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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사리탑에서 새벽정진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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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서수길 2002년 08월 246호
프롤로그
인간은 누구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 삶은 무엇일까, 이 삶의 끝은 어디인가, 하는 잠재적 의문부호는 개인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부지불식간에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생활을 열심히 했을 뿐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한 일 또는 공부와는 병행되지 않는 삶을 영위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A.H. MASLOW가 인간의 욕구단계에서 자아실현의 욕구를 최상위층에 두고 있듯이 인간은 생리적 내지 안전욕구 해결만으로는 항상 무엇이 비어 있는 듯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보다.
나 자신 또한 여태까지의 삶을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왔지만, 항상 어딘가 한 구석이 비어 있는 듯한, 이 길만을 가서는 안 될 것 같은 허전함 내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채 약간은 허둥대는 삶을 살아오고 있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 절 근처에는 자주 갔었고 불교에 관한 약간의 책들은 읽기도 했지만, 생활의 지주로 마음속에 자리매김하지 못했던 나에게, 이러한 욕구를 해결해 줄 것 같은 마음속의 기대감으로 4박 5일의 짧은 출가를 결심했다.

첫째 날
언제나 올 때마다 좋은 곳이다. 막혔던 가슴 속이 후련해지고 답답했던 머리 속이 깨끗해진다. 멀리서 가야산이 바라보이면서부터 홍류동 계곡 속으로 들어감에 따라 심호흡은 더욱 깊게 들여마셔지고 전체 몸속으로 전기에 감전된 듯 깊은 떨림이 느껴진다.
부처님께 삼배드리고 대적광전 옆에 서서 건너 산을 바라본다. 이 곳에 서면 이렇게 마음 속에 평온이 느껴지는데, 두고 온 속세가 실제 거리보다는 더욱 아득하게 느껴진다.
뎅그렁, 맑고 청아한 풍경소리가 상념을 흔들어 깨운다. 몸은 이미 이 곳에 와 있는데 마음을 아직 가져오지 못했음을 경책하는 듯하다.
오후 1시 수련회 접수를 마치고 수련생활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이어졌다. 수련회 프로그램은 평소 스님들의 생활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는데, 묵언과 차수, 그리고 하심이 입재식 이후로 회향식까지 지켜져야 한단다. 인간이 말을 않고 살 수가 있는 것일까. 말이란 의사전달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인데. 그런데 말이 많아지는 만큼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시간이 줄어들어 수행에 큰 장애가 된다는 설명이시다. 지킬 것을 다짐해 본다. 차수란 걸음을 걸을 때, 양손을 자유롭게 흔들고 다니지 말고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고 조용히 걷는 것이다.
걸을 때 또한 손을 흔들고 다니면 마음이 조용히 자리잡지 못하여 수행에 장해가 된단다.
하심은 항상 자신의 아상을 버리고 낮추는 마음의 자세이다. 이는 남을 먼저 배려하고 받들고 베푸는 마음으로 대중생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앞으로 이 곳을 수료하더라도 나의 삶에도 항상 하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발우공양. 수행자의 의식주는 수행의 과정이므로 간결하고 깨끗하다. 먹는 것 또한 수행의 한 방편이다. 초행자에게는 어렵고 힘들었지만. 평소 포식하고 음식에 대한 감사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부끄러워진다. 자기가 먹은 음식의 찌꺼기까지 깨끗하게 씻어 자신이 마시는 공양은 더 없이 자연 친화적이다. 이러하다면 우리의 환경문제는 저절로 사라질텐데. 산속에 절이 있어도 그 계곡이 항상 청정함을 유지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둘째 날
새벽산사의 시원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심호흡을 하고 조용히 가다듬는다.
법고를 두드리는 스님들의 손에서 법고가 울리는지 장삼자락에서 울리는지 모두들 넋을 읽고 바라다본다. 법고 소리는 진한 감동을 가슴 속으로 밀어넣고 마음을 비워내게 한다.
많은 선지식과 고승대덕을 배출한 도량답게 해인사의 새벽예불은 그 염불소리에 기상이 서려 있고 낭랑하기 이를 데 없다. 새벽예불이 끝났지만 아직 새벽 4시.
처음 가져 보는 참선시간. 가부좌가 숙달되면 가장 편안한 자세라는데 반가부좌로 앉아 보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다리가 결리기 시작하고 허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조주 스님으로부터 유래한 ‘무’자 화두를 들고 정신을 모으지만 집중하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집중했다 싶으면 어느새 생각은 딴 곳으로 가 있음을 느끼고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죽비소리에 마음을 다잡기를 수차례, 힘들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맑게 해 주는 시간이다.

셋째 날
새벽예불이 끝나고 오늘은 성철 스님 사리탑터에서 새벽 참선이 이어졌다. 산속의 새벽공기가 향기롭기 그지없다. 새소리는 우리를 축복하는 듯하다. 좌정하고 정신을 모아 화두를 참구해 본다. 성철 스님의 도우심인지 오늘은 한결 정신집중이 여의하다. 많은 생각들이 조용히 다가온다.
수련생활을 마친 뒤에도 화두를 참구하는 참선이 아니더라도 조용히 좌선을 하며 생활의 중심을 잡아나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오후의 《반야심경》 사경시간. 글 한자를 쓸 때마다 절을 한 번 한 후에 사경하는 방식이다. 글을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도 수행의 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모두 268자, 죽비소리에 맞추어서 절을 하고 사경하는데 그 속도가 무척 빠르다. 한 획 한 획을 정확히 쓸 시간이 없으니 더욱 정신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100자도 아직 못 썼는데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무아의 경지에서 절을 드리고 글자의 획을 그었다. 드디어 사경을 마무리지었고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건만 가슴 속이 시원하고 더없이 후련하다.

넷째 날
오늘은 1080배를 하는 날. 처음부터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의지를 주십사 부처님께 합장한다.
부처님께 3배드린 후 1080배가 시작되었다. 나는 바라는 원을 가족의 건강과 아비인지라 자식의 학업성취에 두었다. 1배 2배가 부처님께 올려지고 있다. 법우들 모두 진지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절을 한다. 100배를 넘어서면서 일어서는 동작이 느려지고 200배, 300배가 되니 대부분이 한 호흡씩을 쉬고 있다. 400배가 가까워오자 나 역시 호흡이 턱에 차오른다. 힘들다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서원한 바가 있지 않은가. 540배에 이르자 습의사 스님은 중간 휴식시간을 주신다.
이마와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몸도 땀으로 목욕이 된 상태다.
휴식 후, 1배 1배에 정성을 들인다. 몸은 이미 파김치가 되었지만 믿을 건 정신력뿐이다. 죽비소리가 울리고 절을 올린다. 머리 속은 아무 생각이 없어진 지 이미 오래다. 어디까지가 나의 한계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멈추진 않으리라. 어느덧 죽비소리가 멈추었다. 아! 드디어 1080배를 마무리한 것이다. 가슴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환희가 솟아올랐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날
새벽예불 후 수계식이다.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죄업을 지었을 것인가. 계사스님의 5계에 대한 설법이 이어지신다. 두렵고 걱정이 앞선다. 살아가면서 늘 깨어 있는 정신으로 살아 가야 한다. 악업을 멀리하고 선업을 짓기 위해서. 팔뚝에 있는 연비자국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속에 연비를 하면서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에필로그
수련대회는 회향하였지만, 인생의 회향처는 아직도 가야 한다. 생을 회향하는 그날까지 부처님께, 부처님의 법에, 스님에게 귀의하여 부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리라. 해인사는 짧은 출가 긴 그리움으로 가슴 속에 자리잡아 생이 여의치 않을 때 우리를 안온하게 해 줄 고향이 되어줄 것이다.
내 주위가 모두 나의 수도처요 나의 주위사람이 나의 도반이니 생활속의 수행인이 되어 짧은 출가의 정신을 구현할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