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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그릇, 깨달음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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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조보영 2002년 08월 246호
‘참나를 찾아 떠나는 산사 수련회’
어느 날 시험 공부에 지쳐 잠시 신문을 뒤적이던 내게 눈이 번쩍 뜨이는 제목이었다. 좌선 하시는 스님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도 여간 인상적인 게 아니었다. 나는 무릎을 치며 ‘그래, 이거야!’라는 감탄사와 함께 전나무 숲길이 유명한 월정사를 나의 첫 번째 출가지로 정했었다. 그것이 작년 여름의 일이다.
그리고 이번 여름도 어김없이 지혜의 샘물을 찾지 못해 오늘 하루도 목말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감로수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 줄 수련법회가 사찰마다 열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두 번째 출가지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충만한 법보종찰 해인사를 선택했다.
4박 5일간의 단기 출가지만 부처님 제자 되기를 서원한 그 마음은 금강석보다 단단하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있었는데 ‘발우 공양’이 그것이다.
월정사 수련회에서 처음 발우 공양을 했을 때 그 악몽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강원도 골짜기를 찾아가느라 점심도 걸렀던 나는 시장기를 참지 못해 나도 모르게 발우에 공양을 가득 받았다. 그런데 평소에 음식을 느리게 먹는 나의 식사습관을 생각지도 않고 많은 양의 밥을 받았으니 반도 먹지 않았는데 ‘숭늉 죽비’ 소리가 난 것이다. 정말 그 때의 황당함과 참담함에 눈물이 쏟아질 뻔했었다.
그래서 터득한 나름의 요령이 있었다. 처음에 공양을 한 주걱 퍼주면 가감加減할 때 반 주걱 정도 덜어내면 남들과 먹는 속도를 같이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고통은 감수해야 한다. 적게 먹고 활동하는 양은 많기 때문에 수련기간 내내 배가 고프다.
드디어 해인사에서의 첫 발우 공양 시간. 내 앞에 발우를 갖다놓고 정좌를 하고 앉았다. 처음은 아니지만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 한치의 흐트러짐도 용납되지 않는 엄격한 발우 습의가 이루어진다. 한 번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익혀진다.
이제 실전이다. ‘딱·딱·딱’ 죽비 삼타에 발우를 편다. 죽비를 한 번 치면 청수물(발우를 닦는 물)·밥·국·반찬 순으로 돌린다. 청수물은 가장 큰 어시발우를 두 손으로 받쳐서 받는데 이것으로 남은 세 발우를 헹구고 청수 발우에 남겨둔다. 물을 받을 때 그만 부으라는 표시는 발우를 좌우로 살짝 흔들어 주기만 하면 된다. 밥은 자신의 양보다 적거나 많아도 그냥 합장하여 받아두고 다시 처음부터 한 번 더 도는데, 이 때 양이 알맞으면 합장하고, 반면 많거나 적으면 덜거나 담는다. 밥을 담았으면 발우를 눈썹까지 받들어 감사한 마음을 표한다. 그리고 죽비를 세 번 치면 묵언으로 공양을 한다. 공양을 할 때는 발우를 입 높이까지 올려서 먹되 고개를 숙이는 건 동물들이 하는 행동이라 하여 절대 고개를 숙여선 안 된다. 또한, 음식 씹는 소리나 수저 부딪히는 소리를 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아귀가 시끄러운 소리에 달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양이 끝나갈 때 죽비를 두 번 치면 숭늉을 돌린다. 공양이 끝나면 숭늉으로 발우를 씻은 다음 이 물을 마신다. 그리고 처음에 받아 둔 청수물로 발우를 깨끗이 씻고 발건으로 깨끗이 닦는다. 죽비를 한 번 치면 아래부터 청수물 걷는 동이에 발우 씻은 물을 모두 버린다.
발우를 씻은 물은 목이 바늘 구멍만한 아귀가 먹기 때문에 고춧가루 하나라도 나와선 안 된다. 그래서 습의사 스님들도 이 부분을 가장 강조하신다.
스님들께서는 청수물이 걷힌 퇴수통을 하나하나 살피시고 가장 찌꺼기가 많은 조에 그 물을 조원 모두가 돌려 마시는 참회를 내리셨다. 이 때 한 거사님이 ‘절대 묵언’을 잊고서 스님들께 항의했다. “잘못한 사람에게만 참회를 주면 되지 왜 대중 모두가 받아야 합니까?”
그 분의 불만 섞인 항의는 단호한 스님의 호통으로 이어진다. “묵언하십시오.” 그리고 곧이어 퇴방조치가 떨어진다. 대중과 화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0여명 남짓 되는 수련생이 함께 움직이는 대중생활 속에서 그 분은 아상, 인상, 중생상 그리고 수자상을 버리지 못한 것이리라. 비록 단기출가지만 참나를 찾아 먼길을 왔는데 사소한 일에 분별심을 내어 마음을 흐트러뜨리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처럼 그 분의 행동은 나에게 큰 가르침과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발우는 여법하게 닦아 묶은 다음 자기 앞에 놓는다. 그리고 죽비를 세 번 치면 합장 반배함으로써 공양을 마치게 된다.
휴~ 무사히 잘 넘어갔다. 자랑스럽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고 또 정말 부처님 제자가 된 듯 환희심도 난다.
발우는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스님들이 쓰는 밥그릇을 가리키는 말로써, 가사와 더불어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이나 의식은 나라와 환경에 따라 다소 변화하기는 하였으나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지금껏 전래되어 왔으며 불교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선종 초기에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전법의 증표로 삼기도 하였으며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탁발 수행이 현재에 이르러 발우 공양으로 이어진 것이다.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수행의 한 과정으로 발우 공양의 의미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누어 먹으니 평등하고,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으니 음식의 낭비가 없으며, 음식을 남기지 않아 설거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으며, 그로 인해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지혜를 가르친다.
또, 배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진리를 닦기 위해 필요한 약으로 여긴다. 그리고 삼보, 곧 불·법·승과 사중 곧 국가·부모·스승·시주자의 은혜를 갚고 삼도, 곧 지옥·아귀·축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먹고 마신다는 생각을 갖는다.
사시 공양 때는 법공양이라고 해서 각종 게송을 외우면서 이러한 발우 공양의 의미를 되새기는데 부처님의 생애를 생각하면서 그 위대한 사상과 공덕을 찬탄하고, 공양이 오기까지 공양물에 깃든 모든 이들의 노고와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의 수행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공양을 받은 인연으로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음을 끊어 마침내 불도를 이루어 답하리라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의미가 있다.
수련회에 임하기 전에 나름대로 발우 공양에 대해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발우>라는 책을 한 권 읽게 되었는데, 발우 공양이 수행자들만의 특별한 식사법이라고만 생각했던 좁은 식견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법과 구도의 상징이면서 보시와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발우 공양은 불교의 모든 사상과 정신을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슴을 울렸던 것은 배가 고파도 목구멍이 좁아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아귀중생을 위해서 발우 씻은 물을 베푼다는 것이다. 또한 생반을 하여 시방세계에 두루하는 모든 귀신들과 함께 공양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발우 공양은 미물까지 생각하면서 모든 중생이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 평화와 안락의 절대 평등의 세계, 극락세계로 갈 것을 지극히 구하고 있다.
수행자들이 도를 구하는 데 있어 각자의 근기에 따라 참선수행·기도수행·염불수행을 하게 되듯이 나는 이번 단기출가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수행활동 중에서 무엇보다 발우 공양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됐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불자라면 누구든지 이 게송을 떠올리며 한 끼 식사라도 여법하게 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