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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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시명
1985년 06월 40호
순수한 모순(予盾) 장미의 계절 유월.
눅눅한 바람과 함께 초여름의 햇빛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때. 이젠 청천(靑天)의 길을 걷기에는 너무 덥고 권태롭다. 묵은 걸망을 벗어 던지고 시원한 계곡에서 발이라도 담그고 싶을 즈음이면 제방(諸方) 선원에서는 여름 안거(安居)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는 행여(行旅)의 때가 아니다. 행각(行脚)에서 얻어진 번잡하게 떠돌던 생각들은 흘러가는 냇물에 씻어버리고 전장(戰場)에 나서는 무사와 같이 의연(毅然)히 녹수(綠樹) 깊은 산으로 돌아 와 면벽관심(面壁觀心)으로 저마다 지혜의 보검(寶劍)을 시퍼렇게 가는(磨) 때이다.
이제는 지줄거리며 말할 때가 아니다. 일주문의 빗장을 닫아 걸고 선원마다 죽비 치는 소리와 치열한 구도열(求道熱)이 오뉴월 햇살처럼 뜨거운 시절. 침묵의 천길 벼랑으로 내려 앉아 모든 욕망의 물결을 잠 재우고 안으로 안으로만 함묵하는 큰 바위처럼 되어 보는 때.
출가하여 수행자가 된다는 것은 서산(西山) 스님의 말씀처럼 편하고 한가함을 구함도 아니요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며 명예나 재산을 구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생사(生死)의 괴로음에서 벗어 나려는 것이며, 번뇌의 속박을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가없는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다.
세상에 인간들이 짓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많이 있지만 이처럼 고귀한 일이 또 있을까. 그 많은 스님네가 모두 부처를 이루어 한량없는 자비심으로 중생을 구제한다면 그 보다 더한 경사(慶事)가 어디에 또 있겠는가.
년전(年前)에 타계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The Art of Loving」이라는 책에서 이야기 하기를 이 땅에 있는 존재들을 위한 기도와 종교적인 명상 즉 참선이야말로 인류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행위이며 이러한 기도와 참선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참여라고 서술한 바 있다.
참여란 직접적인 행동이라고 우리는 흔히 이해하고들 있지만 침묵과 사색을 통하지 않은 행동과 참여처럼 위험한 일도 없다. 자신에 대한 반조(反照)란 오직 침묵과 사색 속에서만 가능하고 위대한 행동은 오랜 침묵과 사색의 결과라면 지나친 억설일까. 새가 높이 날기 위해서 오래 머무르며, 더 멀리 뛰기 위해서 우리는 몇 걸음 물러서지 않으면 안 된다.
저 유명한 선가(禪家)의 영원한 스승 달마스님께서는 관심론(觀心論)에서 말씀 하시기를「마음을 관(觀)하는 이 한가지 법이 모든 행을 다 거두어 들이는 것이니 이 법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다. 마음이란 모든 것(萬法)의 근본이므로 모든 현상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 그러므로 마음을 깨달으면 만가지 행을 다 갖추게 된다. 이를테면 여기에 큰 나무가 있다고 하자. 그 나무의 가지나 잎이나 열매는 모두 뿌리가 근본이다. 나무를 가꾸는 사람은 뿌리를 북돋울 것이고 나무를 베려는 사람은 그 뿌리를 베어야 할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마음을 알고 도를 닦으면 많은 공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이룰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음 밖에서 따로 구할 도가 있다면 그건 옳지 않은 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미루어 오늘날 현대인의 비극 중의 하나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사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사색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는 것은 물론, 그런 것들을 가질 생각마저도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한 정신적 빈곤 때문에 필연적으로 격어야 되는 사회적 문화적인 빈곤은 말할 것도 없고 결과적으로 현대적 상황은 인간성이 죽어가는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이미 우리 스스로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물질이 팽대할대로 팽대된 지금 물질적 풍부가 행복의 한 조건은 되지만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미 실증되고 있는 일이거니와 결국 행복의 근원마저도 우리는 정신에서, 마음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지는 시절. 여름 동안 우리 모두 더위 때문에 창을 있는 대로 열어 놓으리라.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마음속의 뜨거운 열뇌(熱惱)를 식히도록 우리들 마음의 창을 먼저 열어 보면 어떨까-의롭고 착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네 마음에 가득차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