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더욱 아름다운 사람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2년 08월 246호
여름날 도심의 하루도 바삐 지나간다. 멀리 앞산에서 매미소리가 한낮의 나른함을 더해 준다. 깊은 산중 나무그늘 시원한 어느 계곡에서 시린 물에 발을 담그고 한낮의 나른함을 식혀 본 기억이 아련하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대지를 적막하게 만드는 오후 한나절, 도심의 한낮도 사물의 움직임과는 상관없이 산중만큼이나 적막하게 느껴진다. 나만이 느끼는 것일까?
삼라만상이 모두 자연의 힘에 순응하는 기분이다. 오후 한나절 이런 적막함마저 없다면 여름날 더위를 견디는 일은 더 힘들 것이다. 이런 여름이면 짙푸른 산천과 더불어 사람들의 삶이 건강하고 성숙하게 보인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나라 사람들의 휴가 풍습은 다른 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다른 나라의 휴가 풍습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여름이라는 계절이 아닐지라도 필요한 때와 원하는 계절에 휴가를 보내는 데 비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의 휴가는 여름철에 한정되어 왔다. 사회와 경제 문화적인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겠지만 천편일률적인 휴가풍습이었다. 명절을 제외하고 일년에 한 번 있는 휴가임에도 3일에서 4~5일 휴가를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고 연차 월차 휴가를 합해서 길어야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런데 휴가를 보내는 방법 또한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하거나 산 좋고 물 좋은 계곡을 찾아 가족과 함께 물놀이하면서 쉬거나 고향을 찾아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드는 것이 여름휴가를 보내는 모습이었다. 마치 꼭 치러야 하는 연중 행사처럼 말이다. 앞집과 뒷집에서 경쟁이라도 하듯이 어디로 휴가를 간다느니 하면서 소식이 들려오면 꼭 떠나지 않으면 문화인이 아닌 것처럼 그렇게 앞다투어 바다로 산으로 휴가를 떠나곤 했었다.
사람들이 보내는 여름 휴가의 풍습을 생각하다보니 기억에 남아 있는 일이 하나 생각이 난다. 운문사 학인 시절의 일이다. 요즈음 학인들의 소임에 대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십여년 전에는 학인들이 산감 소임을 살았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산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주시하고 감시하는 일인지라 도량 주변 계곡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산감의 소임이었다.
요즘도 물론 산 좋고 물 좋은 도량에 사는 스님들은 그런 일들을 비일비재하게 치르겠지만 그 때는 왜 그렇게도 젊은이들이 계곡을 찾아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서 밤새도록 소리통을 산천이 떠나가도록 틀어 놓고 몸부림을 쳤던지, 그 도량에서 잠드는 스님들을 비롯한 삼라만상이 다 잠을 설치곤 했었다. 밤 9시가 지나면서 산감 소임자가 도량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야영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10시가 지나면 제발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일이지 그 젊은이들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밤새도록 소리통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가락과 젊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다투는 고함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쳐야 하는 여름밤을 보내야만 했었다. 아침 수업을 마치고 산감 스님은 짝을 지어 어김없이 도량 정비를 나섰다. 유난히 덥기도 하고 모기의 날개 소리가 크던 날, 그날따라 젊은이들이 밤을 꼬박 새우며 산천이 떠나가도록 노래를 불러 대는 바람에 잠을 설친 산감스님의 각오는 대단했다. 튼튼한 막대기를 하나 들고 휘두르면서 “어젯밤에 떠든 녀석들이 걸리기만 해 봐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걸리기만 해 봐.” 입을 옹골차게 다물고 하는 산감스님의 말을 들은 도반스님들이 “산중의 신사처럼 그야말로 점잖게 타이르고 오세요”라고 달래서 내보내곤 했다. 그리고 여름마다 보는 풍경이지만 왜 그리도 그때는 장난끼가 발동을 했던지 도반 스님들과 오후에 방선을 하고 오솔길로 산책을 하다가 큰 바위를 병풍 삼아 젊은이들이 입마춤이라도 할라치면 차례로 돌팔매를 던져 기어코 그 분위기를 깨놓곤 했었고, 꼭 법당 옆에 가까이 와서 자리를 펴고 지글지글 고기를 구워서 먹는 양심 없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인내해야 했었고, 아랫마을 젊은이들이 야밤에 전류가 흐르는 그물을 계곡에 담가서 스님들 이 시시로 먹이 주고 키우는 물고기를 다 죽여서 건져가다가 못 건져간 떼죽음 당한 물고기의 시체를 봐야 했었다. 참 오래 된 이야기지만 그 때도 사람들의 휴가 보내는 모습을 보고 꼭 저런 방법 밖에는 휴가를 보낼 수 없을까? 좋은 방안은 없을까? 하고 도반스님들과 고민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삶의 양상이 여러모로 달라지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서 명예와 부를 추구하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것은 별반 다를 바 없지만, 그 추구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 그저 먹고 살아가는 의식주라는 삶의 굴레에서 조금 벗어나 자기를 관조하는 시간을 배려하고 자기 존재의 실체를 확인하는 일에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 그런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침묵하며 참선이나 명상을 하는 일이다. 올 여름은 유난히 여름 산사 수련회에 신청서를 냈다는 지인들의 소식이 많이 들린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 밀려서 그저 숨쉬고 사는 데 여념이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저만치서 바라보는 일은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일만큼이나 의미있는 일이고,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살다보면 그 동안 삶에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지인들에게 자기와 마주 앉아 보는 시간을 꼭 배려하라고 하면 흔히 “시간이 없다” “어려워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겠다” “스님들이나 하는 일이지 어떻게 우리가 그런 일을 하겠는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실천에 앞서 바쁜 삶을 핑계 삼아 변명이 많다. 자기의 시간과 노력은 아끼면서 쉽게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이기심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그래요 스님?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어디에 그런 프로그램이 있어요?” “네, 이번에는 꼭 여름 휴가에 참가해 볼랍니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런 대답만 들어봐도 사람들이 추구하는 관심이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있는 말이다.
벌써 서둘러 여름 휴가를 보내고 온 지인들의 소식도 많이 듣게 된다. 어느 절 여름 산사 수련회에 참여하고 왔다고 소식을 알려온다. 말로만 들어도 참 마음이 흐뭇하다. 내가 아는 불자는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여름 산사 수련회에 4박 5일간 다녀왔다고 한다. 그런데 좋았던 점은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발우공양이 참으로 좋았고, 그런 공양문화를 각 가정에서도 실천한다면 연간 음식물 쓰레기로 나가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줄이지 않겠느냐고 아쉬워했다. 그리고 좀 아쉬웠던 점은 그 짧은 시간에 삶의 문제를 다 해결하려고 가지는 않았지만 살아오면서 번뇌가 되었던 일들을 마음 밖에 꺼내 놓고 정리를 해 보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일률적으로 “이 뭣고”라는 화두를 챙기며 앉아야 하는 좌선 시간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시간 맞추기에 급급해서 참가자의 근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리운동 하듯이 너무 빨리 1080배를 서둘러 해야하는 그런 프로그램은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털어 놓았다. 그렇다. 한없이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존경하게 하는 절을 통해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하심과 존경의 마음을 알게 하고, 알게 모르게 쌓였던 자기의 아만심과 교만함을 덜어내게 했으면 더없이 좋았을 것이다.
이런 불자들의 아낌없는 충고를 소임자들은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사찰에서 매년 치르는 이 여름 수련회의 역할이 이제는 이런 관심을 갖는 것만큼 더 무거워졌고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몸을 극기하는 훈련 같은 그런 수련회 프로그램보다는 조금 느리고 여유롭게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좋은 시간을 겸한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이 더운 여름날 고요히 앉아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