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는 오래 된 절이나 저택도 많지만 그에 못지 않게 몇 백년이나 된 요릿집, 과자집, 밑반찬 가게, 교토 특산 도자기(淸水燒) 가게, 직물점(西陣織), 골동품 가게, 헌 책방 등 역시 교토의 전통을 상징하는 곳들이라 할 수 있다. 교토 역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도지(東寺) 절에서는 매달 21일에 고호시(弘法市)라는 시장이 서고, 교토 시내 서북쪽에 있는 기타노텐만규(北天野滿宮) 신사에서는 매달 25일에 덴신사이(天神祭)라는 시장이 선다. 이 두 곳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골동품 시장일 뿐만 아니라 헌 책, 옛날 옷, 도자기, 식물 등 여러 가지 희귀한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임시 시장을 연다. 매달 쉬지 않고 열리는 이 두 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도지 절의 고호시 시장은 일본 진언종眞言宗 시조인 구카이(空海) 스님의 기일(3월 21일)에 많은 사람들이 스님의 공덕을 얻고자 참배하였던 것이 그 유래로 1239년 이후에는 매달 21일에 행해졌고 참배객들을 대상으로 간단히 과자나 차 등을 팔았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현재는 대략 1200점 정도의 점포가 나오고 넓은 경내에 많은 사람들로 붐비지만 구카이 스님의 공덕을 얻고자 하던 원래의 목적은 없어져 버린 듯하다. 하지만 여기저기 미로처럼 들어선 많은 가게들은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다 보지 못할 정도이며 별별 희한한 물건들을 보고 만지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늘 이 곳을 정기적으로 다니는 단골들인 듯 반가워하며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원래 도지 절은 수도가 나라에서 교토로 옮겨짐에 따라 왕성王城을 진호하기 위하여 동쪽과 서쪽에 절을 세웠는데 서쪽에 있던 절은 없어지고 동쪽 절인 도지(東寺) 절만이 남아 있다.
794년에 헤이안쿄(平安京) 즉 지금의 교토에 수도가 옮겨질 때부터 가마쿠라(鎌倉) 막부가 생길 때까지의 약 400년을 헤이안(平安) 시대로 구분하는데, 이 시대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도 도지 절이었다. 즉 헤이안 초기에 사이죠(最澄) 스님과 구카이 스님이 중국에서 돌아와 각각 천태종과 진언종을 개창했는데, 사이죠 스님의 천태종은 비에이잔(比叡山) 산의 엔략쿠지(延曆寺) 절을 중심으로 하였고, 구카이 스님의 진언종은 고야산(高野山)의 곤고호지(金剛峰寺) 절과 도지 절을 중심으로 하였다.
구카이 스님(774~835년)은 804년 당나라에 건너가 오로지 밀교를 배우겠다고 뜻을 세우고 장안으로 갔다. 장안에서 혜과아사리慧果阿梨(746-805년) 스님에게 사사師事하여 태장계胎藏界와 금강계金剛界의 비법을 전하는 관정灌頂을 받고서 806년에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 때 당시의 유명한 화가 이진李眞 등이 그린 양계만다라兩界曼茶羅 및 진언오조상眞言五祖像을 가지고 왔다. 816년에 고야산에 도량을 열고, 823년에는 도지 절에 주석하면서 많은 불사를 일으켜 도지 절은 일본 진언종의 중심 사찰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진언밀교 미술의 중심이 되는 것은 양계만다라이다. 그 중에서 태장계만다라는 대일경大日經을, 금강계만다라는 금강정경金剛頂經을 기본으로 그려졌다. 구카이 스님이 중국에서 가져온 채색 만다라는 비단 7폭을 옆으로 잇고 높이 4.75미터나 되는 큰 그림이었으나, 원본은 없어졌고 821년에 이후 몇 차례 모사가 이루어져, 그 중 3본이 도지 절에 전해지고 있다. 도지 절 보물관(3월 20일~5월 하순, 9월 20일~11월 하순 특별공개)은 이 양계만다라를 확대시켜 도상과 색채 등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밀교 미술과 관련지어 도지 절 강당에 안치되어 있는 21구의 불상들을 들 수 있겠다. 도지 절의 강당은 원래 구카이 스님에 의하여 조영되기 시작하였으나 생전에는 완성을 보지 못하고, 스님이 돌아가신 지 4년 후(839년)에 제자들에 의해 불상들의 개안 공양이 이루어졌다.
수미단의 중앙에 금강계오불金剛界五佛(後補), 왼쪽(東)에 금강바라밀(後補)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에 금강계의 네 보살, 오른쪽(西)에 오대명왕五大明王을, 그리고 동서 양 끝에 범천과 제석천을, 사방 구석에 사천왕상을 배치하여 총 21구의 불상들로 입체만다라를 표현하고 있다. 특히 오대명왕은 본존인 부동명왕좌상不動明王坐像(상 높이 175.1㎝)을 중심으로 항삼세명왕降三世明王(동쪽, 상 높이 178.7㎝),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남쪽, 상 높이 203.1㎝),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서쪽, 상 높이 141.0㎝), 금강야차명왕金剛夜叉明王(북쪽, 상 높이 174.2㎝)을 배치하고 있다.
이 상들은 마음이 악한 사람을 교화하기 위해 대일여래大日如來가 분노의 모습으로 몸을 바꾼 자세인데, 오분노五忿怒라고도 불리운다. 원래는 각각 독립된 존상이었으나 후에 오대명왕으로 합쳐졌던 것이다.
이는 진언 밀교의 새로운 존상으로서 9세기의 대표적인 밀교 조각이기도 하다. 각각의 상들을 보면 얼굴 표정은 물론이고 옷자락 끝 등은 아주 힘차게 표현되어 있다. 마치 바람이 앞에서 불어와 다리 사이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재질은 목조로 부드러운 조각보다는 칼날을 깊숙이 파서 몸의 윤곽선이나 옷주름 선 등을 높게 세우고 있어 힘찬 느낌을 더하고 있다.
올 여름 교토는 유난히도 더웠다. 그 무지막지한 더위도 시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지 더위가 한풀 꺾인 늦은 오후 도지 절에 들어서는데 어디선가 연꽃 향기가 시원한 바람에 실려왔다. 이 절에는 수없이 와보았지만 연꽃을 본 적이 없던지라 의아해 하며 두리번거렸다. 보장寶藏(平安時代) 건물 앞 ‘ㄴ’자로 생긴 연못에 연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올 여름에는 연꽃을 보지 못했는데 늦게나마 볼 수 있게 되어 너무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