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사천) 다리 아래 비친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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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제월
1985년 07월 41호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고, 역사적 기념비는 창조적 천재의 무덤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사를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라고 한다면, 그 기념비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위대한 힘의 원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원효(元曉)스님은 한국불교사에서 뿐만 아니라 동양불교사(중국,한국, 일본)에서 기념비적인 존재이다. 동양 3국에서 경(經)으로 지칭되는 것이 6조 혜능(慧能)의 법보단경 (法寶壇經)뿐이라면, 보살의 칭호로 불리우는 자 또한 원효스님 뿐이다. 그리고 한국불교의 정초자로서 부동의 존재이다.
말세란 말세의 온갖 징후를 다 가지고 있는 오늘의 한국불교를 원효라는 커다란 빛속에 비추어 봄으로써 혼란된 시대, 방황하는 우리들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첫째로 간화선(看話禪)이 가지는 문제이다.
화두를 문제의식이나 의심의 덩어리(疑團)이라고 한다면 화두라는 의심이 정형화 되기 전의 문제나 의문은 개인적인 것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공안(公案)이라는 하나의 형식으로 정형화됨으로써 문제의 논리적 해결이나 깨달음의 내용을 추구하는 등의 여지를 철저히 박탈하였다. 이것은 간화선의 위대한 발견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약점은 가지고 있다. 자기자신의 문제에 철저하지 못하게 하는 점이다.
그러나 화두(話頭)라는 정형화(定型化)된 기관은 방정식과 같이 문제를 푸는 확실한 공식이기는 하지만, 괄호속의 내용을 무시함으로서 많은 병폐를 낳고 있다.
보편화된 문제의식 즉 공안을 채택함으로 자신의 절실한 문제의식보다는 대분심(大慣心)을 일으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현재 간화선이 가장 비판받는사회적인 대활(大活)의 활동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는 천길 낭떠러지에서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대사후대활(大死後大活)아니 대사즉대활(大死卽大活)이라고 한다면, 공안은 죽음의 땅에는 이르게는 하지만 대활의 길을 잃어버리게 했던 것이다. 화두가 자신들의 궁극적인 문제이거나 절실한 의문이었다면 죽음의 땅에 새로운 생명의 꽃을 피울 수 있었을 것이다.
원효스님이(해골 바가지의 물을 먹고) 깨달음을 얻은 신화적인 이야기는 아직도 우리들에게 생생한 감동을 준다. 스님은 중국선의 형성기라고 할 수 었는 보리달마에서 혜능에 이르는 즉 5조 홍인(弘忍)과 거의 동시에 살았다. 신라 선(禪)의 시작을 4조 도신(道信)의 법을 이어받은 법량(法郞)과 신행·무상의 선으로 본다면 원효 당시 중국선이 전래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선의 영향을 받은 흔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원효스님이 깨달음을 얻는 계기는 선적인 방법(신적(神的)이나 논리적이 아니라는 의미에서)이기는 하지만 공안을 탐구하는 간화의 방법은 아니었다. 그러고 현재 가장 비판받고 있는 선의 비사회적인 성격을 중촌원(中村元)은 중국인의 사유방법에서 6조 혜능의 이전과 이후의 선을 비교하면서 선이 논리적 기반을 잃어버린 것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선이 비논리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보편적인 인식의 기반으로서 논리성을 상실함으로서 이념화의 길을 잃고, 사회적인 윤리를 실천하는데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효스님의 깨달은 계기는 형식화된 공안을 자신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대활을 위하여 잃어버린 논리성을 회복하는데 생기를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승가라는 교단과의 관계에서의 원효스님의 위치다. 원효의 위대성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으나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요석궁(瑤石宮)의 이야기와 같은 무애행(無碍行)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원효는 위대한 인간일지언정 교단(승가)의 모범이 되는 이상적 승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원효와 의상의 관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원효는 탁월한 화엄의 활용자이지만 화엄학의 정맥을 이은 것은 의상인 것이다. 교단이라는 집단의 이상적 승가상과 이상적 인간상과는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理)와 사(事)의 갈등관계에서 발생되는 개념의 혼동이나 파라다임(Paradigm)의 차이에 있는 것이다.
교단은 하나의 이념에 의해서 이루어진 집단으로 설정된 이념에 따르는 행위나 집단의 유지를 위하여 질서를 지키는 사적(事的)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식사회학은 인간의 행동유형을 의사교류적 행위와 목적합리적 행위로 나누는데, 의사교류적 행위는 사적 (事的) 이고 목적합리적 행위는이적(理的)인 의미가 강하다. 인간의 행위가 제도적 틀에 의해서 규정되는 한 사회적 규범이나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움직인다. 그러나 목적합리적 행위의 체계에 의해서 규정되면 인간은 목적을 위한 도구적 내지 전략적 행위의 모범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주어진 조건 아래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도구적 행위가 현실의 조건이나 수단을 조직화하는 반면에 전략적 행위는 행동의 가치를 평가하고 기술적 법칙에 의해서 가능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다.
의사교류적 행위가 사회적 규범이나 제도를 유지시키는 기능을 한다면, 목적합리적 행위는 문제 해결을 위한 목적과 수단으로서의 행위다. 따라서 인간의 행위가 목적합리적 측면에서 본다면 시비나 선악이 경험된 사실이나 논리적 추론에 의해서 평가되지만, 의사교류적 측면에서는 사회적 규범과 인간상호간의 이해와 인정(認定)에 의해서 그 타당성이 평가된다.
원효스님은 이적인 의미에서 이념의 창조자이다. 이(理)를 질(質)의 변혁이라고 한다면 사(事)는 양(量)의 확대이다. 스님의 행동양식은 문제의 해결에 노력을 경주하였고 제도나 질서의 유지를 위하여 살았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종교적 천재의 행동을 함부로 흉내내서는 안된다. 모방해야 할 것은 행동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본받아야 하는 것이다.
끝으로 사회에 대한 원효스님의 태도이다. 종교와 사회와의 관계는 지금까지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사회적인 참여와 종교적 순수의 논쟁, 역사적인 참여와 초역사적 태도간의 갈등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불교는 비역사적이고 비사회적인 종교라고 비판받고 있는 것이다.
불교는 외부에서 비판하듯이 비역사적이나 비사회적인 종교는 아니다. 이 세계의 존재를 관계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라도 우주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사회적이고 역사적이냐는 개념상의 문제이고,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한 관계냐고 하는 방법상의 차이일 뿐이다.
불교의 정토에 미타정토(彌陀淨土)와 미륵정토(彌勒淨土)가 있다. 그러나 같은 정토를 추구하면서도 사고의 유형은 전혀 반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미타의 정토는 공간적으로 서방정토(西方淨土)라는 저곳이고 시간적으로 초시간적이다. 그러나 미륵의 정토는 공간적으로 이곳이고 시간적으로 당래 아니면 미래에 건설화는 용화세계(龍華世界)이다. 미타정토가 아미타불을 염(念:생각)하는 염불을 수행방법으로 하고 법장(法藏)의 원력에 의해서 구원받는 타력적인 신앙이라면, 미륵정토는 행위(善行)가 강조되고 당래 아니면 미래세에 미륵불이 오실 용화세계를 건설하는 자력적인 신앙이다.
미타와 미륵의 이러한 성격은 미타신앙에 있어서는 개인적인 영혼의 구원에 중점을 두고, 미륵신앙에 있어서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관심을 두고 발전하게 된다. 미륵의 정토가 현세적 방법(사회적 제도나 물리적 힘)으로 정토를 건설하려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꿈이라면, 미타의 정토는 법왕(法王)이 되기를 바랐던 승려의 한 변형된 꿈(法藏 의 願)일런지 모른다. 이것은 기독교의 메시아적인 신앙에 있어서 신국(神國)과 천년왕국(千年王國)이 가지는 성격의 차이와 비교할 수도 있다.
같은 정토를 지향하면서도 사고나 행동양식에 있어서 이러한 차이가 나는 것은 기본적인 세계관이 다른데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엘리아드에 의하면 인간의 유형을 역사적 인간과 종교적 인간으로 분류한다. 역사적 인간은 역사는 신의 뜻이던 법칙이던 간에 역사발전의 법칙에 따라 역사의 방향이 직선적으로 진보한다고 생각하고, 종교적 인간을 초시간적인 순환의 역사라는 입장이다.
역사적 입장이라면 인간은 역사의 발전법칙에 따라 미래의 유토피아를 향하여 적극적으로 역사적 현실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적 인간은 현실도피적이고 신의 품속에 안주하려는 은둔적이고 가기만 하고 돌아을 줄 모르는 아라한적인 태도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직선적으로 발전하는 것도 아니고 역사발전의 법칙도 없다.
현실의 인간은 유토피아의 환상도 깨어지고 역사적 현실이 주는 중압감을 감내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에 진보가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역사의 진보는 없다. 문명의 기술은 발달되었지만, 인간의 도덕성은 천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나아진 것도 달라진 것도 없는 것이다.
내일에 대한 불확실, 신의 뜻인지 아닌지, 이루어질 것인가 아닌가. 삶의 의미는 유토피아의 꿈은 역사상 한번도 실현된 것이 없다. 설사 실현되었더라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통일제국만 건설되면, 권력만 잡으면, 돈만 벌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던 소박한 꿈들은 인간을 구원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역사가 주는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시간을 초월한, 신적인 태초의 창조의 시간을 반복하게 되고, 신적인 행위를 모방하여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불교는 역사적 인간의 직선적 세계관도 아니고 종교적 인간이 가지는 순환적 세계관도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연기론적인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는, 순환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용수철식의 전진하는 역사이다.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적 존재이고, 이 창조의 과정에서 남은 삶의 자취가 역사라는 것이다. 예술가가 창조활동의 결과 명성과 부가 따랐을뿐, 이름이나 돈을 위하여 창조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 인간이 현실의 대지에서 발을 뗄적에는 허공을 헤매는 망령이 될 뿐이요 역사적 인간이 오늘의 현실에만 눈을 둘 때에는 끝없는 윤회를 반복할 뿐이다.
원효스님이 사회와의 관계에서 취한 태도는 민족을 위한,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백고좌회(百高座슴:국가를 위하여 호국인왕경을 설하는 강좌)의 참석을 거부한 스님의 태도로 보아 호국의 입장이던 포교의 입장이던 간에 호국불교적인 입장은 아니다. 불교는 민족의 종교도 아니고 지배자의 종교도 아니다. 그렇다고 민중불교에서 말하는 민중의 종교도 아니다.
민중불교에서 말하는 민중의 개념은 명확한 것은 아니나, 정치적으로 지배 권력에서 제외된 자, 경제적으로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자,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 등의 총체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등의 개별은 번증법적으로 지배자와 자본가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대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스님이 무애가를 부른 것은 푸로레타리아적인 개념의 민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교적 의미에서 중생을 위해서 무애가를 부른것이다. 원효스님이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면서 대중을 교화했던 태도가 비사회적이라면 고타마도 역시 비사회적이다. 불교는 사회적인데 원효나 고타마의 이러한 태도는 시대나 상황의 문제라고 보고 지금의 시대나 상황은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다. 상황이라면 원효스님의 시대는 통일제국이 갖는 평화와 희망이 있어서 지금보다 나았는지 모르지만, 고타마의 시대는 지금보다 더 급박한 상황이었다. 상황의 탓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