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이 땅의 불교를 세계에 펼치리라던 님이여, 속히 환도중생還度衆生 하소서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죽비의 소리 - 편집실 2000년 01월 215호
“스님! 일타 큰 스님! 집에 불이 났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지난 해 12월 5일 오전 11시 팔공산 은해사에 마련된 일타스님의 다비장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스님들과 신도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일타 큰스님이 세속에서의 마지막 인연을 다하는 다비장의 모습은 스님의 수행과 가르침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를 확인케 해주는 회상이었다.
은해사 앞 뜰에서 봉행된 영결식이 끝난 뒤 일타스님의 법구를 뒤따르는 오백여개의 만장은 팔공산 자락을 휘감았다. 불자들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다비장으로 옮겼다.
“가사 한조각으로 상례를 모두 갖추었도다. 재를 큰 들판에 날리어 몸이 어디에서 편안한고”(물, 땅, 허공 어디든지 괜찮도다) 가사일편袈裟一片 상사구족喪事具足 회비대야灰飛大野 골절하안骨節何安(수륙공계水陸空界 우역가소又亦可笑)
유언에 따라 스님의 법구에는 꽃 대신 스님이 평소 입으시던 금란가사 한 벌만이 덮여 있었다. 일타 스님의 법구가 안치된 연화대에 불이 붙는 순간 다비장은 ‘아미타불’의 명호를 염송하는 불자와 스님들의 한없는 그리움이 눈물로 맺혔다.
“스님, 업장이 가득한 중생들을 두고 어찌 이리도 빨리 가십니까? 속히 저희 중생들의 곁으로 오셔 법음을 베푸소서.”
연화대에 번진 불길은 때마침 불어온 강풍으로 더 거세지고 스님의 가는 길을 장엄시키는 불자들의 꽃송이도 불길 속에서 한줌의 재로 변해갔다.
“나고 나도 나지 않음이여 해와 달을 삼키고, 죽고 죽어도 죽지 않음이여 우주를 활보하는도다”(종정 혜암스님 법어)
“생사거래에 매이지 않으시니 그 또한 얼마나 상쾌하십니까? 스님의 허망한 육신을 보내느라고 우리는 오늘 이렇게 모여 의례를 치르고 있습니다.”(원로의장 탄성스님 영결사)
“스님의 육신은 가셨지만 스님의 원력은 늘 저희와 함께하실 것이니 부디 근본 서원을 저버리지 마시고 빨리 사바에 돌아오사 저희 대중을 이끌어주옵소서”(총무원장 정대스님 조사)
“흠모欽慕하고 존경하는 사부대중이 이렇게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는 것은 스님께서 할 일이 더 남은 까닭입니다. 무생의 적광토寂光土에서 속환사바速還娑婆하시어 거듭 저희들을 인도해 주시기를 오늘 모인 사부대중은 청하고 또 청합니다.”(종회의장 법등스님 조사)
“중생계는 생사거래가 있지만 불성본연佛性本然의 자리에는 가고 옴이 없다”는 일타스님의 평소의 높은 뜻을 모른 바는 아니나 중생의 마음으로는 스님을 떠나 보내기에는 슬픔과 아쉬움만이 가득해서 일까? 열결식장에서 조사를 읽는 종단의 중진 스님들조차도 스님의 떠남을 아쉬워 했다.
동곡당 일타스님은 1929년 충남 공주 연안 김씨가의 4남 가운데 삼남으로 태어났다. 1942년 14세 때 친가 외가의 식구 41인이 모두 출가함에 스님 또한 양산 통도사 고경스님을 찾아가 축가 득도했다. 일타 스님의 한 교계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출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출가 당시에야 어려서 뭘 알고 했나. 온 집안이 다 중이 되니 엉겁결에 따라서 출가를 한게지. 다만 중 생활이 싫지 않았어. 오히려 좋았다고 할 수 있지.”
60여년 전을 회고하는 스님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퍼뜩 나는 왜 불교인이 되었나, 하는 돌아봄의 화두로 이어지게 한다. 위로는 부처를 구하고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겠다는 서원이 아직도 성성惺惺한가. 밤낮으로 외우는 사홍서원이 입에만 매달린 금과옥조는 아니었던가. 종단과 불교라는 큰 틀을 비판만 해댔지 정작 나를 질책하는 데에는 인색했던 모습을 본다. ‘다만 중 생활이 싫지 않았어. 오히려 좋았다고 할 수 있지’, 이 평범한 한 마디가 큰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춘다.
여기에 멈춰서도 안 된다. “그 때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 손에 붕대를 감고 기름을 먹여 태우는데 아주 잘 탑디다. 그 때 몸이 한낱 기름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지. 그것도 그냥 안 것이 아니라 철저히 알았지.”
중노릇을 잘하고, 속세의 업장을 녹이고, 법에 결정심을 갖겠다는 세 가지 서원을 세운 뒤에 오른손 손가락 12마디를 태우는 연지연향燃指燃香의 소신공양을 하던 때의 상황을 회고하신 말씀이다.
서원은 고통 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일타스님은 몸을 사르는 고통을 보여주셨다. 모든 불자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서원하건만, 뜻으로써만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꽃피움과 열매 맺음은 자동 타이머처럼 시간이 되었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매서운 바람 앞에 잎 떨구고 뿌리 깊게 서 있던 날들의 결정체인 것을 우리는 안다. 일타스님은 이승에 오셔서 그 앎들을 온몸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마지막 가시며 ‘법등명 자등명法燈明 自燈明’의 가르침을 남겼듯, 일타스님은 시린 들판의 바람 앞에 서라고 당부하셨다.
큰스님 가신 자리가 너무 크다. 이제 가르침을 담은 책으로써 우리 곁에 온화한 모습, 부드러운 음성으로 머물러 계신다. 92년 뜻하지 않게 찾아온 병마를 지리산 칠불암에서의 용맹정진으로 다스린 뒤부터 책으로써 불자들을 제접했다.
「기도」,「생활 속의 기도」, 「윤회와 인과응보 이야기」등 신행안내서와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집착을 버리면 행복이 보인다」 등 법어집, 경전 어록 풀이집인 「시작하는 마음」, 「보살의 마음 중생의 마음」, 「자기를 돌아보는 마음」 등 10여 종에 이른다.
특히 「기도」「생활 속의 기도법」등의 책은 불교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으며, 깁고에 치우쳤던 신행풍토를 바라잡고 3천배 등 기도정진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밖에도 일타스님은 76년 해인 총림의 율사로 계시면서 후학들을 위해 「사미율의」,「불교와 계율」,「범망경보살계」등 계율과 관련된 책을 펴냈다.
스님은 가셨다. 생전의 모습을 다시 볼 수는 없다. 스님을 다비하여 연기와 재로써 보내드리며 많은 불자들은 눈물지었다. 이생의 인연을 다하면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보내드리는 길을 영롱히 장엄하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선과 교와 율을 두루 섭렵하고 자비와 철저한 계행속에 세속의 인연을 한시도 헛되지 않게 사시다간 일타스님. “다음 생에는 미국에서 태어나 학업을 마치면 한국으로 와서 출가하리라.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이 땅의 불교를 세계에 펼치리라.”는 스님의 평소 서원처럼 화택중생火宅衆生들을 위해 피안에서 다시 오실 것이다.
다시 오실 모습은 보내드린 사람들이 그려내야 할 몫이다. 서원을 세우고, 정진하고, 중생에게 회향하는 삶. 이것이 다시 오시는 스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