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 빗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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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 - 정호승
2000년 01월 215호
나는 여러 형제들과 함께 전라도 담양의 한 대나무 밭에서 태어났습니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게 봄비가 내린 다음날, 삐쭉삐쭉 땅을 비집고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빙긋이 웃음 띤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보름달이 나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언덕 너머로 자꾸 별똥별을 만들며 별들이 나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고단하게 잠을 자고 있던 바람도 나를 찾아와 부드럽게 내 뺨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산자락에 숨어 있던 진달래 꽃잎도 바람을 타고 날아와 나를 위해 자꾸 춤을 추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먼동이 트자 새벽 이슬들이 내 목을 촉촉히 축여 주었으며, 찬란하게 아침 햇살을 받으며 멧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나를 위해 축가를 불러 주었습니다.
나는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태어난다는 일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어둡고 추운 땅속의 줄기에 매달려 살 때는 미처 느끼지 못한 행복감에 젖어 나는 하루가 다르게 푹푹 키가 커갔습니다.
그런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아주머니와 아저씨 몇 분이 바구니와 괭이를 들고 죽순밭에 들어와 죽순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나는 그들이 봄나물을 캐는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여기저기 형제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와 가만히 고개를 들고 살펴보자 그들은 보통 괭이보다 훨씬 날이 긴 특수한 괭이로 땅속에 박힌 죽순을 캐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나를 캘까봐 잔뜩 마음이 졸아들었습니다. “오늘 장이 서기 때문에 빨리 캐어서 내다팔아야 한다”거나, “요즘 먹는 죽순이 가장 연하고 맛있어서 살짝 데쳐먹으면 제맛”이라는 그들의 이야기에 내 마음은 더욱 졸아들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밥상에 오르는 요릿감이 되기는 싫었습니다. 나는 씩씩하게 자라 대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온몸에 식은 땀이 쫙 흘렀습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보름달에게 빌었습니다.
“보름달님, 저를 살려 주세요. 저는 요릿감은 되고 싶지 않아요. 대나무가 되고 싶어요. 제발 저를 살려 주세요.”
그렇게 비는 동안에도 그들의 발걸음은 점점 내 곁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남자의 발이 바로 내 앞에 딱 멈추었습니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 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여보, 이제 그만하지”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그래요, 가서 아침이나 먹어요” 하는 여자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나는 속으로 살았다 싶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가고 난 뒤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나를 경계로 해서 내 뒤에 있는 죽순들은 그대로 살아 있었으나 내 앞에 있던 죽순들은 모두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나랑 이야기하면서 나중에 커서 죽부인이 되고 싶다고 하던 죽순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를 살려 준 보름달님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몹시 슬펐습니다.
슬픔은 나날이 깊어 가면서 나를 괴롭혔습니다. 죽어가는 형제들을 그대로 방관한 채 나만 살기를 원했다는 사실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고통은 고통을 낳았습니다. 언제 그들이 다시 또 주둥이가 길쭉한 괭이를 들고 와서 나를 캐 갈지 두려웠습니다.
그런 불안함 때문이었을까요. 그때부터 나는 잘 자라지 못했습니다. 살아 남은 다른 죽순들은 쭉쭉 잘 자랐으나 나만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비실비실했습니다. 조그만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곧 쓰러질 것만 같아 댓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조차 듣기 싫었습니다.
그 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늠름하게 잘 자란 형제들이 하나 둘 대밭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죽순이 자라 대밭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밭을 떠나 다른 삶을 사는 것도 퍽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나도 대밭을 떠나 다른 무엇이 되고 싶었습니다. 소쿠리도 좋고, 광주리도 좋고, 죽침도 좋고, 합죽선도 좋았습니다. 또 필기구를 넣어 두는 죽통이면 어떻습니까. 바지랑대가 되어 가을하늘을 나는 고추잠자리를 날아와 앉게 하는 것도 또 어떻습니까. 아, 아닙니다. 실은 나는 대나무를 얇게 쪼개 엮은 삿갓이 되고 싶었습니다. 수염이 길게 자란 의로운 검객이 쓰고 다니는 삿갓이 되거나, 김삿갓이 되어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나의 헛된 꿈일 뿐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밤마다 대밭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밤, 나는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싶어 보름달님에게 빌었습니다.
“보름달님, 저도 이 곳을 떠나 다른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정말 부탁합니다.”
그렇게 빌었기 때문일까요? 하루는 죽순 캐던 아저씨가 와서 내 몸을 싹둑 잘라 집으로 가져가 무엇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흥분이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이 될지 궁금해서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눈을 떠 보자 나는 대나무 빗자루가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원하던 것은 다른 친구들처럼 부채나 필통 같은 좀 고상한 것이 되는 것이었습니다만 하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저씨는 나를 곧 시장에 내다팔았습니다. 나를 사간 사람은 어느 절에 있는 젊은 스님이었습니다. 이왕이면 젊은 색시가 와서 나를 사갔으면 했으나 그것 또한 하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스님은 날마다 아침이면 나를 들고 대웅전 앞마당을 쓸었습니다. 대웅전뿐만 아니라 해우소 뒷마당도 쓸었습니다. 나는 부처님이 계신 곳이 깨끗해진다 싶어 열심히 기쁜 마음으로 마당을 쓸고 또 쓸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세월이 지나가 마냥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마당을 쓸면 쓸수록 내 몸이 점점 닳아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내 몸이 아주 작아진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이제 더 이상 마당을 쓸고 싶지 않다고 스님께 말했습니다.
“스님, 스님께서 마당을 쓰실 때마다 내 몸이 자꾸 없어집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마당을 쓸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너는 마당을 쓸면서 마당이 없어지기를 바라느냐?”
나는 할 말을 잃고 잠시 스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여전히 웃으시면서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네 몸이 닳지 않고 마당이 깨끗해지기를 바라느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계속 스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햇살처럼 내 가슴 속에 깊게 들어와 내 마음을 환히 밝혀 주었습니다.
그 뒤 나는 계속 대웅전 마당을 쓸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몽당 빗자루가 되어 사람들이 똥과 오줌을 누면서 근심을 푸는 해우소 안을 참 기쁜 마음으로 청소하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어느 산사의 해우소에 가서 가끔 저를 만나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