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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달 아래 넉넉한 마음으로 맞는 한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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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동정_1 2002년 09월 247호
매년 이맘때쯤이면 하늘은 더없이 쾌청하고 들판의 곡식은 수확기에 접어든다. 9월이 오면 누구나 마음이 들뜨기 마련인데,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와 햇과일과 햇곡식이 풍성하고 손꼽아 기다리던 명절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추석의 우리 식 이름은 가배일嘉俳日, 가위, 한가위다. 이 밖에도 가을의 한가운데, 곧 가을 중의 가을이라 하여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한다. 달이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때이다.

이 날이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 추석빔을 차려입고 정성껏 빚은 송편으로 차례를 지냈다. 차례가 끝나면 조상의 묘에 찾아가 성묘를 했다. 저녁이 되면 먼 곳에서 찾아온 친척과 이웃끼리 모여 앉아 밝은 달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놀이를 즐기거나 장만한 음식들을 나누어 먹으며 우애와 화목을 다졌다.

추석은 우리말로 ‘한가위’라고 하는데, 고대사회의 풍농제風農祭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유리왕 9년(서기 24년)에 아녀자들이 두 개 지역으로 편을 갈라 길쌈놀이를 했는데, 진 편에서 이긴 편에게 음식을 대접했다고 한다. 이 때 노래와 춤을 추며 놀았는데 이를 ‘가배’라고 불렀다 한다. 가배는 조상과 이웃에게 그동안 빚진 것을 ‘갚는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 후로 가배嘉俳란 이름은 가위로 변했고 여기에 ‘크다’라는 뜻의 ‘한’자가 붙어 한가위란 이름이 붙여졌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추석 명절을 쇠지만 달과 별, 해 같은 천체를 끌여들여 세시 풍속을 행하는 우리 민족과는 엄연히 다르다.

추석의 풍속으로 대표적인 게 강강수월래이다. 이 놀이는 부녀자 수십명이 한곳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추는 놀이로 처음에는 진양조 느린 장단으로 시작하다가 차츰 속도가 빨라져 나중에는 거의 뛰면서 목청 좋은 사람이 맨앞이나 원의 중앙에 들어가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강강수월래’ 하고 전원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초가을밤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강강술래의 ‘강강’은 둥글다는 뜻이다.

지금은 거의 보기 어려워졌지만 가마싸움놀이, 거북놀이, 소놀이 들을 통하여 풍년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가마싸움놀이는 서당의 학동들이 추석날 여러 명씩 편을 갈라 바퀴 달린 가마를 만들어 먼저 상대편의 가마를 부수는 팀이 이기는 놀이였다. 가마싸움에서 이기면 그 해 과거에 많이 급제한다고 해서 서당에 다니는 학동들은 물론 마을 사람들도 농악까지 동원해 응원을 하였다. 수십 명씩 참여해서 공동체의 단결력을 겨루었던 줄다리기는 승부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이 때 줄다리기에 쓰이는 줄은 추수 후 집집마다 내놓은 짚을 꼬아 만들었다고 한다. 소놀이는 마을 사람들이 멍석을 쓰고 소 모양으로 가장하여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풍년을 기원하였다. 거북놀이 역시 마찬가진데 소 대신 거북 모양으로 가장하여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거북이가 뜻하는 장수를 축원했던 풍속이다.

‘반보기’란 풍속도 있는데, 여자가 시집을 가면 친정에 가기 어렵다 보니 친정 부모가 추석을 전후해 사람을 보내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약속하여 시집과 친정 중간쯤에서 만나는 것이다. 이 때 맛있는 음식을 가져가 서로 나누어 먹으며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고 한다. 겨우 반나절 밖에 정을 나눌 수 없다는 데서 ‘반보기’라 했으며 옛날 남존여비와 가족제도가 빚어낸 풍속이다.

또한 추석을 전후해서 잘 익은 벼·수수·조 따위의 줄기를 한주먹가량 베어다가 방문이나 벽에 걸어놓고 다음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올게심니’라는 풍속도 전해왔다. ‘올게심니’에 사용됐던 곡식은 다음 해에 씨로 쓰거나 떡을 해서 조상의 사당에 올려두었다가 먹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어촌에서는 만선滿船을 기원하는 뱃고사를 지냈으며 소싸움, 닭싸움, 활쏘기도 신나는 구경거리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한가윗날은 무엇보다 조상에게 감사를 드리는 차례가 중심이 된다. 햇곡식으로 만든 송편과 햇과일, 햅쌀로 빚은 술(신도주)을 정성껏 차례상에 차려놓고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고 음식을 이웃들과 나눠먹는다.

차례는 일년에 두 번 설날과 추석날 아침에 드린다. 조상에게 자손이 세배드리는 설날 차례와는 달리 추석 차례는 그 해 처음 생산한 햇곡식과 햇과일을 올리는 의례이다. 차례에 모시는 조상은 그 집안의 기제사 대상이 되는 모든 조상을 한꺼번에 모시며 기제사와는 달리 각 조상에게 술잔을 한 번씩만 올린다. 옛날에는 고조의 모든 자손, 즉 8촌 이내의 친족들이 모여 차례를 같이 지냈지만 지금은 이런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편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이 송편이다. 원래 송편은 솔잎을 깔고 찐 떡이라 하여 송병松餠이라 불렀으나 중국식 발음인 ‘송핑’의 영향을 받아 점차 송편松片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햅쌀 반죽에 콩이나 밤, 깨, 팥 같은 소를 넣고 손으로 꾹꾹 눌러 빚은 송편은 맛과 향, 색이 탁월한 시절 음식이다. 송편은 여느 떡과 달리 깊은 의미를 갖고 있는데, 뾰족한 솔잎은 나쁜 것을 쫓아내고 솔잎의 청색은 동방과 밝음을 상징한다. 송편은 참 맵시있는 떡이다. 별다른 문양을 찍거나 장식을 하지 않아도 소를 넣어 통통하게 반달 모양으로 빚어낸 송편은 우리네 명절식으로 자리를 굳힌 지 이미 오래이다. 표면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도록 쪄낸 송편에는 한가위의 풍요로움이 옹골차게 배어 있다. 군데군데 자연스럽게 찍힌 솔잎 자욱이 멋스럽고 솔 냄새와 참기름 냄새가 향그럽다. 모두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 모습도 정겹고.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떡을 명절식으로 해먹던 풍습은 많이 사라졌으나 추석에 송편을, 설에 가래떡을 해먹는 풍속만은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렇지만 시장에서 사다 먹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 이 시대가 지나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잠시 그 옛날로 돌아가 보자.

추석 전날 어머니는 읍내에 가서 쌀가루를 찧어 온다. 손으로 빚은 반죽을 떼어 손바닥으로 둥글게 만든 후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살짝 판 다음 그 속에 햇콩·밤·팥·대추 같은 소를 넣고 주둥이를 맞물려 예쁘게 입술을 만든다. 빚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크기가 다르고 모양이 제각각이지만 어머니가 빚은 예쁜 송편은 금방 골라낼 수 있었다.

손으로 빚어 만든 송편에는 빚은 사람의 정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래서 예로부터 송편의 모양새를 보고 처녀들은 미래의 낭군을, 임산부들은 장차 태어날 아기의 모습을 점치기도 하였다. 또한 임신한 부인들은 송편을 먹어 보아 속이 익었냐 덜 익었냐에 따라 태아의 성별을 점쳐보기도 하였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그래도 가족 친지들과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얼굴을 맞대는 때가 바로 명절이다.

올 추석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고 꽉 찬 보름달처럼 마음에 그리움 하나씩 심는 그런 명절이 되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