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지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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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함께하는 자리 - 이호연
1985년 07월 41호
내가 처음 ‘海印’을 대한 것은 봄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의 강한 뙤약볕이 쪼이던 날이었다.
자대 배치이후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의 신병에게 새로운 선물이었다. 몸과 마음이 피로하고 어느 곳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울 땐 법당을 찾아가곤 했다. 지쳐가는 마음을 찾아 한번의 법문이라도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부처님 말씀 한구절 한구절 음미하며 그대로 내 호홉이기를 갈구하던 때 마침 ‘海印’을 대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해인지는 나의 군생활에서 즐거움 그 자체였다.
불교에 대한 정기 간행물을 여러 종 보아 왔으나 해인 만큼내게 깊은 감동을 준 것은 없었던 것이다. 불교의 시각에도 이렇듯 참신하고 도약적인 면이 있었구나 싶은 표지를 비롯해서 향상 법문이 듣고
싶을 땐 펼쳐놓기만 해도 가슴 가득 차오르는 종정스님의 지상법문은 나에게도 있을 불성을 찾도록 했다. 내게 찾아오는 강박관념을 가라앉혀 주는 여덟편의 시를 비롯해서 가벼운 휴식의 수상은 주장자를 짚고 할(喝)하는 스님의 모습을 연상시켰고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로 벽화 설명은 나로 하여금 이야기꾼이 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함과 동시에 우리가 불교에서 느끼는 전통에의 향수랄까 우리가 원하는 산사의 분위기로서 은은히 울리는 풍경소리 법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해인’은 나에겐 감동의 도가니였고 ‘해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지냈다. 발송일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어린아이가 보채듯이 법당을 들락거렸다.
이렇듯 내 마음 속에는 감동과 희열의 향만이 타오르고 있던 해인이었다. 이런 해인지에 욕심으로 생긴 소견인지 객관적인 안목이라 할지 좀더 발전된 해인지를 위해 몇가지 바람을 적어보고 싶다.
문서포교로서 해인지는 큰 역량과 역할을 지니고 있다. 서구 문물에 빌려 전통을 고수한다는 미명아래 은거내지는 방일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는 상황에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를 알리고 불교를 믿는 이들의 올바른 지도를 위해 해인이 좀더 넓은 독자층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너무 전문적인 부분은 피하여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읽을 수 있으며 읽으면 마음 뿌듯해지는 가장 기초적이고도 불자들이 등한히 할수 있는 문제들에 춧점을 맞추어 중·고생 수준과 대학 이상의 모든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내용을 많이 실었으면 한다. 예를 들면 스님들의 공부하시는 모습으로 견성(見性), 오도(悟道)하기 위하여 어떠한 각고(刻苦)를 하고 계시는지 그 진지한 모습을 독자들에게 소개함으로 해서 스님네를 가벼이 보는 경향등을 없애고 스님을 보면 그대로 마음에 발심의 탑이 세워질 수 있는 내용들이나 이외에도 신행의 문을 좀 더 보충 확대해서 우리들 스스로가 신행을 할 수 있는 설명, 즉 예불은 언제 올리고 의미는 무엇이다라는 쉬우면서도 항상 나즉한 목소리로 외울 수 있는 내용들이었으면 한다.
또 한가지는 사회의 일들에 어느 정도 참여했으면 한다. 마땅히 현실 사회와 함께 호홉해야 되는 해인지이므로 현실을 도외시 하고 불교만 나타낸다고 해서 해인의 자리가 커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을 만드는 데 고도의 기술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독자들에겐 특히 불자에겐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법보 종찰인 해인사에서 공부하시는 스님들께서 펴내신 책이 여법(如法)하게 되기 위해 승속(僧俗)이 한 무리되어 뛰어야겠다. 앉아서 해인을 받아보기만 하던 나도 이제는 단 한 사람에게라도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전할 것을 다짐해 본다.
부처님, 저도 부처님법에 의지하여 이생을 지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십시오
나무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