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이 여름의 해인사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가족이 함께하는 자리 - 김정자 1985년 08월 42호
눈덮힌 가야산을 볼려고 원을 했더니 뜻밖에 울창한 숲의 성하(盛夏)를 먼저 보게 되었다.
입구부터 베어난 지세(地勢)에 경의의 눈을 뜨고 나무가지 하나 놓치지 않을새라 주위를 주시하다가 나도 모르게 금강경(金剛經)을 독송하고 있었다. 동행한 친구가 그 소리는 전생부터 한 것 같다고 말한다. 하기야 전생에 이곳에 드나들었는지 우매한 중생이 알 턱 없고 환희심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아오른다.
아름드리 나무들은 천년의 숨결을 간직하고 정기(精氣)마저 어렸다. 산세(山勢)의 기운은 힘차고 활기가 넘쳤으며 고운(孤雲) 선생이 꽂았다는 나무 아래 서니 감회가 깊었다. 이 나무 아래 많은 각인(寬人), 현인(賢人) 또는 범인(凡人)이 지나 갔을 것이고, 수 없는 눈비와 풍상이 스쳐 갔을 것이며 온갖 생멸이 이어져 갔을 것이다. 내 여기 마음이 가자 하여 나무 밑에 서게 되니 감회가 일지 않으랴.
이윽고 손을 씻고 대웅전 참배를 하고 장경각을 두루 관람했다.
옛 조상의 슬기에 머리가 숙여졌다. 장경각에 얽힌 신비한 이야기를 스님을 통해 들으니, 이때 만큼이 나라 백성이 된 것이 자랑스러운 적은 일찌기 없었다.
깊은 산사(山寺)의 밤은 일찍 온다. 정적(靜寂)은 나래를 펴고 산사에 깊숙히 잠적했다.
술렁이는 소리에 방문을 열고 내려다보니 종정스님이 오신 모양이다. 같이 온 친구는 종정스님 친견이 원이라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스님이 일러 주신다.
삼천배하면 이루어졌던 스님의 친견도 요즘 불가능하게 되자 어떤 보살이 스님의 포행(步行)하시는 시간에 맞추어 앞에 나아가 절을 했더니 본적도 안 해 그 다음날은 스님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나, 그 사람의 지기(智機)와 집념에 한바탕 웃고 진정한 친견은 형상을 잡는데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진(精進)할 때 누구나 다 함께 있으면 그것이 곧 친견이 아닐까?
하지만 한 도인의 그늘은 어두운 이들에게 추앙의 대상이며 우리의 참 마음의 등불이기도 하리라.
흐르는 물소리에 잠을 설쳤는데 은은히 들리는 종소리에 놀라 일어나 새벽 예불을 했다. 대웅전만 아니라 곳곳마다 예불을 모시는 정경을 접하자 대가람의 위엄이 피부에 와 닿는다. 일사불란한 예불의 모습은 인간이 좀 더 고귀함을 일깨워 준다.
아침 햇살이 퍼지기 전에 지족암을 올라갔다. 울창한 나무가 터널같이 된 오솔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지족암을 거쳐 희랑대에 올라가니, 웅장한 산마루가 우뚝우뚝 솟아 있고 해인사 가람이 한눈에 보인다. 이곳은 특이한 기운을 가진 곳이 있다. 알고 보니 나옹선사가 앉아 정(定)에 드신 곳이라 했다. 말세중생이 그곳에 앉으니 오늘을 있게 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한편 고맙기도 했다.
해가 산마루에 있을 때 우리는 내려왔다. 사계(四季) 어느 철이나 다 특색이 있겠으나 활목이 하늘을 덮은 여름의 가야산은 해인사의 기운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좋았다.
곳곳이 푸르름, 솔내음, 물소리, 산길을 누비고 다니는 다람쥐, 고운 잠자리 떼들, 울어대는 매미들이 자연의 오케스트라가 되어 펼쳐진다. 그 광경은 참으로 즉비장엄(卽非莊嚴)이며 사명장엄(是名莊嚴)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