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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뜀” 막을 장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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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지명 2000년 01월 215호
주요불경 가운데에 “후오백세後五百歲“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과거의 조사들은 오백년 단위로 큰 시간적 변환을 구분한 것 같다. 시간을 더 길게 잡은 구분도 있다. 정법正法으로 1천년, 형상만 불교적인 것 즉 상법像法으로 1만년, 또 말법末法으로 3천년 또는 더 긴 세월을 잡기도 한다.
새 천년을 맞으면서 천년 전과 지금의 한국불교 모습이 어떻게 다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천년 전에는 최소한 폭력으로 총무원 청사를 탈취하려는 승려 집단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모든 불교인이 수치심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고, 승려들이 국민에게서 불신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종교인들이 각 분야에서 활개를 치는 가운데, 불교인들이 이처럼 철저하게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승려의 싸움이 불교 망쳐
그러면 새 천년에 한국불교를 살릴 길이 무엇인가. 이 물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총무원 청사를 폭력으로 침입하려고 했거나 점거했던 승려 복장을 한 사람들, 뒤에서 그 폭력을 지시하거나 후원한 전직 또는 현직 고승들, 세칭 “전국구”라고 하는 유랑 탁발승들, 그리고 이 골짜기 저 거리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교의 치부를 세상에 보여 주는 “성직자 자질 미달” 승려들이다. 최소한 승려가 포악하거나 추잡한 모습을 세상에 보여 주지 않아야만, 단박에 불교를 되살리지는 못하더라도 완전히 죽이지는 않게 할 것이 아닌가
조계종이 국민의 신망을 받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승복에 대한 특허권 또는 독점권”이 없다는 것이다. 일반인 눈에는 승복을 입은 이는 누구나 승려처럼 보인다. 승복은 누구나 입을 수 있다. 종단으로부터 승복을 반납하도록 징계를 받은 이, 다른 종단 사람들, 일반 신자, 깡패도 승복을 입을 수 있다. 제정신을 잃은 한 걸인은 지금도 조계사 앞에서 알쏭달쏭하게 보이는 승복을 입고 합장하고 앉아 있다. 최근에는 다른 종단 소속이라고 하는 이들마저 버젓이 회색 옷을 걸치고 조계종 사찰에 들러서 돈을 얻으려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승복을 입은 이들이 싸움을 벌이게 되면. 국민은 그 내막을 자세히 일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보나마나 잿밥 빼앗기 싸움이겠지”라고 생각한다. 조계종 입장에서는 서정대 총무원장이 선출되기 이전까지의 총무원과 “정화개혁회의” 사이의 대결이 합법 대 불법으로 확연히 구별되지만, 국민의 눈에는 한 마디로 “똑같은 중놈들의 싸움”일 뿐이다. 국민들은 듣기 좋은 말로 “무조건 화합하고 제발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다.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사람들이 여러 번 등장해서 온 세계에 격투 장면을 보여 주다 보니, “화합 우선”이라는 말에 반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지난 총무원장 선거 때는 후보들이 앞다투어 과거에 징계를 받은 승려들에 대한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승적을 삭제하는 “제적”이하 공권정지 둥의 징계를 받은 이는 총무원장의 의지에 따라서 사면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세속법에서의 “사형”에 해당하는 “멸빈”의 징계를 받은 이들에 대한 처리이다. 현재 종헌으로는 멸빈자에 대한 사면은 불가능하다. 종헌의 개정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려면 모든 종도의 동의가 필요하다. 종도들의 의견은 대개 두 줄기로 나뉘어 있다. 한쪽은 일단 “사형”을 받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없고, 또 그 범죄자들이 종단 질서를 흐리게 해서도 안 된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 쪽은 멸빈자 가운데도 파렴치범이 있는가 하면 종단 분규 때에 패한 쪽에 줄을 서서 정치적으로 징계를 당한 이들도 있으니, 후자에 속한 이들만이라도 구제하자는 주장이다.
“멸빈자들이 구제될 경우,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고 다시는 종단 정치에 끼여들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종도들의 의견은 통일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 조건에 대해서는 사면을 받는 이들이 오히려 반대할 지도 모른다. 멸빈자들 가운데는 권력 지향적 승려도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주지직을 포함해서 일체의 공직을 맡을 수 없게 한다면, 지금의 처지와 크게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승복을 입고 절에 거주하는 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는데, 일체의 공직을 맡지 못하는 조건의 사면에 무슨 소득이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평등공양”을 위한 제도를
나는 전국의 모든 사찰을 방문해서 돈을 얻는 것을 일로 삼는 전문 탁벌승들과 “종권이 바뀌고 종단이 재편되면 과거에 소외되었던 나에게 관심을 갖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고 “정화개혁회의”편에 참여했던 이들에게서, 종단 분규의 뿌리점을 알려 주는 불평을 듣곤 한다. 어떤 이는 한 교구 전체 또는 말사를 차지하여 정화 뒤 수십 년 동안 자기 개인의 아성을 쌓고 있는 반면에, 종권이나 주지권의 주류에 끼지 못한 이들은 작은 말사 주지 한 자리도 맡지 못한다는 것이다. 종단과 사찰에서 주는 혜택이 모든 승려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종단 소외 계층 승려들의 불평을 들으면서, 다른 종단에게서 소속 승려 관리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요즘 천태종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천태종 발전의 주된 이유로 “조속 승려들에 대한 완전 통제”를 들고 있다. 천태종 사찰은 신도들에 의해서 공개적으로 운영되고 모든 수입은 중앙 본부에 의해서 필요한 곳에 집중적으로 투입된다. 승려들은 예식과 포교에만 주력하고, 중앙으로부터 매월 일정한 보시를 받는다. 그래서 조계종처럼 주지직을 맡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 금력 또는 권력 지향적인 승려들이 없으니 종단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
조계종의 실태는 어떤가. 94년 서의현 총무원장이 물러난 뒤, 중앙집권제에서 본사중심제로 법이 바뀌어졌다. 종헌 종법에는 총무원에 전국 사찰의 주지 임면권이 있었을 때도 모든 승려들에 대한 통제가 어려웠다. 하물며 지금의 본사 중심제에서는 천태종처럼 모든 승려를 일괄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기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 기껏해야 사미승들이 반드시 기본 교육과정을 이수해야만 구족계를 받고 정식 승려증을 받도록 종단중앙기관이 관리하는 정도일 뿐이다. 모든 승려에게 저마다 적성에 맞는 수행 또는 포교 방면의 일거리와 생활에 필요한 보시를 주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있다.
물론 조계종이 천태종의 종단 재산 및 소속 승려 관리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천태종은 그 역사가 짧은 신홍 종단이요, 조계종은 이 땅에 불교가 틀어온 이후로 한국 불교의 모든 자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복합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거대 종단이다. 천태종처럼 단일 교조의 제자들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다. 모든 사찰이 개신교처럼 개별 교회 주의로 독립되어 있지도 않다. 일본 불교처럼 세습제를 인정해서 안정과 발전을 취하기도 어렵고, 중앙집권력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그렇더라도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종권 지향적 승려들이 없도록 풍토를 개선하고, 소외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승려들이 없도록 특단의 조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불교의 자산은 매우 우수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좋고 사찰과 불교문화 유산이 좋다. 승려들이 권력과 금력을 향해 날뛰고 싸우는 모습만 보이지 않는다면, 불교는 반드시 되살아나게 되어 있다. 언젠가는 국민이 불교를 좋아할 날은 반드시 오게되어 있다. 그 날에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처럼 분규로 얼룩진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하고 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종단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도 새 천년의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