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앞서, 남명이 서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속리산에 들어가 당시 보은 현감이던 동주를 방문하고 작별에 임하여 “내년 팔월 보름에 가야산 해인사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일이 있었다. 그 후 한 해가 지나 약속한 날이 가깝게 되었을 무렵, 동주는 현감 임기가 다하여 작년 약속을 지키고자 가야산으로 향했는데, 이 때 남명 동주와 함께 절친한 고사高士로서 속리산에 은거하던 대곡大谷 성운成運(1497~1579)은 남명을 만나러 가는 동주를 전송하여
남향가야마족경南向伽倻馬足輕 남쪽으로 가야산 향하는 말 발걸음 가벼우니
요기처사차상영遙期處士此相迎 멀리 남명과 여기서 서로 만날 기약 있음일세.
종산약문궁경수鍾山若問躬耕 산신령이 만약 몸소 농사짓는 늙은이 묻는다면
위보연첨병전영爲報年添病轉 나이 더하고 병 더욱 심하다고 알려주오.
라고 읊었다.
이들 두 선비가 한 해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먼길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사를 찾았는데, 이 일은 한편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 벗 사이의 믿음이 박하게 된 세정世情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 한편으로는 해인사의 산중고사山中故事로서 오랜 후일까지 전할 만한 일이다.□
*필자 주:이상의 고사는 《남명별집南冥別集)》 권4의 <사우록師友錄>에 나온다. 권1의 <연보>
에는 남명이 67세 되는 정묘년(1567) 8월의 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 때는 동주 사후 8년이 되므로 착오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