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산 이래 해인사는 한국불교의 법맥과 종풍宗風을 이어왔으며 한국 불자들의 정신적인 귀의처가 되어 왔다. 해인사가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으로 많은 스님들이 청정한 수행의 모범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근래에는 경허, 용성, 고암, 자운, 성철, 일타, 혜암 스님 등 산중의 어른들이 주석하면서 선풍禪風을 진작시켜온 덕분이기도 하다.
이제 해인사는 창건 1200주년에 즈음하여 선지식들이 보여준 수행정신을 다시 회복하는 원년으로 삼을 것이다. 해방 직후 성철 스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자’는 수행결사 운동의 정신은 해묵은 강령이나 취지가 아니라 오늘날에 더 요구되는 정신이라는 점이다. 부처님 계율이 무너지고 검소한 수행가풍이 점점 해이해지는 풍토에서는 온고지신으로 삼을 만하다. 해인사는 물론이고 한국불교가 엄격한 수행가풍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불교는 현대사 속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스님들은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 속에서 무엇을 하느냐’고 힐난 섞인 질문을 던진다.
산중에 살면서 도심道心을 기르지 않는다면 한낱 은거隱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종문宗門의 가르침을 바로 세워 수행 본분에 충실하는 일만이 이에 대한 당당한 대답이다. 해인사는 지금까지 원융圓融 살림을 해 온 곳이다. 절 살림살이를 맡길 때 문중이나 인맥을 떠나 사람을 기용했다는 점이다. 이는 총림을 운영하는 일종의 원칙으로써 화합과 공동수행에 그 목적을 두고 있었으므로 사찰 운영의 합리화를 이룰 수 있었다. 이러한 원칙이 무너질 때 독선과 비리가 나타난다. 이 같은 ‘원융살림’의 원칙과 구조는 사회와 조직을 투명하게 만든다. 이 또한 절 집의 본보기로 다가올 1200동안 꾸준히 지켜나갈 전통이다.
해인사 창건 1200년은 지나간 과거의 시간이지만 그 정신과 전통은 시공時空이 따로 없다. 순응·이정 스님이 남긴 창건 정신은 천년 만년 변함 없을 가르침이다. 해인사 창건 1200년을 맞이한 지금, 한국 최대 사찰 해인사는 사회적으로나 종단적으로 많은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어쩌면 해인사의 역할은 한국불교의 당면 문제인지도 모른다.
해인사 창건 12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한 ‘학술세미나’는 한국불교와 해인사가 나아갈 방향을 다 같이 논의하고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모색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해인사의 역사와 사상을 올바로 계승하지 못하고 수행 전통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현실이 창건 1200주년에 즈음한 우리 후학들의 무거운 고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