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譯經) 잘 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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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김윤세
1985년 06월 40호
우리 불교계가 이시대 이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좀더 관심을 쏟아야 할 사업은 역경(譯經)이라고 본다.
종단이 역점을 두고 펼치는 세가지 중요사업으로는 일반적으로 포교(布敎)·역경(譯經)·교육(敎育)을 드는데 다른 사업은 그런대로 관심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데 반해 역경은 그렇지 못한 형편이다.
포교와 교육의 기본자료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불교를 이 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에 맞게,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최일선의 작업이 바로 역경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오늘의 역경사업이 이대로가도 괜찮은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불교라는 「음식물」을 우리의 피와 살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불교경전을 막론하고 모두 우리 글과 말로 바꾸어 받아들이는 한편 그것을 더욱 알기 쉽게 풀이 요약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역경사업이야말로 이시대 우리나라 불교계 최고의 지성인들이 피와 땀과 인생(人生)전부를 바쳐서라도 이룩해 놓아야 할 최대의 과제가 아니겠는가.
일천 육백 여년 불교 역사를 돌아볼 때 우리의 선인(先A)들은 불교를 수용하고 그것을 그 시대 대중들에게 전하기 위해 줄기찬 노력을 기울여왔다.
비록 우리 글이 없던 신라·고려시대만 해도 그 당시의 문자(文字)로 경전의 의미를 좀더 알기 쉽게 풀기 위해 원효(元曉), 의상(議湘)을 비롯 지눌(知訥), 의천(義天) 등 수많은 지성인들이 경판에 대한 주석(註釋)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교화(敎化)에 생애를 바쳤다.
조선 세종 때 우리 글이 창제된 이래 가장 먼저 착수된 일은 석보상절(釋講詳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등 불전(佛典)의 한글화 작업으로 불교가 한글사용을 주도하기도 하고 불교의 대중화도 활발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업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한글이 대중화되기 시작했지만 불교관계 모든 저술들을 우리글로 바꾸려는 시도는 지극히 미비한 실정이었다.
한가지 아이러니칼한 것은 한글의 대중화를 선도적(先導的) 입장에서 가속화시킨 것은 기독교 선교(宣敎)를 위한 성경(聖經)의 번역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이 땅에 상륙하면서부터 맨 먼저 성경의 한글화 작업을 추진,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상언어로 번역해서 보급했다.
성경 번역은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적 노력과 정성에 의해 이루어졌고 또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계속 개역 (改譯)되었으며 지난 68년 신구교 대표로 구성된 공동위원회 결의에 따라 공동번역을 추진 「공동번역성서」가 77년 발간되기도 했다.
그들의 선교활동과 신학(神學)적 활동이 모두 이 번역본 성경을 토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역경사업이 교육과 포교활동 전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의 역경사업은 지금 어떤가? 지난 62년 역경위원회법을 제정하고 64년 3월 1일 동국대 부설기관으로 동국역경원(東國譯經院)을 발족시켜 30년 동안 모두 2백50집을 발간한다는 계획아래 역경을 추진해 왔다.
초창기의 역경은 무적 활기차게 펼쳐져 한때 국고보조금 또는 문예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으며 년간 8책 번역에 책당 4천부씩 발행되다가 지난 78년부터 지원금의 완전 중단으로 역경(逆境)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 년간 1책 번역에 책당 1천부씩 발행해 오고 있으나 그나마 재정난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며 지금까지 20여 년간 번역된 것은 1백 책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종단적 차원이 아니고 일반 출판사 단위로 간간이 번역 출판되는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역경이 교계 내외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볼 때 그런 현상이 바람직한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옛 어느 선사(禪師)의 가르침처럼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이루고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毒)을 이루듯(牛飮水成乳 蛇飮水成毒)」수용여하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 또한 잘못 전달될 우려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수용하여 이시대 이나라 국민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될 우유를 공급할 수 있는 소(譯經人)를 종단에서는 어떻게 기르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전국 어느 사찰, 어느 강원에서 전문 역경인들을 중점 교육하고 양성하는가? 또는 종립학교에서 오늘날 대부분의 연령층이 60∼70세인 역경위원들의 뒤를 이어 역경에 종사할 인재를 어떻게 교육시키고 배출시키는가?
역경에 종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인재」들은 많아도 막상 대상 서책(書冊)들을 던져주고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經典)과 우리 선현들이 수용했던 우리화(化)된 불교(한국 佛書)를, 살아 숨쉬는 이 시대의 우리말로 바꾸라고 주문한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해낼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이 나라의 불교, 특히 2천년대의 미래불교 발전을 염원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문제를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지 않을 수 없도록 이 문제는 심각하다. 불교학을 전공한 모든 학생들과 승가대학 학인들 또 강원, 선원의 학인·수좌들은 「가능성의 인재」이긴 하지만 소정의 특수교육을 거치지 않고 그런 작업을 해내기란 심히 어려운 것이다.
또 그런 소정의 특수교육은 단기간의 과정으로 될 문제가 아니란 것쯤은 이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요약해 말하자면 역경에 종사할 역경인 양성을 통한 역경사업의 활성화와 단절 위기에 놓인 원로 역경인들의 역경사업 계승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원로 역경인들의 뒤를 이어 역경에 종사할 젊은 인재들을 대다수 양성 내지 확보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불교학 발전의 밑거름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겠는가?
이들을 양성하는 방법은 종단의 현존 교육기관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과 동국역경원의 시설 확장을 통한 기능 활성화 방안(여기에는 역경인 양성사업도 포함되어야 한다) 및 모든 기능을 고루 갖춘 종합 역경기판의 설립 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뭏든 방법이야 어찌됐던 간에 역경을 담당하는 기관은 한문(漢文)연수는 물론 산스크리트·팔리어·티벧어·일본어 연수와 기타 관련 사회과학 교육도 병행할 수 있는 대규모의 시설을 갖춰야 한다. 이들이 소정의 교육을 마치고 역경에 착수할 경우 원로 역경인들의 증의(證義) 즉 교열(校閱)을 거쳐 윤문(潤文)을 한 뒤 책으로 묶고 그것을 다시 내용별로 또는 주제별로 요약 축소하고 더욱 쉬운 말로 풀이 독자 계층별로 알 맞는 읽을 거리를 계속 제공토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또 세월이 흐름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언어(言語)양태로 새롭게 해석하도록 하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역경의 활성화 없는 불교학 연구는 기초가 든든하지 못한 땅에 건물을 짓는 것과 같고, 역경인을 양성하지 않고는 역경사업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본다.
역경의 활성화를 삼보(三寶)전에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