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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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기준 - 월운
1985년 08월 42호
부처님께서는 입멸에 즈음하여 “모든 것은 변한다 쉬지 말고 노력하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전한다.
이 ‘모든 것이 변한다’는 말씀은 우리들의 몸뚱이를 비롯하여 유형·무형의 것 어느 하나도 고정불변의 것이 없다는 뜻임은 쉬이 알 수 있다.
이렇게 부단히 변하는 사물 가운데서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의 하나가 가치기준의 변천이라 하겠다.
어제까지 아무런 값어치도 없던 것이 밤 사이에 껑충 뛰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오늘까지 소중히 여기던 것이 내일 별안간 쓸모 없는 물건으로 구박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기에 인간은 항상 새로운 가치질서를 찾아 나날이 발전의 길을 추구하고 있으며, 사회도 그에 따라 번영이란 고지를 누리고 있다.
이들 가치질서는 대체로 유형적인 것이 상례이지만 그 영역은 문화유산, 정신질서 내지는 조상에 대해서까지 그 부가가치를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값 싼 것을 버리고 비싼 것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분명 가상한 일이요 권장해야 할 일이겠으나 그것이 때로는 옥과 돌을 마구 버리는 경우가 있어 안타까운 것이다.
그 중에도 합천 해인사에 봉안된 팔만대장경은 누가 무어래도 우리 민족의 빛나는 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가치를 격하시키려는 인사가 있다는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약20년 전으로 기억되는데 함석헌씨라는 분이 쓴 “뜻으로 본 한국사”란 책에서 다음과 같은 귀절을 본 적이 있다.
“해인사에 소장된 팔만대장경은 전쟁에 시달리는 국민의 고통을 가중해 준 슬픈 유산이다. 몽고의 적병을 물리치려는 목적이 어찌 부처에게 경판을 새겨 바친다 해서 이루어지겠는가?”
매우 비위에 거슬리는 말이기는 했으나 문화란 자유로운 입장에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서 일단 꿀꺽 참아버렸었다.
“더구나 그 때의 상황이 수전(水戰)에 약한 몽고병이 침략하기 어려운 지점에서 국가의 상징인 왕만을 잘 지켜내면 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고 또 적의 침략에 당황하는 민중을 불심으로 통일시켰다는 전략적 장점을 무시한 착상이 아니겠는가”하면 과히 나무랄 일만은 아닐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현대적 민주주의의 관념에서 볼 때, 왕이 있는 강화도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 적병의 발굽에 시달리는 절대 다수의 민생을 위해서 외면했다는 것은 하나의 모순으로 지적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비판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요즘 문교부에서 중학교 국사를 편수하는데 이 대목에 이르러 “부처에게 적을 물리쳐 달라고 경을 새기는 대신 방망이를 들고 단 하나의 적이라도 때려 눕히는 일을 했었어야 했다”고 쓰여졌다 한다.
팔만대장경이 무조건 소중한 문화유산이건, 지탄 받아야 할 대상이건 가치의 기준이 이처럼 변했음에 더욱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수요와 공급이란 원칙에 의해 모든 사물의 가치기준은 부단히 변한다고 주장한 많은 지식인들 가운데 오직 변하지 않는 존재로서 인간의 순수한 이성(理性)을 들고 있다.
그러나 그 이성의 기준이 슬슬 변하는 모습이 우리의 앞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시대적 흐름이건, 인지(人智)의 발달에 따른 것이건 우리는 우리 조상의 유물에 대한 비판적인 도전에 효과적인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쉬지 말고 노력하랍시는 가르침 속에 노력해야 할 부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