 할 수 있겠다. 중간에 원융 스님(해인총림 유나)의 간화선 특강으로 임제선에서 간화선으로 이어지는 선불교의 전체적 흐름을 살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눈에 띄었다.

두 번째로 기획한 것이 구 해인초등학교 자리인 허덕사지許德寺址의 불교신행문화도량 공모를 위한 현장 설명회이다. 올해 안에 가질 예정이다. 이미 ‘대불’문제로 사회적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가 있는지라 오랜 고민 끝에 ‘국민사찰’로서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는 뜻으로 공모전을 전제로 이 일을 진행해 오고 있었다. 이미 각 분야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5~6개 팀으로 제한공모를 하는 것으로 1200주년을 넘기기 전에 박물관 광장에서 현장 설명회를 갖고자 하였다. 이미 100억원을 들인 박물관 건물과의 조화 속에서 석가모니불과 연수원 등 부대시설과 주차장 등이 조화롭게 들어설 수 있는 설계작품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하여 전통을 현대 속에서 살려내는 제2의 해인사 창건이라는 미래지향적인 불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로 승화시키게 될 것이다.

세 번째로 ‘해인사의 역사와 사상’이라는 큰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자 하였다. 경학산림이 전통 경학을 이어가는 불사라면 학술세미나는 현대적 학문불교의 접목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신구의 조화라는 명분은 여기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게 된다. 고려대장경 전산화 불사로 이미 그 역량을 인정받은 고려대장경연구소가 흔쾌히 이 일을 맡아 주었다. 이미 많은 학술세미나를 주최한 경험도 있는 터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연구기간이 촉박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하기 좋은 말로 ‘하늘 아래 쫓기지 않는 명문名文이 어디에 있겠는가’라는 말로 위로를 삼았다. 그런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응해주셨다고 한다. 그 분들의 학문적 열정과 신심에 고개 숙여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다. 발표자는 정병삼 교수(숙명여대) 해주 스님(동국대) 최영호 교수(동아대) 김광식 박사(대각사상연구원) 등 왕성한 연구업적을 보이고 있는 소장·중진학자들로 엄선하였다. 명성보다는 내용의 충실성에 더욱 초점을 둔 학술세미나가 될 것이다. 기조연설은 법혜 스님(경주 동국대)이 맡아주시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헌공다례 및 차문화 강좌는 강원의 차모임 동아리인 ‘다경원’ 소속 학인들이 자청해 왔다. 차를 통하여 수행과 포교를 해오던 다경원의 활동이 몇 년간의 침체기를 거쳐 올해부터 활성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던 중이었다. ‘다로경권’이라는 자체내 회지의 복간도 서두르고 있는 중이었다. 개산 1200주년의 의미도 살리고 다경원의 활성화를 위한 계기를 만들기 위한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그리하여 선혜 스님(석정원 차회) 여연 스님(대둔사 일지암) 김상현 교수(동국대) 등 차문화의 권위자들을 모시게 되었다. 그리고 차인들 100여 명이 올리는 헌공다례로서 그 대미를 멋있게 장엄하겠노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그리고 개산재일 당일에는 많은 사부대중이 함께 참여하는 개산재 및 법요식 그리고 다례헌공이 있게 된다. 저녁에는 온 도량을 밝히는 등불도 내거는 것으로 법등의 면면부절綿綿不絶을 이미지화시키고자 하였다.

성전 스님(세검정 옥천암 암주·월간해인 편집위원)은 해인사 1200년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순응과 이정은 가야산에 내린 최초의 빛이었다.

최치원은 그 빛을 보고서 이 곳에 이르렀고

마침내 그 빛을 좇아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빛은 다시

탑이 되고 불상이 되고

우리 마음 속을 환하게 밝히는

신심이 되어 빛나고 있다.

괘불에 걸리는 1200년 햇살과

풍경을 울리는 1200년의 바람과

합장한 수도승들의 1200년의 체온이

오늘 비로소 이 곳에 모여 긴 세월을 말한다.

오늘 이 곳은 1200년의 정상이다.

오늘 이 곳은 과거와 미래가 함께 하는 곳이다.

오늘 이 곳을 찾아온 긴 시간의 눈빛을 보라.

그 눈빛에 걸린 미소들은 가야산을 넘어

다시 지구라는 별 위로

연처럼 날아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