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성품, 이 보편적으로 내성적이며 사색적인 것으로 여러 불전(佛傳) 문화에 기록되어 있다.
대체로 인도의 크샤트리아 즉 왕·귀족의 교육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대개 추측에 의하여 범서(梵書) 카로늘타서-천문지리학, 수학, 과학, 의학, 언어학, 음악, 철학 등의 다양한 64종의 학문과 코끼리 타는 법, 지휘하는 법 등의 온갖 무예를 교육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개 교육의 시기는 7세부터 부터 9세까지의 12년간이었음을 알 수 있고 「보살은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다고」 그 총명함을 전하고 있읍니다.
대개 바라문 계급의 자제들은 여덟 살부터 12년동안 크샤트리아계급의 자제들은 11세부터 12년간 바이샤 계급의 자제들은 12세부터 12년간 동안 각각 스승(阿闍梨)을 따라서 그들이 가장 존중하는 베다(Veda)를 배웠지만 천민인 수드라만은 노동과 봉공하는 일 외에는 글을 배우고 신을 찬송하는 일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라문, 크샤트리아, 바이샤 계급의 자제들로서 특히 머리가 좋고 재간이 있는 사람들은 7살부터 배우게 되어 있었읍니다.
12년 동안에 배우는 베다는 리그베다(Reg Veda) 샤마베다(Sama Veda) 야주르 베다(Yajur-Veda) 등 3베다와 자소학(字彙學) 어원학(語源學) 사전(史傳) 문법학(文法學) 등을 배웠으며 그 당시의 철학서인 우파니삿트 등을
배웠음을 알 수 있읍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성도후 나에 대한 관점, 상주관(常住觀), 열반관(涅槃觀) 등 그 밖에 여러 이론적 근거를 거기서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학문과 기예(技藝)를 열심히 연마한 보살은 결혼 할 나이에 이르렀읍니다. 틈만 있으면 뒷뜰 고요한 숲 사이에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태자의 모습을 본 주위의 친척들은 태자의 이러한 태도를 걱정하고 있었읍니다. 「보살은 온갖 후궁에서 끊임없이 사색에만 빠져 있으니 세상 일에 너무 소홀한 것은 아닐까, 저렇게 하여 한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읍니다.
한편으로는 부왕 슛도다나왕도 하루 빨리 보살을 결혼을 시켜 자신의 자리를 물려 주어 그가 출가하지 못하도록 할려는 마음 뿐이었읍니다.
이미 보살의 배필로는 콜리성 슈파붓다의 큰 딸 야수다라가 선정되어 있었으나 그를 탐하는 다른 왕자들이 있어 인도 고대의 풍습을 따라 자찬식(自撰式)을 거행하기로 하였읍니다.
자찬식이란 왕녀가 다른 왕자와 더불어 약혼식을 하려 할 때 왕녀 앞에서 훌륭한 경기장을 설비하여 놓고 비슷한 여러 왕자들이 각자 익힌 문무를 겨루는 의식으로서 최후의 승리를 얻은 자가 왕녀의 손을 잡는 영광의 의식 입니다.
그리하여 정반왕은 그의 석가족과 변방의 여러 왕과 귀족을 초청하고 나라의 여러 귀빈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자찬식을 성대히 거행하게 되었읍니다.
먼저 행한 학문에 대한 시험은 하나를 들으면 천을 깨치는 태자를 당할 재주가 없었고 다시 경기장에서 거행된 각기(角技) 창쓰기, 기마, 활쏘기 등을 차례로 겨루어 보았으나 그날 최후의 경기인 칠철고(七鐵鼓)를 뚫고 공중에 혼들리는 금환(金環)을 맞춘 것은 오직 태자 한 사람이었으므로 관중의 환성과 태자의 나약함을 걱정하던 모든 사람의 의심을 풀고 마침내 야수다라는 보살의 손을 잡게 되었읍니다.
야수다라와의 결혼 생활은 이루 말로는 표현 못할 만큼 화려하고 즐거움으로 가득 했읍니다. 꽃같이 아름다운 신부와 이름다운 정원과 새로 마련한 궁정과 궁녀들의 주악 속에서 봄바람 가을 비에도 인생의 수심을 잊을 만큼 아름다운 날들 이었읍니다.
이러한 즐거움은 영원할 것 같았읍니다. 그러나 아무리 단 꿀이라도 여러 숟가락 먹으면 싫증이 나듯 차츰 환락에서 떠나 쉬는 시간에는 사색에 잠기기 시작하였읍니다. 오히려 마음은 한번 취해 크게 빠져 들어가도 결국 거기서 끝나지 않고 한층 더 옳은 것을 구하듯 궁중 밖의 세상이 보고 싶었읍니다.
어느날 보살은 「궁중 밖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자 대왕은 군신들에게 명령하여 주옥 칠보의 거마를 아름답게 꾸미고 성문의 길들을 개수하여 일체의 더러운 것이 눈에 띄지 않도록 하였읍니다. 그러나 첫날 보살의 거마가 동문을 향했을 때 아름다운 옷을 입은 청춘 남녀가 길을 메우고 태자가 지나가던 사람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꽃을 던지곤 했읍니다. 그런데 흘연히 허리가 꼽으라진 노인이 지팡이를·의지하여 걸어 오고 있었읍니다.
「당신은 누구요. 머리는 회고 눈은 어둡고 등은 굽고 겨우 한가지 지팡이에 의지하여 비틀비틀 걸으니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이는 늙고 쇠약하여 죽음이 가까와 온 사람입니다. 저도 옛날에는 황금과 같이 아름다운 청춘의 시절이 있었읍니다. 밤낮으로 오욕락을 마음껏 즐겼으나 이제 몸은 늙고 슬픔은 많고 마음은 괴롭습니다」
「그러면 당신만 그러한가? 우리들 모두 그러한가」
「이것은 인간 일체의 운명입니다」
태자는 이 소리를 듣고 마음에 큰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젊어도 언젠가는 저런 모습이 된다는 사실에 「가자, 생각생각에 노쇠 다가 오는구나. 이 땅의 무엇이 즐거우랴. 줄어드는 물 속에 있는 고기와 같거늘…」
군신은 보살의 우수에 젖은 말을 듣고 크게 근심되었으나 할 수 없이 궁중으로 돌아 왔읍니다.
부왕은 태자를 위로하기 위하여 베풀어진 외유회가 도리어 태자를 슬프게 해 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튿날 남문을 출유할 때는 더욱 엄정히 하였읍니다. 그런데 뜻밖에 병든 자를 만났고 삼일째는 네사람이 메고 가는 하나의 상여를 만나게 되었읍니다.
「가마를 장식한 꽃은 아름다운 데 어찌하여 뒤 따르는 자들은 저리 슬피 우는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메고 가는 가마입니다. 모든 근(根)이 무너져 생명이 끊어지고 정신은 멀리 떠나 형해(形骸)만 남아 있으므로 친척과 옛 친구들이 생전의 정을 잊지 못하여 저렇게 우는 것입니다」
「아 참으로 세상은 어리석구나. 죽음의 시간이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몰려오는데 어찌 즐거움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위태롭다 어서가자, 인생무상이 빠른 화살 갈이 밀려 오는구나」
그 때 대신 우다이가 옆에 있다가 뛰어난 변재를 가지고 태자를 달랬읍니다.
「사람은 한때의 젊음을 가지고 있읍니다. 이 때에 마음껏 향락하지 아니하면 어느 때를 기다리겠읍니까.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이 세상 누가 그것을 면할 수 있겠읍니다. 그러기에 젊어서 낙을 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부디 근심 걱정을 잊으시고 아름다운 태자비와 함께 부디 이 세상의 향락을 즐기십시오」
「나를 생각하는 것은 가상한 일이오. 그러나 내 정성껏 그대에게 고하노니 세상 일체의 쾌락은 무상한 것이라오 만일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이 나의 목전에 없고 홍안의 청춘만 계속된다면 나도 기꺼히 즐기리다. 그러나 인생은 무상하고 늙음과 죽음이 마치 전시의 적처럼 몰려오고 있으니, 어찌 그런 속에서 향락을 즐길 수 있단 말이오. 자 궁중으로 돌아가고 싶구려」
태자는 세상의 무장함에 눈 뜬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출가하여 참인생의 문으로 나아가고 싶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