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묶어 다짐한 3개월은 결코 짧은 기간만은 아니다. 결제의 후반에는 오래도록 햇살을 보기 힘들었다. 이런 와중에 멋지게 풀 먹인 잿빛 승복을 준비하고 머리엔 가볍게 밀짚모자를 걸치고 산문을 나서는 선객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하고 콧잔등이 시큼하다. 출타를 하루 미루고 조용히 처소에 앉아 있으니 지난 결제기간의 시간이 초침처럼 또각거리며 내게 새로운 의미로 닿아 오는 것 같다. 다시 길 나설 일을 생각하며 간단히 짐을 꾸리려 하는데 함께 지낸 작은 분재가 여간 걱정되는 것이 아니다. 매일같이 보살펴야 하는 속성 때문에 제법 긴 만행을 계획하는 나의 발목을 잡는다.
문득 전화가 울린다. 떠나는 사람의 인사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의 기다림의 전화도 아니다.어쩌면 낯설기까지 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더없이 정다운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기분이 매우 섭섭하다. 이번 산철에 있을 교구본사 종회의원 선거를 의식한 전화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아가 인사를 드려야 마땅할 윗스님들이 하는 안부 전화를 가만히 앉아서 받게 만들어 버린 절 집안의 현실이 이번 산철에 나를 기다리고 있다. 승가에 선거가 시작되고부터 공공연히 아랫사람들의 표를 의식한 피선거권의 스님들의 부자유한 행동을 이번에도 여과 없이 겪어야 하나 보다. 일정 법랍 이상이면 공정하게 한 표씩을 부여하는 것이 과연 승가 속의 평등사상일까? 승랍 40년이 넘은 은사와 이제 막 선거권을 가진 초하의 상좌가 사중의 중요한 안건을 결정하는 데 동일한 비율로 참여하는 것이 과연 평등한 것이요, 합리적인 일일까?
승가에 선거제도 도입 이후 절 집안에 장로가 없어져 버린 것 같다. 장로스님들의 중요성은 굳이 부처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승가는 항상 승가의 관점에서 봐야 하고, 문제의 해결도 승가의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기르는 분재 하나에도 자유롭지 못한 자신이 청안靑眼의 대덕 스님들과 동등한(?) 권한을 함께 갖는다는 것이 자꾸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연약한 대나무들이 빽빽이 모여 만든 당당하고 추억스러운 비니원(율원) 대숲같이 우리 승가도 함께 모여서 더욱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 온 사회가 ‘꿈은 이루어진다!’는 강한 희망을 가지게 된 이 때에 우리 승가도 옛날의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을 되찾기를 바라며 짐을 꾸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