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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송夫婦松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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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진경 2002년 09월 247호
우리의 명절인 추석을 맞으며 문화가 주는 풍요로운 가치와 문화가 갖는 생명력의 근원을 생각해 보았다. 문화는 무생물이 아니라 따뜻한 피가 흐르는 생명체였다. 식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 문화 또한 지금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의 관심과 향유함이 없이는 생명력을 잃고 쇠락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의 고유문화를 지켜가고 명절을 명절답게 맞이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여유로운 기쁨으로 활기 넘치게 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문화의 전승과 보존은 삶에 생명을 불어 넣어 가치로운 삶으로 직결되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나는 어릴 때 명절이나 방학이 되면 거의 외가에 살다시피 했다. 외가는 논밭이 많아 먹을 것이 풍족하기도 했지만 외사촌 오빠들과 이모들이 많이 계셔셔 늘 재미있었고, 특히 나를 귀여워해 준 외할아버지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걸어서 가야 하는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외가에 자주 가는 가장 큰 동기로 작용했다. 깡마른 작은 체구의 큰 할머니, 작은 할머니, 그리고 3남 5녀의 외삼촌과 이모, 또 여기서 태어난 나의 외사촌들… 3대에 걸쳐 정말 많은 친인척을 거느리면서도 잡음 하나 없이 화목하게 이끌어 간 외할아버지의 엄격함과 자상함이 눈에 선하다. 명절이면 자연과 조상에 감사하고, 산소를 손질하고, 동네의 여러 장승들에게 예를 갖추던 모습은 아름답고 한가로운 우리의 산과 들인 자연과 꼭 어울리는 행동양식이었으며 외할아버지의 얼굴과 마음은 우리 문화의 외형과 내면을 지닌 산 증인처럼 보여 나의 어린 시절은 외할아버지 덕분에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과 정서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러나 사춘기가 되어서는 내가 외갓집에 가는 동기가 달라지게 되었다. 외할아버지보다는 나와 똑같이 방학이면 이 동네에 찾아오는 도시 학생인 오빠 때문이었다. 청순하고 지적인 외모에 키가 큰 이 오빠는 흘깃 보는 몇 번의 대면으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나는 관심을 사보려고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마을의 큰 소나무아래서 예쁜 옷을 갈아입고 다소곳이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화판을 펼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생각은 온통 그 오빠의 관심을 기다리면서… 두 번의 방학을 보내고서야 우리는 이제 큰 소나무 아래서 같이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시를 지어서 나누어 갖는 우정 어린 사이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하자 그 오빠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사를 가버렸기 때문에 나의 마음을 온통 사랑의 물결로 물들이고 일렁이게 만들었던 그 오빠를 볼 수 없었다. 나는 작별의 정도 나누지 못해서인지 그 오빠가 언젠가 다시 이 곳으로 오리라는 마음으로 외가에 가면 큰 소나무 밑에서 명상에 잠기곤 했다. 사춘기라서 그랬는지 지금껏 의지하고 재미있었던 우리 농촌의 정서와 외할아버지의 따뜻함도 그 오빠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잘 아는 외할아버지는 여름밤이면 나와 함께 소나무 아래에서 우리 산천에 얽힌 전설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려 주곤 하셨다.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하직하기 얼마 전에 외할아버지는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소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을 사람 누구도 모르는 것이라며….

“옛날에 이 마을에 천민 출신이지만 아름답고 고운 아리라는 아가씨가 살았는데 미모와 지성이 뛰어나 이 마을의 양반은 물론 이웃 동네 양반자제들까지 선망의 대상이었다. 또한 지체 높고 나이 많은 부자 양반들은 애첩이나 씨받이로 들이려고 탐을 내는 정도였단다. 그러나 아리는 같은 마을에 사는 평민의 아들인 다리와 이 용소龍沼에 와서 사랑의 밀어를 나누곤 했었단다. 달과 별들의 자연 조명 아래 물, 바람 그리고 풀벌레들이 울리는 자연 그대로의 협주곡 선율을 들으며 아리와 다리는 정말 행복해 했고, 장차 결혼할 것을 언약했단다. 이런 소문이 떠돌자 아리를 탐내던 이웃 동네 지체 높은 양반 주벼리 영감은 가난한 천민의 신분인 아리 부모들을 회유 협박하여 아리를 자신의 애첩으로 보낼 것을 요구했단다. 일이 마음대로 안 되자 주영감은 아리와 다리를 떼어 놓기 위해 관리들을 매수하여 다리를 변방을 지키는 수비대로 보냈단다. 다리가 변방으로 떠나기 전날 아리와 다리는 여기서 마지막으로 만나 애절한 마음을 서로 나누며 영원히 함께하기를 다짐했단다. 만일 이생에서 함께 못하면 저승에 가서라도 부부 연을 맺을 것을 맹세하였단다. 이윽고 다리가 동네를 떠나자 부자 양반은 다시 중매꾼을 보내어 환심을 샀지만 아리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어. 아름다운 아리는 주영감의 온갖 회유에도 불구하고 2년을 잘 버티었는데, 복무를 마치고 마을의 다른 청년들은 다 돌아왔는데 다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전장에서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식만 전해왔단다. 지체 높고 부자인 주영감은 더 기다릴 수가 없어 아리 앞에 마지막으로 오랏줄과 금반지와 금목걸이를 실은 꽃가마를 보내어 선택할 것을 강요했지. 아리는 하루만 더 기다려 줄 것을 부탁하고는 그날 밤 목욕 재계하고 새옷으로 단장하여 다리와 부부 연을 약속한 이 자리에 와서 정한수를 올리고 향과 초를 밝히고 저승에서 함께하기를 염원하는 의식을 홀로 치른 뒤 여기 용소에 몸을 던졌단다. 얼마 후 건강한 모습으로 마을로 돌아온 다리가 이런 소식을 접하고는 이 곳에서 목 놓아 아리를 찾아 울다가 자신도 용소에 몸을 던졌단다. 그 후 개울의 물길이 바뀌면서 용소는 흙으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무덤이 된 용소에는 두 갈래로 뻗은 한 그루의 소나무가 돋아났단다.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이 소나무는 그 때 자라난 소나무의 손자뻘이 되는 소나무인데 새로운 소나무가 자랄 때마다 꼭 두 갈래로 자라나며 한쪽에만 솔방울이 달리는 특이한 소나무가 되었단다. 나는 이 소나무를 ‘부부송夫婦松’이라고 이름 지어 해마다 막걸리를 부어 주고 그들의 넋을 달래고 있단다.”

내가 사춘기 때 외가에서 꽃피운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아쉬움으로 의기 소침해 있을 때에 외할아버지로부터 마지막으로 들은 이 전설 같은 이야기는 나의 아쉬움을 위로해 주는 애절함으로 와 닿아 내가 새롭게 출발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가는 이사를 갔고, 나도 도시로 나가 공부를 하게 되어 옛날 중리라는 외가의 고향은 오랜 세월 동안 나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이제 인생을 되돌아보는 나이가 되어 나의 정신적 고향 외가를 찾아보았다. 동네의 많은 집들과 논밭은 오간데없고 푸른 잔디가 깔린 골프장으로 변해 있었다. 얼른 부부송이 있었던 자리를 찾아보았지만 소나무는 이미 죽어 베어지고 그루터기만 남아 이 자리가 옛터임을 보여 줄 뿐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어릴 때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나의 무관심이 모든 것을 앗아 가버린 것 같아서 너무 쓸쓸했다. 이 나무의 전생이야기를 아는 유일한 사람인 내가 무관심하였으니 부부송은 이 세상을 위해서 자신을 단장할 필요가 없었기에 생명력을 잃고 시들어만 갔고, 과거를 잃었기에 부부송은 더 이상의 희망과 존재가치를 상실하였나 보다. 관심은 상대방의 자기단장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곧 삶에 활력을 주고 생명력을 일깨워 주는 묘약인가 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물론 무생물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무관심은 모든 것을 쇠락시키고 생명력을 잃게 한다.


모든 민족이 자신의 명절과 문화 지켜가고 관심을 갖는 이유는 자신과 민족의 뿌리를 찾는 일이며 자신과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노력이다. 우리는 자신을 잃으면서 해야 할일이 아무것도 없으며, 무엇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의미가 없는 일일 것이다. 명절과 함께 문화의 계절에 무관심으로 시들어가는 또 다른 ‘부부송’이 없는지 우리의 산천과 자신을 둘러봄이 어떠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