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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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함께하는 자리 - 천명례
1985년 06월 40호
나의 할머님은 이미 9년 전 돌아가신 분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내 마음 속에 생생히 살아계신다.
할아버님은 많은 땅을 소유하셨는데 대부분의 땅이 3·8선 이북에 있으며, 휴전선 부근의 땅 역시 군 작전 지역으로 민간인의 통행이 제한되는 곳에 있다. 기우는 집안의 안 주인으로 열 한 명의 자손을 키우신 할머님께서는 일혼 일곱에 돌아가실 때까지 흐트러진 모습을 자손들에게 보인 적이 없으신데, 그 정신력의 바탕은 부처님이셨다.
할머님이 자주 다니신 절은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조상의 땅 근처 자그마한 산사인데, 맏손녀인 나를 데리고 다니시기를 특히 좋아하셨다. 처음에는 그저 할머니와 함께 여행하는 것이 좋았고, 절 주변의 경건한 자연에 마음이 갔으며, 할머님이 겪으신 생의 진한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할머님을 지켜주신 부처님이 좋아져서 학교를 결석한 채 쫓아간 적도 있다 대학 1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하여 받은 첫번째 수입으로 할머님을 깜짝 놀라게 해드렸는데, 그것은 시골 산사의 부처님께 백화점에서 제일 우아하며 값이 비싼 방석을 선물한 일이었다.
할머님이 돌아가신 후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시골 산사에, 1년에 두어번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찾아가서 구석구석 스며있는 할머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들의 마음을 새롭게 다짐하고는 했다.
그러나 할머님과 부처님과 나의 인연은 평화스럽고 항상 생각해도 포근한 고향과도 같은 아름다음을 간직한 채 내 마음 한구석에 있었을 뿐, 적극적인 성격의 나는 그 후에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 진학하게 되어 기독학생회에 아주 열심이었다. 집안에서 지내는 제사에도 절을 하지 않았으나, 온유한 성품의 부모님께서는 꾸중대신 부처님과 하느님이 함께 지켜주실 거라며 웃으시곤 하셨다.
그 이후 나는 시집을 갔고 할머니의 정성 때문인지 몰라도 다시 불교를 믿는 불자가 되었다.
나는 지금 어디를 가나 불교도임을 떳떳이 알고, 나의 마음을 밝히려고 노력하고 누구에게나 좋은 인연을 짓기를 원하고 열심히 책을 읽기도 하며 큰 기쁨으로 살아가는데, 그렇게 되기에는 친정 부모님과 남편의 영향이 크기에 항상 감사드린다.
나는 나의 아버지가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며 존경하는데 그 이유중의 하나는, 부인들만 다니는 줄 아는 절에를 나가시며, 때론 강연도 하시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나의 남편은 국문학자로 우리 민족 속에 살아 숨쉬는 불교가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우리 문학 속에 스며든 불교의 체취를 연구하고, 부처님의 무한하고 깊은 진리구현을 목표로 살고 있다.
우리 내외는 여섯살난 딸 아이, 일곱살의 아들 아이를 두고 있는 데, 이 아이들에게도 부처님 인연을 심어주기에 마음을 쓰고 있다.
딸 아이는 절이나 포교원에도 가자고만 하면 열심히 따라 나서는 데, 아들 아이는 절에 가기 싫다고 정색을 한다.
우리는 생에 있어서 부처님이 걸으신 그 길이 최고의 길임을 믿으며 부처님께 기도하여 얻은 아이들이 부처님 법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치며 키우고 싶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처님 법을 만난 것에 감사하며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기쁨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서 함께 참다운 불법을 구하여 닦아야겠다고 생각된다.
우리 아들 아이의 문제는 우리 내외의 숙제일 뿐만 아니라, 한국불교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꿈인 어린이·청소년 불교포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목표를 정하여 실천하고픈 마음 가득하다. 내가 아주 어려서부터 할머님과 더불어 맺은 부처님과의 인연이 얼마동안 이었을지라도 계속되지 못했던 기억이 늘 안타깝고, 그 마음이 더욱 간절하여 서투른 글이나마 나의 신앙기를 이렇게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