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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보름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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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2년 09월 247호
약 450여 년 전 팔월 보름의 일이다. 당시에 때 늦은 비가 연일 그치지 않고 내렸는데, 한 선비가 쏟아지는 비를 무릅쓰고 해인사를 향해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 선비가 해인사 문 앞에 당도했을 무렵, 다른 한 선비가 먼저 도착하여 막 도롱이를 벗으며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비를 무릅쓰고 걷던 선비는 지금의 합천 삼가三嘉의 뇌룡정雷龍亭에서 올라온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 선생이고, 먼저 와서 기다리던 선비는 충청도 보은에서 온 동주東洲 성제원成悌元(1506~1559) 선생이다.

이보다 앞서, 남명이 서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속리산에 들어가 당시 보은 현감이던 동주를 방문하고 작별에 임하여 “내년 팔월 보름에 가야산 해인사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일이 있었다. 그 후 한 해가 지나 약속한 날이 가깝게 되었을 무렵, 동주는 현감 임기가 다하여 작년 약속을 지키고자 가야산으로 향했는데, 이 때 남명 동주와 함께 절친한 고사高士로서 속리산에 은거하던 대곡大谷 성운成運(1497~1579)은 남명을 만나러 가는 동주를 전송하여


남향가야마족경南向伽倻馬足輕 남쪽으로 가야산 향하는 말 발걸음 가벼우니

요기처사차상영遙期處士此相迎 멀리 남명과 여기서 서로 만날 기약 있음일세.

종산약문궁경수鍾山若問躬耕 산신령이 만약 몸소 농사짓는 늙은이 묻는다면

위보연첨병전영爲報年添病轉 나이 더하고 병 더욱 심하다고 알려주오.

라고 읊었다.

이들 두 선비가 한 해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먼길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사를 찾았는데, 이 일은 한편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 벗 사이의 믿음이 박하게 된 세정世情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 한편으로는 해인사의 산중고사山中故事로서 오랜 후일까지 전할 만한 일이다.□

*필자 주:이상의 고사는 《남명별집南冥別集)》 권4의 <사우록師友錄>에 나온다. 권1의 <연보>
에는 남명이 67세 되는 정묘년(1567) 8월의 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 때는 동주 사후 8년이 되므로 착오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