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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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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인권환 1990년 09월 103호
나의 종교 이야기
개인적인 이력을 상세히 적기를 요하는 서류를 작성하다 보면 ‘종교’라 는 난이 있게 마련인데, 나는 항상 여기에다 주저함이 없이 ‘불교’라고 적는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이렇게 생각할 여지도 없이 종교를 불교라고 적는 나의 당당함과는 달리, 적고 나서의 나는 또 항상 떨떠름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즉 무언가 떳떳하지 못함을 느끼는 것이다.
사실 내가 종교를 불교라고 적는데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조부모 이래 우리 집안에는 종교가 없었다. 할아버님은 공맹(孔孟)을 성현으로 받드는 유학자였고, 집안과 자식들이 잘 되라고 부뚜막이나 장독대에 찬물을 떠놓고 비는 어머님의 기도와 정성은 다만 가택 신앙계의 민간신앙일 뿐이었다. 이런 속에서 자란 나는 대학을 다닐 때까지 무종교였다. 그러다가 대학 말년 「한용운 연구」를 계기로 효당(曉堂)스념으로부터 불교를 알게 되었다. 스님을 통하여 불경공부도 하고 불교사 강의도 들으면서 불교에 깊은 매력을 느꼈고, 전공도 고전불교문학으로 정하게 되었다. 또 여기에는 대학원 지도교수였던 조지훈 선생의 영향도 컸다. 이렇게 신앙보다 사상·문학적으로 접근하였던 나와 불교와의 관계는 결혼 이후에 달라지게 되었다.
나의 처가는 독실한 불교집안이어서 아내는 어릴 때부터 불교신자로 자라왔고, 나 또한 불교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터여서 결혼 후 우리 가정의 종교는 쉽게 불교로 정해진 것이다. 현재 우리 식구들의 이름이 서울의 개운사·도선사, 그리고 강원도 월정사에 신도로 등재되어 있고, 아내는 자주 이들 사찰의 법회와 의식에 참여하며, 시주도 하고 열심히 기도를 드린다. 또 집안 누님 두분과 여동생이 독실한 불교신자여서 만나면 불교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터이다. 이쯤 되면 불교신자임을 자임할 수도 있는데, 어쩐 일일까.
사실 나는 아내처럼 자주, 또는 정기적으로 절에 나가지 않는다. 어쩌다 아내와 동행하거나 여행길에 절에 가게될 때, 빠짐없이 대웅전에 들려 불전을 놓고 참배를 드린다. 나의 불교신앙 행위는 이것 뿐이다. 그러니 이러한 부정기적이고 간헐적인 신앙행위만으로 불교신자임을 자처할 수 있을까. 또 나는 학문적 태도에서 불교를 신앙으로보다는 사상으로 보는 면이 강하다. 이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신앙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두 따르지 못한다는 자괴심(自愧心)이다. 즉 불교신도로서 지켜야 할 계율이나 가르침을 충분히 행하지도 못하고 또 그럴만한 자신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계(五戒)를 철저히 지킬 수 있는가. 삼독(三毒)의 어느 한 가지인들 내 몸에서 완전히 제거하고 있는가. 팔정도(八正道)의 무엇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가. 십악(十惡)의 어느 한가지도 범하지 않고 있는가. 그리하여 진정한 참회의 마음으로 부처님 앞에 당당히 머리 숙일 수 있는가. 물론 그렇지 못 하기에 더욱 부처님의 자비를 따라야 한다는 역논리도 성립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런 것들로 하여 당당히 불제자임을 자부하지 못하는 나다. 내가 이런 소심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좀더 신심(身心)이 깊어질 때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반야심경과의 인연
불교를 아는 사람치고 반야심경(般若心經)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깊은 뜻이야 알건 모르건 불교의 크고 작은 의식에 참여하는 이들로 반야심경 외우지 못하는 사람도 없다.
내가 처음 불교를 알게 된 것도 반야심경을 통해서였다. 대학 3학년 때 「한용운전집」 자료정리차 경남 사천의 다솔사(多率寺)에 머무르고 있던 어느 날, 효당스님께서 우리들(나 외에 세명의 친구)을 법당으로 부르시더니 반야심경 강의를 하시는 것이었다. 장장 4시간 30분이나 계속되었던 스님의 강의를 듣는 동안 나는 정신적으로 어디에 깊이 빠져들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강의가 다 끝난 뒤, 나는 일종의 환희같은 걸 느꼈다. 20대 전반의 소박했던 나의 삶과 인생에 대한 회의가 풀리는 듯 했고, 무언가 막힌 듯했던 나의 정신세계가 뚫리는 듯 했다. 그것은 방황하던 내 정신의 귀착지를 발견한 기분이었고, 또 이는 곧 나의 불교에의 이니시에이션이기도 했다.
그 때의 그 느낌을 나는 서울로 돌아온 뒤 시조로 읊어 「국문학」지에 발표했었다.

無明의 望鄕길 煩惱 더욱 성하던 밤
그 어디 님을 두고 부질없이 헤맸더니
이제와 귀기울이매 나만 홀로 높구나

있는 것이 없거니 없는 것이 있을손가
깊은 산 한점 꽃 明沙十里 한알 모래
그모두 나 아님 없으매 彼岸따로 없거니

船若로 가는 길은 蜀道難말이 아니
꽃 피고 물흐르니 茶 향기만 그윽하다
저 멀리 님의 옷자락 보일 듯도 하여라

지금 생각하면 치기(稚氣) 어린 초심자의 글장난으로 보여져 쑥스럽기까지 한 이 작품은 말하자면 나에게 있어 최초의 오도시(悟道詩? 呵呵大笑) 였다. 여하간 그 때 처음으로 불교를 접하는 계기가 된 반야심경 강의가 준 충격과 감동이 매우 컷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후 나는 계속 반야심경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서점에서 반야심경에 대한 책만 보면 사다 읽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내가 모은 반야심경 해설류의 책이 국내본 만도 13종이나 된다. 모두 같은 경을 말한 책들이지만 글 쓴 이에 따라 그 설명하는 방법이 달라 경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반야심경에 대하여 여러 책을 읽다 보니 내 딴에는 좀 안다 싶어 남에게 반야심경 강의를 하는 무례를 범한 적도 있었다. 즉 몇 년 전 대학원 \'특수과제 연구\'라는 과목에서였다. 원래 이 과목은 담당자의 재량에 따라 특수한 과제를 다루라는 과목인 바 , 그 때 마침 내 학위논문인 「고려시대 불교시의 연구」란 책이 나온 직후라 학생들의 요청도 있어 불교문학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불교문학을 논하기 전에 불교의 사상을 알아야 된다는 생각에서 반야심경 강의를 서론격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리였다.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사실과 이것을 남에게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 하는 점을 알고 나서 그 후로는 다시 반야심경 강의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야심경에 대한 나의 관심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지금 내 서재에는 13종의 반야심경 해설서 외에 3가지의 반야심경 관계 기념물이 있다. 하나는 추사(秋史)가 쓴 반야심경을 잔 글씨로 쓴 부채[合竹扇]이며, 또 다른 하나는 부채꼴의 작은 철판에 반야심경을 양각하여 매듭으로 보기 좋게 매달아 벽에 걸도록 만든 장식품이다.
모두 내가 사거나 구한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하고 많은 선물 중에 반야심경과 무한한 인연을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인연 속에 반야심경의 참뜻을 아는 날은 과연 언제일지 그 유심현묘(幽深玄妙)한 길이에 그저 아득할 뿐이다.


남의 종교 이야기
우리집에는 자주 기독교 개신교에서 발행하는 신문이나 유인물이 투입된다. 이를 관심있게 보노라면 원래는 스님이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의 수기가 자주 눈에 띈다. 대체로 그 내용은 자기가 개종하게 된 동기를 말하면서 이전의 종교였던 불교을 욕하고 비방하는 배용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런 글을 수없이 보노라면 글을 쓴 당사자나 이를 수록하여 다른 종교를 헐뜯으려는 의도가 분명한 해당 종교단체의 태도에 오히려 연민을 금할 수 없다. 사실 우리 종교계에는 오래 전부터 이와 유사한 일들이 종종 있어 뜻 있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많았다.
최근 신문보도에 의하면 일부 기독교 개신교 신도들이 불교에서 행하는 예수재(預修齎)에 대하여 이를 기독교의 예수에 대한 모독행사라 하여 불교를 비방하는 경고문을 붙이고, 또 이를 일반 주택가에까지 확대하여 말썽을 일으켰다고 한다. 예수재란 사후에 행한 불사를 생전에 미리 행하느 것으로 돌아가신 부모나 자신이 살아있을 때 지은 모든 악업을 죽기전에 닦아 좋은 과보를 얻기 위해 행하는 불교의 의식이다. 그리고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행하여 오는 의식이다. 이것을 그 명칭이 유사하다 하여 타종교를 비방하고 이를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은 아무래도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그러고 보면 개신교도들의 이와같은 예민한 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또 어느 평신도 한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닌 듯하다.
얼뜨기 중이나 불교신도가 기독교의 교회에 가서 행패를 부린 일도 있는 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빈번히 개신교도가 불교를 우상숭배라 매도하면서 훼불(毁佛)한 일이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얼마전 개국을 앞 둔 불교방송국의 주조종실 파괴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지난 88올림픽 행사의 관련행사로 한강 연등행사가 계획되고 있을 때 , 이를 특정 종교의 행사라 한 격렬한 반대가 있었던 사실, 또 만원짜리 지폐에 우리의 문화재로 세계적 걸작인 석굴암을 넣었다가 기독교 측의 반대로 막대한 손해를 본 채 도안을 바꾸었던 일도 그리 오래 전의 이야기는 아니다.
종교는 그것이 미신적 자연종교가 아닌 고등종교인 한, 모두 인간과 삶을 위한 참된 가르침이요 사상이다. 비록 근본사상에 차이가 있고 신앙형태가 같지 않다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위한 그 목적이 같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종교를 훌륭한 신앙으로 떠받들기 위하여 남의 종교를 헐뜯어야 된다는 생각은 서로를 위하여 결코 좋은 일일 수 없는 것이다. 서로 다른 종교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인정할 때 그 종교의 발전도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