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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여성-불교와 기독교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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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이창숙 1999년 02월 204호
우리나라의 겨울은 입시의 계절이다. 이 불확실성의 터널을 통과하면 느끼는 불안과 초조는 본인이 아니면 모른다. 이 계절에 텔레비전과 신문에 한 번쯤 나오는 그림이 절에서, 교회에서, 성당에서, 그리고 자식이 시험 치러 들어간 학교의 교문 밖에서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간절한 모습이다. 내 자식이 불으면 남의 자식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이 인간사를 치러내면서 어머니들은 좌절하고, 성취하고, 성숙해간다. 지내 놓고 보니 그것도 별 것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절박했을까 하고 되돌아 볼 수 있는 것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그 일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의지처를 갖고 기도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가꿀 수 있었던 어머니들은 그러한 가운데서도 행복하다. 어디 입시뿐이랴. 양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시대에 여성들은 종교에 귀의하여 종교의 영향을 받으며 그 삶의 무게를 견뎌낸다.
종교다원 사회라고 하는 우리나라에서 여성은 그 종교를 떠받치고 있는 힘이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여성은 다수이다. 그런데 다수의 여성이 떠받치고 있는 각 종교의 지배층은 소수의 남성이다. 어느날 길을 걸으면서 한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여지들 해봐야 별 수 있나, 내 생에 남자 몸 받는 것 밖에”하던 말 한마디가 잊혀지지 않는다. 여자는 애써 수행해 봐야 내생에 남자로 태어나는 것이 최고의 성취라면 여성불자의 의미는 결국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지킬 수도 없고 지켜지지도 않는 비구니팔경법이 아직도 필요한 것은 비구니를 통제하는 기능으로 쓰여질 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개신교 최대의 교파인 예수교 장로회의 통합교단은 한국 선교 109년 만인 지난 94년 여성에게도 목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는데 이런 결과를 얻어내기까지 교회 여성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같은 예수교장로회의 합동교단은 여성목사 안수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와 교회 질서에 어긋난다고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여성신학이, 성경을 역사적 원형으로 보아야 하며 여성을 차별하지 않던 예수의 정신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해도 기득권을 갖고 있는 일부의 남성 개신교 지도자들은 꿈적도 안한다.
석존 입멸 뒤 가섭은 아난을 나무라는데 아난이 잘못 했다고 하는 항목가운데 부처님께 권청하여 여성 출가를 허용하시게 했다는 것이 들어 있다.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아무리 아난이 권청했다고 해도 석존은 여성 출가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석존의 생각과 제자인 가섭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는 사건이다. 물론 석존의 말씀으로 남아있는 경전 가운데에도 여성에 대해 부정적인 말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기道器로서의 여성을 부정한 말씀은 경전 어디에도 없다. 석존의 이모이며 양모였던 마하파자파티 고타미 부인이 석존에게 찾아와서 자기들도 교단에 받아들여달라고 간청했을 때 석존은 이를 세 번이나 거절했다. 그래도 뜻을 꺾지 않고 마하파자파티 고타미는 석가족의 여성들과 함께 다시 와서 청했다. 그 여성들은 유복한 가정의 여성들로 평소에는 마차로 여행을 하던 이들이었는데, 북인도의 평야를 발로 걸어서 기원정사까지 오느라고 발은 부르트고 땀과 먼지가 범벅이 되어 누추한 모습으로 문 밖에 서 있었다고 한다. 머리까지 깎고 온 이들을 본 아난은 그들의 열의에 감동하여 부처님께 들어가 여인들의 청을 들어 주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석존은 거절했다. 그 때 아난은 여인들은 수행해도 수다원과 내지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석존은 여성도 수다원과 내지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여성을 교단에 받아 들였다. 여성을 정신 세계의 동참자로 받아들인 석존의 이 결정은 ‘자유의 역사에서 빛나는 등불’이라고 영국의 불교학자 호너 여사는 말한다. 그 시대 비구니들의 내면 세계를 알 수 있는 ‘장노니게’를 보면 오늘날 이른바 불자라는 우리는 무얼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부파불교에 오면 여성은 부처가 될 수 없다는 오장설이 등장하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부파불교 시대에는 부처와 동격인 자는 없었다. 아비달마 논사들은 석존을 숭앙하는 깊은 마음에서 스스로 목적하는 바를 아라한과에 두어 아라한과 부처의 거리를 엄격하게 유지하므로써 불과佛果를 넘보는 불손을 범하지 않았다. 따라서 남자에게도 성불의 도에는 제한이 있었는데 여자가 성불할 수 없다는 것만 강조되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대승불교초기에는 변성남자성불설이 나타나고, 중기 대승불교에서는 여성성불설이 나타난다. 이와 같이 불교의 여성관은 불교사상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변천해 왔다.
기독교의 경우는 어떠한가. 예수는 그 때까지의 유대교의 모순을 극복하고 버림받은 사람, 소외된 사람을 공동체의 중심부로 끌어들인 성인이다. 유대교에는 자신을 이방인과 노예와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한 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아침 기도가 있다. 여자나 이방인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는 달랐다. 그 무렵 유대인들이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이빙인과 세리와 여자들을 평등하게 대했다. 예수는 매춘부와도 식사를 같이 했다. 식사 좀 같이 한 걸 뭐라고 할지 모르나, 그 무렵 유대인들은 아무하고나 식사하지 않았다. 예수가 우물가에서 이방인인 여자에게 물을 청했을 때 그 여자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찌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것을 청하느냐고”고. 제자들도조차도 선생님의 이런 행동을 의아해 했다. 예수의 세속적 영광만을 바라보고 따라다니던 제자들은 예수의 깊은 마음을 몰랐던 것이다. 예수가 죽었을 때 갈릴리에서 온 여자들이 십자가 아래 서 있었는데 이것은 당시 유대교의 랍비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예수가 여성을 차별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사건이다. 예수의 사후, 교단의 지도자가 된 바울은 그리스도안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또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해야 하며 교회 집회에서 여자는 말할 권리가 없다고 하는 말도 한다. 교부시대와 중세의 성 어거스틴이나 토마스 아퀴나스도 여성을 차별했다.
불교도 기독교도 여성에 대해 이중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석존의 생각과 가섭의 생각이 달랐듯이 예수와 바울의 생각이 달랐고, 이들 종교의 여성관은 교조의 생각이라기보다는 그 후계자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보여진다.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종교는 여성을 한편으로는 해방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차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 행태의 원인은 다른 데에 있지 않다. 기득권을 가진 남성의 이기심에 있을 뿐이다. 종교학자 D.L.카모디는 말한다. “오늘 날 여성에 대한 세계 종교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것은 세계사적 필연이다”라고. 전적으로 동감한다. 종교가 여성을 진정 평등한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일은 교조의 근본 정신에로 회귀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