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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무나 강변의 옛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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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시 - 돈연 1985년 06월 40호
고시타라마는 이제 부서지고 없읍니다. 밀밭 속으로 석양 햇빛이 낮게 깔리고 야무나에 배 띄우는 사공의 갈색피부만 튼튼하게 남았읍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코삼비의 옛 성터. 친절한 파출소의 늙은 순경 아저씨가 잠자리를 내주었읍니다. 잊혀진 성지는 낮은 구릉들에 둘러 쌓였읍니다. 어디에나 불탄 벽돌들이 딩굴고 왕궁의 연못이었을 웅덩이엔 검은 소떼가 벽을 감고 있읍니다. 인도 소는 물을 좋아합니다. 백성이 느긋하게 사는 것처럼 말입니다.

돌아보면 서쪽에 섬 같은 산 하나 강을 건너면 뜨거워진 열토 힌두평원이 데칸고원의 등에 업혀 있읍니다. 하루한번 왔다가는 버스를 놓치면 사라이 아키르라는 마을에서 채찍에 헐떡이는 마차를 타고 와야 합니다. 주점은 물론 여관도 없는 이곳 그저 망각의 페이지에 묻혀있는 역사의 땅이 코삼비입니다.

먼나라 왕자에 얽힌 질그릇쟁이 소녀의 사랑얘기도, 아혼 아홉 공주의 허리굽은 얘기도 다 흘러간 옛 노래입니다. 승려도 없고 불교사원도 없읍니다.

인도의 삼형제 종교 중 코삼비에서는 자이나교가 제일 입니다.
큰형 힌두교는 마을에서 점잖고 둘째형 불교는 권력과 재계에 너무 밀착했다가 모슬램에게 박살이 나버렸읍니다. 막둥이 자이나교는 애교있게 버티고 있읍니다. 밉지 않고 요란스럽지 않게.

잊혀진 곳은 아름답고 버려진 곳은 한적합니다. 유채꽃밭 사이로 어둠은 자리를 펴기 시작하고 자치기를 하던 아이들도 노를 젓던 사공도 집으로 돌아갔읍니다. 가람과 왕궁의 터는 시간의 사리를 몸에 걸치고 잠자리에 들고 있읍니다.


※주
코삼비는 밧사족이 다스리던 야무나 중류의 부족국가로 문물이 ‘번창했었다. 부처님은 이곳을 자주 오셨다. 훗날 이곳은 불교학이 융성했으며 무착(無着)이 현양성 교론(顯揚聖敎論)을 지었고 세친(世觀)이 유식론(唯識論)을 지은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