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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께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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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대원성 2000년 01월 215호
스님!
일타 큰스님!
하늘에 큰 별이 떨어진 듯 허황하고 슬픈 마음이 아직도 가슴에 가득한지라 힘겨운 날들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스님이야 병고에 시달린 육선 벗어던져 훨훨 가벼우시겠지만 스님을 의지하고 따르던 신도들에겐 이보다 더 큰 슬픔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언젠가는 있을 일이란 걸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막상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들었을 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온통 세상이 어둡게만 느껴졌습니다. 스님이 오신다는 날, 미리 은해사에 가서 스님의 법구를 맞이할 때 그 모든 대중의 장열한 마중에도 스님은 말 없이 운구되시어 주무시는 듯 깨끗한 모습으로 세상에서의 마지막 만남을 가지셨습니다.
스님의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각처에서 오신 수많은 인파들은 바로 스님의 삶을 말해 주는 듯 했습니다.
생전에 정 많으시고 사려가 깊으심에 스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가시는 길을 전송하고자 함이겠지요. 이윽고 다비장으로 스님의 법구가 옮겨져 제지들의 불씨로 불을 붙일 때 또 한번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오열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스님의 법구가 맹렬한 불길에 휩싸일 때 갑자기 박수소리가 들려 너무나도 놀라서 살펴보니 종일 흐리고 차가운 날씨였는데 때마침 구름 사이로 나타난 해가 신통묘용을 보이지 않겠습니까. 본디 해 자체가 빛을 내지만 평소와 다른 여러 가지의 방광을 하자 몇 번이나 박수가 쏟아져 이 또한 예사로움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스님께서 너무 슬퍼하는 대중들에게 무언의 광명으로 답해 주신 뜻이리라 믿습니다. 스님의 덕화德化를 기리며 집으로 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슴엔 그리움만 커갈 뿐입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스님과 친정 아버지와의 인연으로 지극히 자연스레 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스님을 만나게 될 때면 어디든지 따라 다니던 어린 시절이 어제만 같이 생각되고, 스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아직 곁에 있는 듯 느껴지는데, 스님의 육신은 세연世緣이 다하여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시고 이제 법신法身으로 화化하셨습니다.
아직도 어리석고 미련한 저희는 스님의 바른 가르침을 다 배우지 못했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스님! 그 오랜 병마와 싸우면서도 일념一念 정진의 힘으로 그 많은 사리를 출현出現하심에 다시 한번 부처님의 진리를 보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생전의 스님 처소는 늘 많은 사람으로 북적대고 쉴 틈이 없었지만 한번도 싫은 내색 보이지 않으시고 만나는 사람마다 편안하고 인자하게 대해 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지난날 스님을 알고부터 몇 가지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생각납니다.
그 중에 결혼하기 전 스님을 따라 방생을 갔을 때 그 많은 고기들 가운데 가장 큰 고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사려고 하니, 스님은 ‘가만있어 봐라‘며 먼길 차비까지 다 털어 죽어 가는 고기까지 몽땅 사서 ’죽고 사는 것은 제 명이지만 살려 주는 마음엔 차별이 없어야 한다‘며 놓아주실 때 저는 그날 종일 스님을 바로 뵈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작고 옹졸한 제 소견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입니다.
또 한번은 길을 가시다가 흰 종이가 바람에 날려 가는 것을 보시고 끝까지 따라가서 주워 걸망에 넣으시길래 그 더러운 걸 뭣하러 주우시느냐고 핀잔을 드렸더니 “이런 것은 누구든지 먼저 보는 사람이 주워야지”하시면서 절에 돌아와 그 종이를 무릎에다 대고 손으로 곱게 펴서 다림질을 하시되 깨끗한 부분은 가위로 작게 오려 화장실에다 모아 두시고 글이 써진 부분이나 더러운 부분은 아궁이에서 태우시는 것을 보고 또 한번 부끄러움과 큰 교훈이 되어 제 삶에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또 어디선가 우편물이 올 때면 봉투마다 잘 개봉하여 그 봉투를 뒤집어 풀을 붙여 다시 사용하시는 지혜로움과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는 그야말로 근검절약이 몸에 배인 삶을 사셨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셔서 늘 귀여워하시고 뛰고 떠들어도 빙그레 웃어 주셨지요. 제 나이 서른세 살 때 지금부터 23년 전 우리 또래의 풋보살들로 연꽃모임이란 단체를 만들어 스님을 스승으로 삼아 버스 두 대씩 가서 붐비고 다닐 때였습니다. 그 때에도 스님은 일일이 챙겨 법명도 지어 주시고 필요하면 글도 한 점씩 써 주시며 법문도 귀찮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어디서나 돌봐주시던 그야말로 자상하신 성품이셨지요.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법우들로 잘 키워 주셨습니다.
스님의 법문이 법상에서 두 시간이면 스님이 쉬시는 방에서 이어지는 작은 법당의 법문은 끝도 없이 이어져 공양시간도 지키지 못하실 정도로 매정한 일은 못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가끔 부산에 오실 때면 넉넉하고 큰집 큰 신도보다는 작고 초라한 저희 집에서 동네방네 소문을 듣고 찾아 온 이웃과 회원들이 모여 자연스레 마을 법회가 이루어졌고, 그럴 때마다 스님의 턱밑까지 사람이 밀려들었으나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많은 질문에 답해 주시고 기도나 참선에 관한 법문으로 모두 환희하여 발심케 했습니다.
그렇듯 스님의 은혜가 깊어지자 모임은 부부동반 모임으로 발전되어 해마다 초파일이면 해인사 큰법당 참배, 그리고 지족암 큰스님 법문 듣기를 22년 동안 빠짐없이 해 왔었습니다. 때로는 시자 스님이 큰스님 건강을 위해 신도를 제제하면 그게 못내 가슴 아파 꼭 “차 한잔이라도 하고 보내야지” 하시면서 끝까지 챙겨 주시던 스님을 이제 어느 하늘 아래서도 다시 뵈을 수 있겠습니까. 한없는 눈물 거두고 평소에 저희들게 들려 주셨던 법문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정진하기를 서원하며 스님께서 다시 화신으로 이 땅에 오시어 그 지혜로운 영혼을 그대로 안고 오시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끝으로 스님이 써 주신
처염상정處染常淨 청정무구淸淨無垢 해인삼매海印三昧 안심입명安心立命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지만 깨끗하여 때묻지 않고 잔잔한 바다에 만상이 영인되듯 선정은 안심의 진리니라‘는 뜻을 잘 새겨 본받아 살겠습니다.
스님! 다시 환생하옵소서.
나무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