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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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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암 이야기 - 법장 2000년 01월 215호
겨울 동안은 간간이 지게 지고 산을 오르래리면 땔나무 하러 다닐 일만 남았다. 아직도 겨울은 나기 위한 준비가 완료된 것은 아니다. 그래도 머리 무거운 김장을 끝냈으니 대작불사를 치룬 것에 다름없다.
혼자건 여럿이건 먹거리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농부가 여름 내 땀 흘리는 것도 기나긴 겨울의 먹거리 준비가 아니겠는가. 혼자 살지만 첫겨울을 어떻게 살아낼까 걱정도 많이 했다. 김장도 여러 번 망설였었다. 혼자서 얼마나 먹겠다고 김장까지 하려느냐고 이죽대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김장은 오래 전부터 꼭 해보고 싶던 숙원이기도 했다. 더러는 군식구도 들락거리지만 겨울에 이 산골에서 김장도 안 하면 어디로 냄비 들고 얻으러 다닐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궁리는 오랫도록 했는데 심었던 배추와 무우는 속태우며 자라 주지 않았다. 일찍부터 ㅅ보살은 보살대로 걱정이 태산이었다. 배추 몇 포기는 해야 할 텐데 어떤 방식으로 해야 괞을란가 하며 올라올 때마다 고민했다. 당하면 어떻게 하는 거지라며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는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질 급한 보살은 그래도 혼자 다니며 준비를 서둘렀다.
김장하던 날은 모처럼 이 산골이 떠들썩하니 사람 사는 모습이었다. 모후산 산신도 평생에 무슨 일인가 하고 놀랐을 것이다.
다행이 김장거리 실농失農한 것을 보고 간 ㅁ거사가 배추를 실어 왔다.
생각해 보면 혼자 살자고 너무 여러 사람 성가시게 하는 것 같다. 큰절에서 수삼일이나 북적대던 데 비하면 싱겁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큰일이라 이틀이나 북새거렸다.
미리부터 의논이 분분하고 걱정한깐엔 의외로 일들은 쉽게 풀렸다. 다들 바삐 움직였고, 인원도 꽤 많이 동원된 셈이였기 때문이다. ㅁ거사가 배추를 싣고 오면서 김장은 본격적이 되었다. 일 해줄 보살님네들도 뒤따라 도착하고, 숨돌릴 새 없이 바로 배추를 추려서 절였다. 한쪽에선 무우와 양념을 다듬기로 하고, 본래 주인이 몇 몫은 한다는데 일을 더듬거리는 관계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일쑤 핀잔만 듣는다.
예정은 김장하는데 3일로 잡았었다. 근데 중간에 낭패가 생겼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었다. 다들 빨리만 하려고 정신이 없었던가 보았다.
이것 저것 상관하고 다니던 ㅅ보살이 난리났다며 갑자기 호들갑 떨었다. 난리이긴 했다. 항아리 겨우 서너 개에 소금 한 가마니를 다 쏟아 절인 것이다. 배추가 소태가 될 것은 뻔한 일. 누구에게랄 것 없이 눈을 흘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룻밤 재우려던 계획을 돌려 밤을 도와 배추를 씻어야 했다. 이마저 망치면 겨울이 더욱 추울 것이니, 춥고 고단해도 별 수 없었다. 빨리 서둘러서인지 낭패는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을 벌게 되었다. 이튿날은 별다른 상황이 돌발하지 않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금방 끝날 것 같아 보이던 일이었어도 오후 늦어서야 끝났다. 그나마 김장독 묻어 줄 사람도 못 구해 그대로 놔둔채로 오랜만에 많은 식구가 모여서 맛있게 김치도 담궈졌다고 자화자찬하며 늦은 점심을 달게 먹었다.
대중에 살 때는 이렇게 많은 것이 필요한지 자세히 몰랐었다. 물자며 일들서껀. 그 때는 일도 대중운력으로 했었고, 자기 소임만 완수하면 별 걱정 없었으니 몰랐던 것이 당연한 노릇이기도 했다. 부족함 없던 그런 생활에도 겨울에 방이 조금만 덜 따뜻해도 아우성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혼자 살아도 땔감이랄지가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다른 이들의 수고로움과 고마움도 크게 느껴진다.
겨울이 아직 길게 남았으니 어려움도 많겠지만 느껴지는 것도 그만큼 더 많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