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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창건주 순응 화상 진영順應和尙 眞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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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의 미소 - 편집실 2002년 10월 248호
해인사 성보박물관 소장 / 조선 후기 세상의 모든 물이 모여 바다로 흐르고 다시 그 물이 하늘로 승천해 이 대지를 이롭게 하듯 진리의 현현顯現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상의 감로甘露가 이렇게 순환하여 대지를 적시듯 진리도 이 세상에 나툼으로써 의미를 두텁게 하거늘 그 진리를 전하는 수행자의 언행이야 말해 무엇하리오.

순응順應과 이정理貞 화상 두 사제師弟가 마음을 합하여 가야산을 터 삼아 해인사 산문을 연 것은 신라 애장왕 3년 서기 802년의 일이다.

순응 대덕은 신림神琳 화상에게 사사하고 대력大曆 초년初年(766) 마른 나무쪽에 의지하여 몸을 잊고 중국으로 고승이 거처하는 산을 찾아가 도道를 구하였다고 한다. 그는 그 곳에서 교리敎理의 바다를 철저히 탐색하고 선禪의 세계에 깊이 들어갔다. 교와 선을 깊이 연구했다는 말이리라. 화상은 신라로 돌아와 ‘새도 능히 나무를 택하여 앉는데 나는 어찌 터를 닦지 아니하랴’하며 비로소 정원貞元 18년 가야산에 터를 잡았다고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은 <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伽倻山海印寺善安住院壁記>에서 전하고 있다. 순응 화상이 가야산에 자리를 잡으니 산신령도 묘덕妙德의 이름을 듣고 청량한 형세의 땅을 인정하였다고 하니 해인삼매海印三昧에 비친 삼라 만상의 자리가 확연히 천지에 비쳤음이리라.

과연 진리의 자리가 높고, 그 안목이 맑은 이의 마음자리는 하늘이 스스로 돕거니와 땅의 인연 또한 자연히 마련되는 법인가보다. 해인사가 두 분 화상에 의해 개창된 시기는 신라가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던 때였던지라 풍랑이 잠든 바다의 고요함으로 그 시대를 사는 중생에게 진리의 자리를 보였음이라.

바다로 흘러가는 모든 강물에 시원始源은 반드시 있을 것이로되, 그 강줄기 시작점의 물 한 방울이, 결국 바다로 흘러든 물과 그 물이 하늘로 올라 비로 화化한 그 한 방울이라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그 끝과 시작은 아득한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해인사의 창건이 순응順應과 이정理貞 두 화상에게서 시작한 일이었으나 이 두 화상이 받아 지닌 진리는 그의 스승 의상義湘 스님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의상 스님이 깨달은 법은 결국 석가부처님께로 귀의될 것이니 해인사의 개산開山을 꼭 두 분 화상에게서 구할 일도 없을 것이다.

다만 귀하고 귀한 법이 큰 바다를 이뤄 오늘날 눈 어두운 우리 중생에게까지 빛이 되고, 세상을 밝히고 있는 인연이 그저 희유하고 착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