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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성보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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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논단 - 서수생 1985년 06월 40호
합천은 가야산(伽耶山)으로 이름 높고, 가야산은 해인사(海印寺)로 이름 높고,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으로 이름 높다.
천년의 유서깊은 해동원종대가람(海東圓宗大伽藍)이요, 대법보종찰(大法寶宗利)인 i이 도량(道場)은 여름도 가을, 가을도 여름, 기암괴석(奇岩怪石)이 천태만상(千態萬象)을 이룬 곳, 그 옛날 서라벌 황혼기 애장왕(哀莊王) 3년(A.D.802) 8월에 순응(順應)·이정(利貞) 두 대덕이 왕과 왕후의 도움을 받아 각황(覺皇)의 정법(正法)을 전코자 하여 절을 지은 영지(靈地)로 공문(空門)의 푸르른 자취 인간을 넘어 서고, 고운천고(孤雲千古)의 성성선운(星星仙韻)이 서린 가야의 길상지(吉祥地), 여기 구광루(九光樓) 범고(梵鼓)소리 사바의 개전(蓋纏)을 씻어 주는 비봉(飛鳳)의 성지(聖地), 세존의 설산반게문자(雪山半偈文字)도 새롭거니와 염화미소(站花微笑)로 전법하고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수선성역(修禪聖域)에 불타의 만고광명이 길이 빛나는 영산(靈山)에 해인가람이 우뚝히 솟았다.
해인사의 해인(海印)이란 것은 八十화엄경 권14, 화엄경초 권2, 능엄경 권4, 보적경(寶積經) 권25, 대집경(大集經) 권I5, 탐현기(探玄記) 권4, 법성게(法性偈) 등에서 말하는 해인삼매(海印三味)에서 따온 말로 바다 가운데 온갖 사물의 그림자가 인발(印影)처럼 비추듯이 부처님의 슬기 바다에는 온갖 만법(萬法)이 나타나므로 해인삼매라 하였다. 이 곳 삼재부도(三災不到)의 영지인 해인사에 무상법보(無雙法寶) 팔만대장경을 봉안하여 오늘토록 무양재(無恙在)하니 자랑스럽지 아니할 수 없다.
각판예술의 정화인 팔만대장경은 우리 배달 겨레가 이룩한 국보중의 국보로 온 세계 사람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성보(聖寶)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이랴? 이 대장경을 봉안한 판전(版殿) 또한 현대건축학이 무색할 정도로 뛰어난 과학성을 지닌 목조건물이었다.
이 무상법보 대장경은 정묘한 과학적 기교, 뛰어난 서풍(書風), 방대한 경전의 집대성, 한자도 오류가 없는 것, 그리고 오랜 역사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각판 예술의 창세기적 정수의 집대성이며 이 방면의 전형으로 배달겨레의 불교문화재 성보(聖寶)일뿐 아니라, 우리의 민족적 성보요, 나아가 전세계적 성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일찌기 학계에 알려져 일본인 고남(高楠)이 “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을 엮을 때, 이 대장경을 원본으로 삼았다. 특히 당본(唐本)이나, 원본(元本) 기타 돈황본(懶惶本)보다 집대성되었으니 세계 30여종 한역대장경(漢驛大藏經)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이며, 칠백 수십 년 동안 잘 보전되어 한 자의 오류가 없다는 점에서도 이 방면의 자랑스러운 금자탑이 아닐 수 없다.
그 옛날 거란병, 몽고병이 침범하여 민족적 대수난을 겪고 있을 때, 국력으로 이 대장경을 조조(調造)함으로써 부처님의 법력을 벌어 외적(外敵)을 퇴치하고 이 땅에 불국토를 이록코자 한 민족적 의지가 뭉쳐진 대장경이므로 민족적 신앙과 단결의 표본인 이 대법보대장경에는 고려민의 슬기롭고도 굳센 믿음과 아름다운 마음씨가 그 속에 엉기어 있다.
이 절에 봉안한 각판예술 속엔 국간대장경판(國刊大藏經板)과 사간장경판(寺刊藏經板)이 고이 간직되어 있다. 국보 32호로 지정된 국간대장경판을 이른바 「팔만대장경」이라 한다.
지면 관계로 「팔만대장경」과 「사간장경」의 대강을 적어 내외에 알린다.

2. 팔만대장경과 대장목록(大藏目錄)

(1)팔만대장경의 의의

팔만대장갱의 팔만이란 껏은 서천(西天)의 법(法),물건이 많음을 나타낼 때, 팔만사천의 수를드는데, 인간의 번뇌 많음을 들어 「팔만사천진로(八萬四千塵勞)」라 이르고, 교문(敎門)이 많음을 「팔만사천법문」 이라 이르고, 법성(法性) 무량(無量)의 성덕(性德)을 함장(含藏)하므로 「법장(法藏)」이라 하는데, 중생에게 팔만사천 번뇌의 병이 있기에 부처님이 이를 퇴치하기 위해 팔만사천의 경전을 설하였으므로 「팔만사천법장」또는 「팔만법온(八萬法蘊)」이라 이른다. 탑(塔)이 많음을 나타낼 때, 「팔만사천탑」이라 이르며, 비상천(非想天)의 수명이나 인수(人壽)의 최장을 「팔만사천세」라 이르고, 「팔만사천법장과 十二부경」을 「八만十二」라고 하였으니 그 수치를 약하고, 그 큰 수를 들어서 「팔만대장경」이라 하였다고 본다. 불교의 모든 경전을 경·율·논장(經·律·論藏)으로 나누는데, 이를「삼장(三藏)」이라 이르고, 통칭하여 「대장경」이라 하며, 또는 일체경(一切經), 장경(藏經), 해장(海藏), 중경(衆經)이라고도 한다. 「삼장」이란 말은 양무제(梁武帝:A.D.520년경) 때, 승우 찬(僧祐撰)인 「출삼장기접(出三藏記集)」에서 처음 나타나며, 그 뒤 수·당(隨·唐)을 거쳐 후진 고조(後晉 高租)때, 가홍(可洪)이 지은 음의서(音義序)에 대장(大藏)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다. 대장이란 말이 나오자, 삼장은 소승경(小乘經)의 이명(異名)이 되고, 대장은 대승경(大乘經)의 이명으로 한 때 유행되었다. 대장이란 불교성전의 전서(全書) 총서(議書)라 하는 총칭이고, 또 경전의 일부분을 지칭하여 대표격으로 호칭할 때도 있다. 그러나, 불조통기(佛祖統記)에 “당 원화 2년(唐 元和 二年 A.D.807)에 칙입대장(勅入大藏)”이란 말이 나오나,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불조통기가 남종(南宗) 함순(威淳) 5년(A.D.1269)에 지반(志盤)이 엮었다 하니 그가 약 460여년 전에 대장경이란 말이 관용되었다고 기록한 것은 증거가 불충분하므로 당(唐) 이전으로 소급하기는 어렵다.

(2) 대장경판조조연대 (大藏經板雕造年代)

대장경의 조조회수는 2회설과 3회설이 있는데, 2회설은 고려 현종2년(A.D.1Ol1)에 거란(契丹)의 침공을 받았으므로, 불력을 벌어 퇴치하기 위해 현종 때 발원하여 이룩하고, 이어 대각국사(大覺國師)가 장소(章疏)를 모아 속장(續藏)을 완성하였다. 이 현종판과 고종판만을 인정하는 것이요, 3회설은 일본인 소야현묘(小野玄妙)가 제창한 것인데 제1회 현종판, 제2회 문종판(부인사판), 제3회 고종판(해인사 봉안판)이 그것이다. 현종판·고종판 이외에 부인사판(府仁寺板)이 더 있다고 역설하였으나, 개판연대·유래·발원인 등이 아직 미상이므로 나는 분명한 2회설을 취하여 간단히 언급해 본다.

(3)초조대장경(顯宗板)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공을 불력을 벌어 물리치기 위해 대장불사를 발원하여 완성하고, 다시 선종(宣宗) 4년(A.D.1087)에 이르는 사이 무려 76년간에 걸쳐 일부씩 조조한 것이리라. 대각국사가 송나라에서 모아 온 장소(章疏)로 속장(續藏)을 이록하였다. 현종 이후 문종·선종간에 이룩된 대장경은 송(宋)의 개보판(開寶板)과 지금은 없어진 거란판(契丹板)에 의거한 바가 많았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가장 완비된 대장경으로 부인사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고종 19년(A.D.1232)에 몽고병이 쳐들어와 민족숭앙의 대상인 무상국보(無雙國寶)를 불태워 버렸다. 지금은 그 판본 몇 종이 일본에 남아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4)재조장경(再造藏經 高宗板)

이 대장경판이 현재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는 경판이다. 고종 19년에 몽고병이 침범하여 부인사소장의 초조대장경을 불태워 버리고 북새질 할 때, 다시 대장경을 만들어 부처님의 법력을 벌어 몽고병을 퇴치하기 위해서 이 대장불사를 완성하였다. 때는 고종 23년(A.D.1236) 병신(丙申)에 착수하여 고종 38년(A.DJ251) 신해(辛亥)에 완성하였으니 온 국력을 기울여 16년 걸려 대 불사를 이룩하였다. 당시의 문호 백운(白雲) 이규보(李奎報)가 고종 24년(A.D.1237) 정유(丁酉)에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析告文)을 지어 다시 새기려는 서원을 불전에 기고하였다. 이 기고문에 “거란병이 현종 2년에 개성에 침범하여 물러가지 않고 머물러 있으므로, 그 때 임금과 신하가 무상대원(無上大願)을 세워 대장경을 판에 새기기를 서원하였더니 거란병이 자진해서 물러갔다. 그런즉 그 때나, 지금이나 같은 대장경이요 판에 새기는 것도 다를 바가 없으며, 군신이 함께 서원하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니 그 때의 거란병은 스스로 물러갔는데 오늘의 몽고병인들 어찌 물러가지 않으랴(東國李相國集)”라고 하였다. 그러나, 일본인 지내핑(池內宏)이 이규보가 이 글을 짓기로는 고종 24년(A.D.1237)인데, 현종 2년(A.D. 1011)은 그로부터 226년전 기사이므로 사료(史料)의 성질상 이규보의 기록을 함부로 신용할 수 없다. 거란병 침입의 경로와 상황을 보아 불가해(不可解)의 소전(所傳)이라 하였다. (池內宏 高麗朝의 大藏經 東洋學報 卷十三)
그러나, 송본(宋本)·란본(丹本)이 새겨진 때에 국정은 매우 다사다단(多事多端)한 시에 서원각성(誓願刻成) 하였고, 어려운 일을 불력영험에서 면했다는 기적은 흔히 있는 사실이며 그 때의 신앙·민정의 동향으로 보아 “불가해의 소전”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이규보(李奎報)의 기고문에 “지금 이미 대소 재상과 문무백관들과 함께 큰 원을 세우고 주관하는 관청을 두어 한편으로 대장불사를 시작하였다”(今與宰執文虎百寮事 國發洪願 已署置勾當官司 俾之經始)라 하였으므로, 고종 23년(A.D.1236)에 도감(都藍)을 두어 대장불사에 착수하였다.
①대장목록(大藏目錄)과 재조장경(再造藏經·海印寺板)
고종 23년 병신(丙申)에 강화도에 본사도감(本司都監)을 두고, 남해(南海)에 분사도감(分司都監)을 두고서 이 대장불사를 착수하여 13낸만에 정장(正藏)〈天雲大般若經에서 洞函 一切經音義까지l〉이 완료되었으므로 고종 35년(A.D.1248) 무신(戊申)에 이 대장목록을 조조(調造)하였다. 진주분사설(晋州分司說)은 잘못이다.
이 대장목록 하권 마지막 35장 맨 끝에 “무신년 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成申年 高麗國大藏都監奉勅調造)”라고 새겨져 있으니 분명히 고종 35년 무신에 이룩된 것이다. 찬자의 이름은 보이지 않으나, 이 일을 맡아 본 수기(守其) 스님은 당시 오교도승통(五敎都僧統)이며, 대장교정별록(大藏校正別錄) 30권을 만들었으므로 아마 수기(守其) 스님이 아닐까 한다.
무상국보(無雙國寶) 팔만대장경판(再造藏經)은 대장목록에 기록된 정장(正藏·正藏經)과 대장목록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부장(副藏·補遺藏經)으로 대분된다. 정장은 천함(天函) (1)대반야경(大般若經)에서 동함(洞函)(639)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까지의 경판을 말하며, 부장(보유장경)은 녹함(綠函)(640)에서 무함(務函)에 들어 있는 종경록(宗鏡錄)이하 보유목록(補遺目錄)까지의 17종의 경전을 말한다. 대장목록(3권)의 판수는 67판, 장수는 124장인데, 이 경판 속에 현 해인사판(再造藏經) 대장목록이 실려 다. 이 목록을 통해 보면, 어떤 경전이 대장경에 포함되어 있는가를 쉽게 일람할 수 있다. 이 대장목록엔 천자함별배열(千字函別配列), 권수표시, 입지첩(入紙牒), 장(張)표시, 경명표시, 역자(譯者)·찬자(撰者) 시 등으로 구분하여 간략하게 그 대략이 밝혀져 있다.
대장목록에 실려 있는 정장의 경권 ·찬수 등을 총괄해 보면 아래와 같다. |

총 경 종 … 1,524종
총 권 수 … 6,606권
총 판 수 … 78,500판
총 장 수 …154,299장
총천자함수 … 639합
(고종 35년 당시의 대장목록 권수는 6,569권이다.)
P.1 대반야경(大般若經)∼P.1524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

천비천발대교왕경(千譬千鉢大敎王經) 10권이 이중(二重)되어 있으나, 그 중 1종이 대장목록에 누락되어 있다. 대장경판전 계함(溪函)과 계함(雞函)에 이중(二重)되어 있다.
필자는 현재 해인사에 봉안중인 팔만대장경 총권수를 6,844권으로 주장한다. (대장목록…6,569권 천발경…10권 백강본증권…27권 보유목록…238권)

②대장경 한질의 입지수량과 인경불사(印經佛事)
팔만대장경 한질을 인경하려면, 닥종이가 얼마 드느냐 하는 문제다. 필자가 해인사 현지에서 대장경을 조사연구하면서 얻은 결과를 적어 본다. 필자의 논문 대장목록판의 내용적 가치비판”(성봉 김성배 박사회갑 기념논문집 1977. 9. 10발행)에 소상하게 밝혔으나, 여기 다시 대장목록 상·중·하권에 구분 표시해 보면,

상권 27동 38축 11장 54,771장
중권 30동 8축 12장 60,172장
하권 19동 67축 16장 39,356장
상권 77동 14축 19장 154,299장

정장 한질을 인경하려면 입지수량이 77동 14축 19장(l54,299장)이 소요되며, 부장(補遺藏經)이 3동 17축 3장(6,343장)이 소요되므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입지 수량은 80동 32촉 2장이다.

정장(正 藏 經) 77동 14축 19장 154,299장
부장(補遺藏經) 3동 17축 3장 6,343장
계 80동 32축 2장 160,640장

(筆者 東洋文化硏究 No.4 大藏經의 二重板과 補遺板硏究)
여기 “장”이란 한저지 (韓楮紙:닥종이)의 단위다.

편집자 주: ‘세계의 성보팔만대장경’은 上 ·下로 나누어 2회에 걸쳐 게재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