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 달간 운영한 템플스테이가 6월 22일날 회향을 하였다. 한 달 동안에 15개국 정도의 나라와 60명에 달하는 외국인들과 함께 1박 2일간의 사찰 체험을 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었다. 해외에 그동안 크게 알려지지 않은 한국불교를 이번 월드컵 시즌을 통해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홍보의 미숙으로 인해 예상 이하의 효과를 얻어야만 했다. 그나마 이 곳 해인사는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모신 법보종찰이라서 인지 외국인들이 많이 관광을 오고 이 프로그램에도 동참을 하곤 했다.
난 이 템플스테이를 지도하고 운영을 하게 된 지도 법사 중 한 명으로 반에서 추천을 받아 소임을 보게 되었다. 영어에는 관심이 있긴 했지만 짧은 영어 실력으로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포교국 소속 자원봉사자들의 통역 도움을 받았지만 한국어로만 그들을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심리적인 부담감과 퇴굴심 마저 들곤 했었다. 하지만 한국불교를 알리는 홍보사절이라는 막중한 책임과 승려로서 포교 차원의 의무감으로 밤에는 한문 공부를 잠시 접고 영어 공부에 전념했고 해인사의 역사와 가람배치, 벽화, 불상, 장경각 등 전반적으로 많은 공부를 해야했다. 그런 준비 끝에 첫 외국인 팀과 미팅을 했다. 너무나 가슴이 설레었고, 긴장한 나머지 그동안 공부한 모든 것을 잠시 잊기도 했었다.
하지만 노련한 통역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그동안 계획했던 프로그램에 맞추어 진행을 하여 무사히 한 팀을 보낼 수 있었다.
이 곳을 찾은 외국인들은 너무나 호기심 가득한 천진불처럼 사찰 구석구석을 구경하길 원했고 한 가지라도 더 알고자 많은 질문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법사 스님들은 거기에 환희심을 얻어 재미나게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한 팀을 보낼 때마다 소감문을 받는데 그 중에 좋았던 점과 개선해야 할 점을 꼭 물어보곤 했다. 그리하여 사전에 계획했던 프로그램과 마칠 때의 프로그램이 약간 수정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론 위주와 정적인 교육이었던 반면에 중반쯤에는 완전히 경험 위주의 동적인 교육으로 전향하여 교육을 했더니 반응이 너무 좋았고 한국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큰 추억을 얻게 하였다.
그런 식으로 많은 팀을 개선된 프로그램으로 체험을 하게 했고 또한 외국인 대부분이 우리나라의 선禪에 관심이 많았었다. 위빠사나를 먼저 접해서인지 한국의 선을 배우고 싶어했다.
그들은 고요한 산사의 새벽에 산새소리를 들으며 성철 스님의 사리탑에서 참선을 할 때의 그 느낌은 정말 좋았었다고 한다. 한 시간 정도의 참선 시간 동안 그들은 너무나 진지했고 그 짧은 시간에라도 뭔가를 얻고자 깊은 선정에 들려는 노력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또한 그들이 신기하게 여겼던 것은 원당암에 모셔진 혜암 스님의 진신사리였다. 그들이 몸에서 나온 사리를 처음 보곤 믿기질 않는다고 했다. 너무나 영롱하고 아름다운 보석 같은 이 사리가 어떻게 몸에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많이 가졌고 신기해 했었다.
승려로서의 본분에 맞게 평생 열심히 학문에 정진하고 화두 참선을 통해 자신의 자성을 깨쳐 나갈 때 나타나는 하나의 수행 결정체라고 설명을 했지만 나 자신도 약간은 의구심을 갖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 앞에 있는 이 사리들을 보며 하나의 결과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청정하게 사시며, 열심히 수행하신 혜암 스님의 진신사리 앞에 모든 외국인들은 존경심과 찬탄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동안 많은 외국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 짧은 시간 동안 맺은 인연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너무나 소중했던 나 자신의 좋은 추억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깊이 오래 남는 한 명의 외국인이 있었다.
한국인의 뜨거운 피가 흘렀지만 정서적으로 물질적으로 서구화에 젖어 있었다. 오래 전부터 모국인 한국에 오고 싶어하다가 이번 월드컵 시즌에야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준비된 프로그램에 맞추어 그와 같이 생활을 하였는데 한국의 음식에 쉽게 적응을 하고 문화 또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역시 피는 속일 수 없구나’를 느끼게 했고 한편으로는 그 먼 곳까지 입양을 하게 했던 당시 사회구조에 가슴 아파했었다. 너무나 빡빡한 일정에도 피곤해하거나 싫증을 내지 않고 오히려 더 새로운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하기도 했었다. 단적인 예로 그는 염불소리를 너무 좋아했었다. 그래서 계획에도 없던 염불소리를 들려주고 간단히 녹음도 해 주고 운곡도 알려 주었다.
우린 그에게서 여느 사람과는 다른, 뭔가를 느끼고 배워가려는 강한 의지와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최대한 한국의 좋은 모든 면을 사진에 담아가고 녹음까지도 해서 벨기에로 돌아 갈 생각이었다. 이유는 모국이 그리울 때 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나라에 온 그를 우리 법사스님들은 좀더 깊은 관심과 자상함으로 최대한 좋은 이미지와 감동을 느끼고 돌아가게끔 노력을 했었다.
정말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고 이 소임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보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제 월드컵도 끝이 났고 템플스테이도 끝이 났다. 우리와 짧게나마 함께 하며 서로 배우고 나누었던 좋은 인연들을 통해 세계 각지에 한국불교가 널리 전해져 많은 사람들이 한국불교를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나의 작은 바람이다.
또한 티벳이나 동남아 불교보다 더 많은 포교 활동을 통해 세계 속에 우리 한국불교를 꽃피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