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을 다 채운 만삭의 달은 아낌없이 서늘한 은색 빛줄기로 세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가을 저녁 흥취를 즐기기엔 서늘한 바람과 함께 더없이 좋습니다. 정말 전율하도록 아름다운 밤이네요. 일년 열두 달 그리고 수십년 동안 보름마다 달이 안 뜬 적이 어디 있을까마는 보름달하면 항상 기억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새벽까지 온동네를 돌며 강강수월래도 외치고 밤이라 잘 보이지 않는 새 신발을 자랑하지 못해 아쉽던 추석날 밤 그 큰 보름달이 생각납니다.
이 하늘 아래 사는 어느 누구의 어머니와 딸, 아내들이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고 생활을 위한 식사에 바친 것보다 많은 시간들을 잔치를 향연을 위한 음식을 위해 며칠의 기간 동안에 뼈가 시리도록 힘들게 요리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와 아들들은 조상의 묘를 찾고 각자의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십년도 넘게 되풀이하며 안주 삼은 어릴 적 추억들을 다시 찾아내 되풀이할 것입니다.
해마다 그렇게 가족들은 모여앉습니다. 바다 건너 외국만 아니라면 당연히 모든 가족이 모여앉아야 하는 날이지만 모이지 못한 가족을 그리워하고 군대 가서 빈자리인 아들 생각에 가끔 어머니는 눈물도 훔치시겠죠.
정말 우리는 어느 누구도 빠짐없이 추석에게 공통의 절실한 명령과 부탁을 곱으로 받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우리 이웃들이 고향을 떠나 차가운 도시로 생존을 위해 뒤를 돌아보며 떠나던 그 날들에 추석은 떠나는 이들 마음마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불고 팔월 보름달이 높이 솟을 때쯤 꼭 돌아오라는 간절한 비원을 하나씩 심어둔 듯합니다. 잊진 말라고, 떠나는 이 곳, 아주 잊진 말아달라고.
사방으로 내달려야 대여섯 시간을 못 넘길 이 좁은 나라에서, 막히고 막히는 스물 몇시간 좁고 불편한 차 안에서 오로지 앞만 보고 고향만 생각하며 길을 떠나는 이천만이 넘는다는 사람들과 사람들이 몸이 자리에 묶인 군대와 교도소 그리고 바라만 보는 고향땅 앞 최전방까지 길을 나서는 사람들은 추석의 무엇을 그토록 절실하게 느끼고 소유하기 위해 이런 고난의 길을 나서는 것일까요.
모든 사람들이, 세상이 변해갑니다. 결국엔 모두 죽음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네들의 기억과 추억들도 같이 스러져 갈 것입니다.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추석이면 우리 모두는 아직 변하지 않은 무엇인가가 있을거라 믿고 싶어하고 확인하기 위해 추억의 단편들이 가루처럼 잡히지 않고 흩날리기만 하는 고향으로 모여드는 것이 아닐까요?
추석은 추억을 확인하려고 모여든, 영원한 것이 있을거라 믿고 싶은 이들이 아직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확인하기 위한 축제가 아닐까요? 즐거움의 축제가 아니라 모두가 즐거워해야 할 그 순간을 끊이지 않고 이어나가기 위해 우리가 더욱 마음을 쏟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요.
이젠 너무 많은 이들의 애정과 눈물이 부어져 어느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절대의 귀환명령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진리를 설했던 때부터 아직까지 이것은 진리입니다. 부정될 수 없고 현실에서 바로 찾아볼 수 있는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입니다. 미망에 흔들리지 말고 세상을 바로 보는 지혜를 갖추기 위한 조건입니다.
슬퍼할 것도 노여워할 것도 없고 나에 대한 집착도 타인에 대한 미움도 모두 근거없는 한낱 망상에 불과하다는 진리의 말씀을 설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중생들은 그 미망을 아직 떨쳐 버리지 못하기에 여전히 중생이 아닐까요.
서로 사랑하고 때론 미워하고 다투지만 다시 화해하고 어찌 보면 윤회전생의 고통을 영영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고 고통스런 삶인 듯 합니다. 하물며 당장 눈앞의 일상도 아니고 이미 지나간 과거의 추억들에 매달려 울고 웃고 기뻐한다니 때론 어리석어 보이기도 합니다.
정말 저는 중생이 분명합니다. 아직 변하지 않은 그 무엇인가 변하지 않을 가치, 가족의 사랑, 사람의 정, 같이 아파하고 기뻐해 주던 어리석은 중생들간의 따뜻한 무지 몽매가 너무나 그립고 눈시울을 붉게 만드는 것이 며칠에 한번씩이니 말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냉철하고 절제할 만큼 모질지 못한 마음씀씀이가 여전히 중생이게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애써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오래 노력하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한달 뒤 가을날 밤은 추석입니다. 자주 아이를 안고 가는 젊은 아버지들의 모습을 봅니다. 이젠 업어 키우던 자신의 나이만큼 나이 든 아들을 가지게 된 아버지를 생각해 봅니다. 일곱 살 때까지 친척집에 갈 때마다 저를 한번도 걸리지 않고 그 넓은 등과 가슴에 늘 안고 다니셨다던 아버지는 좁은 등과 가늘어진 팔과 다리로 약해지셨습니다. 약해지신 모습으로 자식에게 ‘결혼하라’ 부탁하십니다. 강요처럼 들립니다. 아버지는 잠든 어린 아들을 안고 밤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던 시절이 가장 행복하신 겁니다. 아버지처럼 사람들은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다시 불러내어 잊지 않기 위해 모여앉아 술을 마시고 서로 웃고 얘기해야 했던 걸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젠 기억도 오래 되어 약해지리라 생각하셔서 아들이 다시 아들을 낳고 다시 어린 손주를 둘러업고 아름답던 시절을 다시 누리고자 하시는 걸 겁니다.
아버지처럼 친구들도 모여앉아 그림이 많았던 교과서와 콧물을 닦으라고 엄마가 달아 주었던 손수건을 매달고 뛰놀던 시절, 이젠 각자 다른 직업으로 회사원으로, 군인으로, 공무원으로 남극 기지에 있다는 친구처럼 너무 멀어진 우리들 사이의 간격이 서글퍼서 같은 운동장에서 같은 노래를 불러댔던 그 시절의 일만을 얘기하고 추억하는 것이겠죠.
모여앉은 이들은 삶이 피곤하고 힘든 일투성이라고 투덜대지만 결국 다 잊고 같이 웃고 기뻐하고 저마다 기억 속 가장 아름다운 추억들로 그 밤을 은색 달빛 아래 모두 취한 화려한 기쁨의 눈물바다를 만들 것입니다. 너무 기쁘지만 아름다운 추억은 가슴 속에만 기억되고 남아 있을 뿐입니다. 모두가 너무 멀리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추석에도 다시 모인 친구들은 십수년 전의 유치한 별명들을 서로 부르며 일곱 살, 열 살 그 시절의 행복들을 서로에게 기억시켜 주며 서로 기뻐할 겁니다. 그 순간은 너무 짧게 허락된 행복이지만 더없이 편하고 눈물나게 정겨울 겁니다.
고향의 모습은 아주 많이 변했고 많은 분들이 우리와 다른 세상으로 떠나가셨지만 우리의 기억과 이야기속엔 항상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시절로 남아 있습니다. 추석은 송편 먹고 배부르게 먹고 마시라고 우리를 초대한 것은 아닙니다. 잊지 말라고 다시 추억하라고, 되돌아보고 변한 모습을 참회도 하고 너무 많은 번뇌와 속진들 정리 좀 하라고, 순수한 시절 아름다운 추억들로 우리네 병든 마음과 상처들을 치료할 수 있게 둥글고 밝은 그 빛에 우리네 마음 좀 가다듬어라고, 그리고 순수하게 모든 이들과 화해와 원융의 축제를 벌일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제공해 주고자 했던 겁니다.
이게 제가 생각한 추석의 의미였습니다. 그냥 추석은 아름답습니다. 기쁘고 정겹고 그리고 배부르고요.
혹시 이런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이 혼잡한 사바세계 고난 속에 고통받는 중생들 삶 속에 휘영청 하니 너무도 밝은 달빛 한 줄기 비쳐들어 혹 자비의 불성이 해마다 선잠을 깨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님 우리 맘속 선근이 일년에 한번쯤은 자비의 아름다운 꽃을 일제히 피워대는 것인지도요!□
* 사족 : 세상모든 인연중생들 내내 한가위만 같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