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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奈良) 도쇼다이지(唐招提寺) 절의 불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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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여화 - 김진숙 2002년 08월 246호
일본에서는 절기나 명절을 음력으로 하지 않고 양력으로 한다. 이곳의 가장 큰 명절은 1월 1일의 신년과 8월 15일의 우란분盂蘭盆이다. 원래 우란분은 부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목건련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 대중에게 공양하던 날로 우리는 백중이라 하는데 일본에서는 이것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명절이 되었다. 이 때 대부분의 일본인은 부모와 친척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평소에 고마운 분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선조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절이나 신사를 방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우란분을 전후로 국내나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으며 저녁 뉴스 시간에는 어김없이 오늘 몇 명이 해외 여행을 위해 일본을 빠져나갔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교토는 역시 일본의 고도古都답게 우란분을 기념하는 전통 있는 행사가 하나 있다.
8월 16일 밤 8시부터 교토를 둘러싸고 있는 다섯 산에다 각각 두 개의 ‘대大’와 ‘묘법妙法’ 문자, ‘배(舟)’모양, ‘새가 앉아 있는 모양(鳥居)’으로 횃불을 밝힌다. 약 5분에서 10분 간격으로 글자 모양 따라 불이 붙는 광경은 한여름의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 줄 만큼 장관을 이룬다. 이것은 원래 우란분 행사의 하나로써 다시 명부冥府로 돌아가는 정령精靈을 위해 불을 밝힌다는 의미로 불교가 서민 사이에 침투하기 시작한 중세, 즉 무로마찌(室町) 시대 이후에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전망이 좋은 곳은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벼 발 디딜 틈도 없다. 다행히 집 근처의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면 이 다섯 모양을 전부 볼 수 있는 알려지지 않은 최고의 장소가 있어 매년 이 곳을 찾는다.
오늘은 이국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나라(奈良)의 도쇼다이지(唐招提寺) 절과 불상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라 긴테쯔(近鐵) 전철 니시노교(西京) 역에 내리면 바로 야쿠시지(藥師寺) 절이 있고, 거기서 동쪽으로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도쇼다이지 절이 나온다. 남대문을 들어서면 아담한 금당이 보이는데 금당은 나지막한 지붕을 하고 있어 남대문에서 사진을 찍으면 금당 전체가 들어온다. 금당 뒤에는 강당이 있고 금당과 강당은 모두 텐표(天平) 시대의 건축물로, 도쇼다이지 절은 당나라에서 온 계사戒師 감진 화상鑑眞和尙을 위하여 당시의 귀족 저택을 개조, 증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중세에 원위치에 재건된 경루(經樓, 現 鼓樓)와 동실(東室, 現 禮堂)이 있으며, 남대문도 새롭게 재건되어 고대의 가람 분위기를 가장 많이 남기고 있는 절 중의 하나이다.
《당대화상동정전唐大和尙東征傳》에 의하면, 전계사傳戒師로서 일본에 초청을 받은 감진 화상은 몇 차례의 시도 끝에 753년에 66살의 나이로 가까스로 일본에 도착하였다. 화상과 함께 중국 각지에서 모인 비구 14명, 비구니 3명, 그리고 재가신자 7명 등도 함께 왔다. 그후 헤이죠쿄(平城京) 서울에 도착한 화상은 도다이지(東大寺) 절에 계단戒壇을 설치하고 천황과 황후 등을 포함해서 440명에게 계를 주었다. 759년에 본격적인 율종律宗 사원으로서 도쇼다이지 절의 건립이 시작되었고 감진 화상은 완성을 눈앞에 두고 763년에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한편 도쇼다이지 절의 건립과 불상 조성에 활약한 이들은 당시 화상과 같이 대륙에서 건너왔던 사람들이었다. 특히 재가신자들은 당시 성당盛唐 후반기의 건축, 회화, 조
소彫塑 등의 기술을 익힌 사람들이었으며, 서역 출신의 불사佛師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을 주축으로 일본 장인들이 참여하는 형식으로 다양한 작풍의 불상들이 조성되었다. 따라서 도쇼다이지 절의 불상들은 당나라 사람들이 조성한 작품, 이들과 일본인이 함께 공동으로 만든 작품, 일본인들의 작품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현재 금당에는 중앙에 본존인 비로자나불좌상(脫活乾漆造漆箔, 상 높이304.5㎝, 사진), 본존 왼쪽에 약사여래입상(木心乾漆, 상 높이336.5㎝)과 오른쪽에 천수관음보살입상(木心乾漆, 상 높이535.7㎝)이 안치되어 있고 그 외에 호법신으로서 범천(木造乾漆, 상 높이196.2㎝), 제석천, 사천왕상을 배치하고 있다. 또 강당에는 도쇼다이지 절 창건기에 제작된 상들로 추정되는 안치 장소를 알 수 없는 많은 상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보존을 이유로 새로운 수장고에 모두 보관되어 있다. 이 중에서 당나라에서 건너온 장인들의 작품들로는 금당의 비로자나불 좌상, 범천, 사천왕상 중에서 다문천多聞天과 광목천廣目天이 있으며, 강당에 안치되어 있었던 약사여래로 전래되고 있는 입상(木造檀色, 상 높이160.2㎝), 사자후獅子吼 보살로 전래되고 있는 입상, 중보왕衆寶王 보살로 전래되고 있는 세 구의 입상 등을 꼽는다(井上 正《7~9세기의 미술-전래와 개화》 岩波書店, 1991). 이 상들의 양식은 일률적이지는 않지만 감히 쉽게 근접할 수 없는 표정과 박력이 넘치는 표현 등은 공통으로 느낄 수 있다.
특히 금당의 본존 비로자나불좌상은 텐표 시대 후반기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을 만큼 박력과 사실적인 표현들이 가득하다. 두부頭部와 흉복부胸腹部에 보이는 육신의 팽창감, 두꺼우면서 자연스럽게 뻗은 팔, 넓게 벌린 결가부좌의 무릎 부분 등에서 당당함을 느낄 수 있고 얼굴의 표정과 양손의 움직임, 그리고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옷자락 등에서는 사실적인 표현의 극치를 엿볼 수 있다. 약사여래로 전래되고 있는 입상을 보면, 엄격한 얼굴표정과는 달리 얇은 옷을 통해서 신체의 곡선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바로 물 속에서 나온 듯 옷이 몸에 달라붙어 있으며, 발목 언저리의 옷자락 끝은 바람에 흩날리듯 미묘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무로 조각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얇은 옷이다. 넓게 벌어진 가슴에서는 당당함이 느껴지고 왼쪽 어깨로부터 흘러내려 복부에 모인 옷주름과 그 밑으로 흘러내린 옷주름은 보는 이의 시선을 한 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할 만큼 동적인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사자후보살과 중보왕보살로 전해지고 있는 상들도 역시 이국적인 얼굴 표정과 함께 전신에서 뿜어 나오는 힘찬 느낌은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도쇼다이지 절 불상 중에서는 지금까지 살펴왔던 도다이지 절과 고후쿠지(興福寺) 절의 정감이 넘치고 부드러운 불상들과는 다른 새로운 작풍의 불상들이 만들어져 이후 헤이안(平安) 시대의 조각 양식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나 그 전통을 이어 나가지 못한 채 이국적 양식으로 머문다. 이는 아마 도다이지 절 계통의 부드러운 양식의 불상들을 선호하는 일본인들 정서와도 관계가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