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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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란분절에 - 김응문
1985년 08월 42호
어머니!
‘어머니!’
하고 부르면 아직도 나의 가슴 가득 눈물이 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세상으로 혹 떠나신지 이미 오래 그래도 그 모습 그 목소리 변치 않음은 그 사랑 그 은혜가 없음이니,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몇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도 나는 늘 어머니에게서 근심스런 어린 자식임을 철없던 그땐 진정 몰랐음이다.
세상을 살면서 이런저런 일에 부딪혀 기쁘거나 슬플 때 그 누구보다 먼저 생각하는 분, 그럴 때면 늘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가게 된다.
때로는 칠흙 같은 밤, 때로는 서편에 달이 지는 새벽무렵, 내가 홀홀이 서서 슬픔을 하소연 할 때,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길 없는 슬픔, 기쁨을 털어 놓을 때, 변함없는 그 모습, 기쁨에는 나보다 더 기뻐하시고 슬픔에는 나보다 더 안타까이 슬퍼하시는 분, 어머니.
비록 오래 전에 육신은 가셨지만 그 마음은 늘 “얘야, …” 하고 내 마음속에 계신다.
부처님 10대 제자이신 목련존자께서는 그 어머님이 죄를 많이 지어 죽어서 아귀도에 빠져 괴로워 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를 구하고자 부처님께 애원하셨다 한다. 부처님께서는 일백가지 과일을 차려 이 세상 모든 부처님들께 공양을 올려서 참회를 하도록 하여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했다고 한다. 음력 7월 15일은 중원(中元)날, 이날 백가지 과일을 차렸다 해서 백중 (百中,百種)이라고도 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스님들께서 재를 올리고 있다.
목련존자의 어머님이 살아 생전에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다 해도 존자에게는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자식에게 만큼은 자애로우신 어머니셨다.
그런 어머니의 사후 지옥행을 알고도 태연자약하였다면 아무리 뛰어난 존자라해도 한날 부도덕한 인간으로 밖에 평가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있게 해 준 제일 가까운 인연, 그 인연을 져버린 존자라면 어찌 중생을 제도하는 너른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인가.
7월 백중을 유래한 목련존자의 효심은 특별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스님으로서의, 사람으로서의 도리이며 한편 그 도리는 지극한 불심(佛心)이라는생각이 바로 든다.
한자로 효(孝)자는 노(老)자의 웃변과 자(子)자를 합친 글자로 자(子)가 노(老)를 받들고 있는 형상이다. 노부모를 떠받들고 공경하는 것이 바로 효(孝)자의 뜻이 된다.
부모가 없다면 ‘나’가 없을 것이요, 숱한 ‘나’란 개체가 모여 형성되는 인류도 또한 존재치 않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부모와 자식 사이는 선택할 권리가 없는 사이라 했다.
즉, 하나의 진리처럼 오는 인연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부모님은 내게서 얼마나 고맙고 존귀한 인연인가 ! 이제셔야 사무치는 고마움과 소중함을, 뒤늦은 후회로 다만 송구할 뿐이다.
돌아오는 백중엔 앞에 봐온 듯 어머님 앞에 절을 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