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국립공원과 개발독재 그리고 3보 1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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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2년 08월 246호
산 하나를 온전히 살려내는 데는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쏟아내야 하는 것일까? 땡볕이 쨍쨍 했던 지난 7월 18일. 서울역에서 조계사에 이르는 3㎞의 도로는 3보 1배의 땀방울로 젖어들었다. 그날 60여 명의 스님들과 재가불자, 그리고 3보 1배 행렬에 함께 한 300여 명의 사람들이 흘린 땀은 그냥 땀이었을까? 아스팔트에 머리를 조아리면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고, 그 열기는 온몸을 후끈 달구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고, 무릎을 아스팔트에 대었다 일어설 때마다 육신은 고통스러워 했다. 도시의 바람은 매연 덩이였고, 아스팔트의 타르 냄새는 속을 헤집어놓았다. 뒤늦게 알아차린 사실 하나. 그랬구나. 우리가 이 길을 참으로 편하다며 자동차에 올라 지나쳤구나.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세 걸음마다 한 번 절하며 조계사까지 왔다. 자동차로 5분이면 올 길을 다섯 시간 걸려서, 참회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왔다.
절은 불교에서 인사를 나누는 예법이자 동시에 자기를 낮추는(下心) 수행의 한 방법. 이마와 팔꿈치 무릎을 바닥에 댐으로써 자기를 한없이 낮추고 상대를 지극히 받드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북한산 국립공원 살리기 3보 1배’의 절의 주체는 인간 중심의 이기심과 탐욕이며, 절을 받는 대상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과 개발에 스러져가고 있는 자연과 생명이다.
그래서, 첫 번째 걸음은 인간들의 이기심과 탐욕을 참회함이며, 두 번째 걸음은 스러져가는 뭇생명에 대한 연민과 위로, 세 번째 걸음은 자연과 뭇생명을 살리겠다는 굳은 서원이며, 일배는 위의 세 걸음을 통한 참회와 서원을 성취케 해달라는 기도이다.
아울러 이번 3보 1배를 통하여 네 가지를 염원했다. ▶무한히 베푸는 자연에 감사하고, ▶국립공원을 파괴하는 정부의 각성, ▶스스로 참회하고, ▶마침내 북한산 국립공원을 살리자는 의지와 염원을 다진 것이다.
지난해 11월 회룡사선원에서 안거 중 북한산의 나무들이 베어지자 북한산을 떠나지 못하고, 지금도 철마선원에 머물며 ‘북한산 살리기’를 발원하고 있는 종호 스님이 이날 ‘국민들께 드리는 글’을 낭독했다. 오척 단구의 빛나는 눈동자의 스님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읽은 글의 요지는 ‘살림’과 ‘상생’이었다. “비단 북한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국의 모든 국립공원 보전의 문제이며, 청정국토 실현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죽임에서 살림으로, 대립에서 상생으로 나아가야 할 21세기적 새 패러다임인 생명평화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북한산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수도에 자리잡은 국립공원입니다. 이를 보전하는 것은 공사비 등 경제적인 효율성의 문제를 뛰어넘어 대한민국의 문화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입니다. 정부는 북한산을 포기하는 정책을 당장 철회하고, 자연생태·지질·수리변동·사찰 및 주민 피해 등을 재조사한 뒤 그 결과를 근거로 의정부 외곽노선 등의 대안노선을 재결정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가장 빠르고 올바른 길입니다.” 이제 북한산은 온전해질 수 있을까?
16일, 북한산에 자리잡은 19개 사찰이 한국도로공사와 서울고속도로(주) 상대로 제출한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 제4공구(북한산 관통터널)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정이 있었다.
서울지법 북부지원 제4민사부는 결정문을 통해 회룡사와 홍법사가 소유 또는 점유한 구간의 공사를 중지하라고 밝혔다. 아쉽게도 전체 구간에 대한 공사 중지 결정은 아니었지만, 터널 공사에서 몇 지점의 공사를 중지하라는 결정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을 터널로 관통하는 노선 대신 새로운 노선을 찾으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신문과 TV에서도 이 소식을 주요 뉴스로 전하며, 새 노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재판부의 결정에 대해 한국도로공사와 시공사는 공사 중지 구간의 토지 매수를 협의할 것이고, 법원에 공탁금을 내고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승려 차림으로 위장한 폭력배를 동원해 북한산 살리기 운동을 스님들간의 싸움으로 몰고가려 하더니, 이제는 개발독재 시대의 전형인 밀어 붙이기식으로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밀어붙이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국도로공사와 시공사는 ‘북한산 살리기 정진도량’을 포크레인과 폭력배로 밀어붙이려 하지만, 정진도량의 대중들과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굳게 지키고 있다. 종교인과 지식인들의 격려와 지지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전국전통강원연합회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인들이 정진도량 외호에 나서기로 결의하고, 매일 상주하고 있다.
이미 불교계는 정부에 협의안을 내놓았다. 조계종 총무원은 7월 6일 김대중 대통령과 국무총리실에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한 불교계의 요청 사항’을 전달했으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북한산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4공구와 인접 구간인 5, 6공구에 대한 공사를 12월까지 보류하고 ▷공사 보류 기간에 국무총리실 산하에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지역 노선검토위원회(가칭)’를 구성하여 노선의 전문적 검토와 그 동안 미흡했던 협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 요청서의 요지이다.
총무원은 이 요청서에서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 계획의 추진 절차상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환경영향평가를 거치기 이전에 도로구역을 결정했으며, 관련 법규에 의해 1년 이상의 기간을 요구하는 수리변동 관련 조사를 40일 만에 졸속으로 실시했으며,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문화환경(문화재보호법, 전통사찰보존법 등)에 대한 평가를 누락했으며, 국립공원 구역 내에 1㎞ 이상의 도로를 개설할 때는 국립공원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받도록 되어 있는 자연공원법의 관련 조항을 이행하지 않았다.
놀라울 뿐이다. 2조원이라는 엄청난 규모(2002년도 정부 예산은174조원)의 대형 SOC 사업을 진행하면서 절차를 무시할 수 있을까. 북한산 관통터널이 뚫리면 북한산의 아름다움은 서서히 허물어진다. 대웅전 지붕 위로 8차선 고속도로를 떠받치는 교각이 세워지고, 절 마당 밑으로는 터널이 뚫고 지나간다. 물이 마를 테고, 천년의 고찰은 ‘유적’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런데도, 도로 건설로 인해 수행환경에 막대한 악영향을 받는 사찰에는 알리지도 않았을까.
더욱 놀라운 것은 다음과 같은 항변에 대해 정부당국의 어디에서도 해명이 없다는 것이다.
“유엔이 지정한 ‘2002 세계 산의 해’에 추진되는 북한산 관통도로 공사는 주민과 환경단체, 그리고 종교계의 지속적인 대안노선 요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민주화운동으로 탄생한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지 오래이지만 국책사업의 ‘밀어붙이기식 개발독재’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3보 1배에 임하며 국민들께 드리는 글) 정부와 개발업자는 두려워하고 있다. 불교계와 환경단체의 ‘더 이상 자연을 파괴하지 말라’는 소리를, 자연을 파괴하고 얻을 이익을 포기하라는 소리로 듣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 역대 정권은 경제지표 끌어올리기에 건설·토목 사업을 이용했다. 실업자를 일시적으로 흡수하고, 많은 돈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산이 무너지고 물이 막히는 것은 그들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수십년 동안 우리 국토는 무너져내렸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산 관통도로 반대운동은 북한산을 온전히 보전하자는 데 머물지 않는다. 전국의 모든 국립공원과 산천을 보전하는 문제이며, 자연을 파괴하고 이익을 얻고자 하는 집단을 ‘살림’으로 탈바꿈하는 ‘상생’의 운동이다. 그러므로 북한산을 온전히 지켜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