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부처님의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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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란분절에 - 행자
1985년 08월 42호
어머니!
오늘도 하루의 규칙적인 일들을 모두 마치고 스님들이 거처하시는 큰방에선 방선(放禪)을 알리는 죽비소리가 들려읍니다.
간간히 틀리는 풍경소리와 함께 이 산의 모든 분망함이 자시는 시간, 이제서야 저도 제 자신으로 돌아와 앉습니다.
어머니,
지난 겨울 한 통의 편지만을 남긴 채 당신을 떠나온지 어느덧 반년, 그 긴 시간들을 무엇으로 메꾸셨는지요?
내일이 바로 당신의 쉰 한 번째 생신임을 오늘에서야 기억해 내었읍니다. 왠종일 당신 생각으로 마음이 착찹했었읍니다.
지난 겨울, 그 엄동설한 구도의 길을 결심했을 때 수없이 저를 망설이게 한 것은 부도 명예도 지식의 욕망도 아닌 바로 어머니 당신이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 곳에 와서 출가한 자식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이는 어머니들을 볼 때마다 내 어머니, 당신의 모습같아 눈물을 흘린지 몇 번인지 모릅니다.
언젠가 제가 연락없이 하룻밤을 다른 곳에서 유하고 왔을 때 밤새 한숨도 못 주무시고 새벽을 맞으셨다는 당신, 꾸중대신 차라리 안으로 눈물을 보이셨던 어머니 당신을 생각하면 이미 구도의 결심으로 당신을 떠나온 몸이지만 스무 해가 훨씬 넘는 긴 시간들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던 당신으로부터 떠날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어머니, 이제는 흐르는 세월 따라 조금씩 당신으로 인한 아픔도 출가의 본분으로 삭히게 되고, 당신의 고통도 당신으로 인한 저의 흔들림도 부처님 앞에서 새로이 승화를 합니다.
처음 이곳에 와서 산사의 생활을 시작했을 땐 모든 것이 낯설고 스스로에게 부족함 뿐이어 철부지 어린애마냥 당신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이곳의 모든 생활에 익숙해지고 다소 여유가 생기고 마음도 한결 평온합니다. 이곳 대중 스님들의 일상을 통해, 그대로가 진리인 이 산 속에서 수도자의 삶을, 그 본분을 끊임없이 배웁니다.
날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새벽별을 보며 출가의 뜻을 다집니다. 이제는 고달프지도 슬프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 이제는 당신께서도 이 자식에 대한 모든 속세의 염원을 거두시고 수도자의 길을 잘 걸어 나가도록 힘을 주소서.
이제는 더 이상 이 몸으로 인해 상심치 마시고, 제가 안일해져 수행을 게을리 할 땐 제일 먼저 일어나 불같이 꾸짖어 인도하소서.
자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주신 어머니, 그 사랑 그 자비로 이제는 굳건하시고 부디 눈물 거두옵소서.
어머니,
그렇게 믿으셨던 맏자식이 떠난 뒤 처음 맞는 생신, 가족들 앞에서 눈물 보이지 마시고 당신의 환한 웃음 모두에게 밝히소서. 당신이 아끼시던 낡은 염주를 돌리며 어머니 당신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당신으로 인해 이제는 더욱 매사에 참되고 정성스러워 질것입니다.
어머니, 지나간 반년이 그러했듯 세월이 물 같이 흐르고 이 자식이 부처님의 사람으로 성숙하여 먹물 옷을 입고 진정 어머니 당신의 세월 앞에 설 수 있다면 언제고 한번 뵈러 가겠읍니다.
언젠가는 그간의 이 몸과 슬픔들이 영원한 기쁨과 환희로 변해지리라 믿어봅니다.
이 더운 여름날 어머니 부디 건강하소서. 부처님께서 편안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