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의 이릅은 명명식에 의하여 싣다르타(Siddhartha수達多)라고 정해졌다. 모든 것을 다 이룬다고 하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왕자의 탄생으로 궁중내외의 기쁨과 모든 백성의 기쁨으로 연일(連日) 축제가 벌어졌다. 그러나 그 기쁨과 함께 슬픔도 있었는데 그것은 보살의 생후 7일만에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잃는 커다란 슬픔이었다.
「나의 아우여 태자를 너에게 부탁한다. 부처님을 낳은 여인은 이승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예언이 이미 있었느니라」
그 뒤 보살은 마야부인의 동생 곧 이모인 마하파자바티 부인이 양육하게 되었다. 마하파자바티부인은 본래 성품이 온화하고 자애로와서 친 어머니 만큼이나 따뜻한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을 돌보아 주었읍니다. 또한 뒤에 마하파자바티부인은 최초의 비구니가 된 분이기도 하다. 보살의 어린 시절에 대하여는 어느 불전에나 크게 전해지는 바가 없읍니다만 달이 밤마다 등글어지듯 태자의 성장은 해를 따라 더욱 원만해져 갔다.
그러나 태자는 천성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을 지니고 었었으며 감수성이 예민한 데가 있었읍니다. 부왕은 그런 태자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하여 갖가지 보물과 유회로 그의 마음을 달래 주었으며 왕궁의 진귀한 호사 속에 마음껏 누랄 수 있는 영화로운 생활을 하였지만 보살의 마음은 항상 높고 변경계에 머무르며 조금도 거기에 물들지 않았읍니다.
불전(佛傳)에는 부처를 이루고 나신 뒤에 그의 왕궁생활을 술회하는 것을 보면 「내가 살던 궁전의 정원에는 청, 홍, 백색의 연꽃이 언제나 피어나 있었으며 몸에는 항시 카시에서 생산되는 부드러운 옷을 걸치고 뜨거운 태양빛을 피하기 위한 일산(日傘)이 나를 바치고 있었고 우기(雨期)나 여름, 겨울에는 때에 따라서 각기 다른 세 곳의 궁전(三時嚴)에서 살고 특히 우기인 4개월 동안은 어여쁜 궁녀들에 둘러싸여 음악과 춤으로 나날을 지새웠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시간이 지나면 까닭 모를 생에 대한 불안과 의혹으로 깊은 사색에 빠지곤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카빌라를 비롯한 주위의 부족국가들은 대개 벼농사를 지었다고 추측이 되는데 그것은 보살 부친의 이름이 정반왕(淨飯王)이요, 그의 형제들의 이름이 백반왕(白飯王), 감로반왕(甘露飯王)등 반(飯)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은 곧 이 일족이 벼농사를 짓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불전에 춘경제(春耕祭)에 대한 일화가 이렇게 전하고 있다.
왕이 씨를 뿌리는 날 카빌라성은 온통 천궁(天宮)처럼 장식이 되고 노예나 심부름꾼도 새옷을 입고 향수나 꽃다발로 장식한 채 왕궁에 모여 들었다. 왕이 작업을 하는 장소에는 천개의 쟁기가 준비되어 있었고 왕이 손에 쥔 쟁기는 붉은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소의 뿔이나 고삐 보습 등도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왕은 왕자와 함께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참석했다. 이날 처음으로 농사가 시작되는 것을 선도하고 왕이 쟁기를 가지고 땅을 일굼으로써 일년의 농사를 시작하였다.
보살은 부왕이 식전에 참석하고 있는 동안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명상에 잠기는데 흙에서 기어 나온 별레가 새에게 쪼아 먹히고 그 새는 다시 독수리 같은 사나운 새에게 잡아 먹히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세상이 참으로 부당하고 덧없음을 느꼈읍니다.
「아 약육강식(弱肉强食) 이것이 모든 중생의 생활이로구나」
너무나도 비참한 광경에 가슴이 아팠던 보살은 나무 그늘에 앉아 해가 서산에 넘어갈 때까지 일어나지 아니했읍니다.
「왜 약한 것들은 강한 것들에 의하여 죽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죽지 않으려고 파닥거리던 모든 것들의 모습이며, 화려한 왕족들에 비하여 백성들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그들이 결코 왕족 만큼 즐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자 그 모양만 다를 뿐 약육강식이 거기에도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돌아가신 모후에 대한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어두워져서 죽음이란 무엇이며 죽은 것들은 어디로 카는지 그 어느것도 무(無)의 상태는 아닌지, 생각은 생각을 물고 구름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모든 식을 마치고 왕은 갑자기 태자가 자기 주위에 없음을 알고 태자를 찾게 하였다. 왕을 비롯해서 모든 신하들이 태자를 발견했을 때 부사의하게도 나뭇가지는 해와 같이 돌아 뜨거운 햇빛을 가리는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부왕은 태자를 찾아서 우선 반가왔으나 보살의 명상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진지하고 거룩해서 조용히 걸어가 「싣다르타 해가 져 가는구나. 이젠 그만 일어나거라.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는가 무슨 말못할 고민이라도 있으면 나에게 이야기 해 보렴」
태자는 조용히 미소를 띨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부왕은 보살과 더불어 왕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내심(內心)으로는 아시타 선인의 말처럼 저렇게 하다가 결국 출가해서 내 곁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안되겠구나 왕자가 도저히 내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단단한 사슬을 만들어야겠구나」하고 생각하다가 그를 결혼시킴으로써 그 즐거움에 취하게 해야되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이 작은 설화는 훗날 부처님께서 자각적 구도로 부처님이 성도(成道)에 이르기까지 왜 출가의 길을 택하게 되었는지를 잘 설명해 주는 설화입니다.
비록 보잘것 없는 벌레와 새 사이에 얽힌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바로 우리 인생살이를 축소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읍니까. 세계의 현실상은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모양은 다소 변하지만 마지막 참담한 투쟁은 생존 경쟁이란 한 말로 축소할 수 있읍니다. 인생 그것이 바로 투쟁이니까요. 생각이 많고 감정이 섬세한 보살로서는 그것이 보통 일로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세상은 으레히 그런 것이려니 그렇게 알고 살아 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보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결국 보살이 출가하여 순수한 종교적 해탈자로서 불교라는 종교를 열게 되는 진리의 싹이 었던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