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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행의 거사풍居士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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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정성호 2002년 08월 246호

우리 재가의 거사居士는 세속에서 맺어진 생업을 가지고 혈연을 보살피면서 선지식을 찾으면서 집을 지킨다. 한낱 ‘덤불에 걸린 연’이요, ‘새장에 갇힌 매’이지마는 항상 푸른 꿈이 남과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붓다·고오타마를 따라서 그 가르침을 듣고 그 실천에 노력한 자는 결코 출가한 제자들만이 아니고, 또한 많은 훌륭한 재가의 불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나율의 형인 마하나아마가 선택한 길은 어쩔 수 없이 가업을 잇기위해 속세의 티끌을 뒤집어 쓰면서도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는 길이었다.
재가의 길이란 설사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속세 가운데 있더라도 불佛에 귀의하고, 법法에 귀의하고, 승僧에 귀의함으로써 능히 법의 흐름에 들 수 있다. 그것이 우파아사카(우바새), 즉 재가의 거사라는 것이다. 삼보三寶에 잘 귀의할 때, 그 사람은 불교의 흐름에 끼어든다고 보는 것이며, 그것이 재가 불자의 존재방식인 것이다.
예컨대 여기 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하자. 그 나무는 동쪽을 향해서 동쪽으로 기울고 동쪽으로 뻗어 있는데 그 뿌리를 누가 자른다고 한다면, 그 나무는 동쪽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재가 불자 또한 목숨이 다해 몸이 망가진 다음에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좋은 생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예류預流, 즉 법의 흐름에 관여하여 법의 흐름에 들게 된다는 것이다.

출가出家이든 재가在家이든 불자라면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심下化衆生心, 즉 보살이 우러러서는 자리自利를 위해 깨달음을 구하고, 엎드려서는 이타利他를 위해 세상사람들을 구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대승의 보살행을 구현하는 보살도 실천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우리들은 각자 자기의 독창적인 소질과 능력을 개발하고 이웃과 인류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자비심을 구현하는 보살도를 실천하자.
여기에서 우리는 그같은 훌륭하신 재가거사들의 행적을 선禪의 수행과 창의적인 지혜를 중심으로 한번 떠올려 불법을 바르게 이해하여 각자 ‘주主 바라밀행’으로 정해 보자.
출가를 하지 않았어도 닦아야 하는 도리를 부처님께서 설하셨고, 유마 거사가 보이셨고 방 거사, 부설 거사가 뒤를 이었다.
인도의 유마힐(유마 거사)은 안으로는 진리를 품었고 교화의 힘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세속의 티끌 속에 있으면서도 결코 마음이 젖지 않았고, 물들지 않았으므로 이름하여 깨끗한 이름(淨名), 때묻지 않은 이름(無垢稱)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위대한 재가의 불자를 중심으로 한 《유마힐경》은 반야사상을 이어받아 공의 실천에 관한 정수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선禪과는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
더욱이 인도에 있어서 최초로 대승경전의 교의를 대성한 용수는 대품반야경을 주석한 《대지도론》에서 자주 《유마경》을 인용하고 있다.
대승불교의 백의거사인 유마힐로 하여금 편협한 소승적 사상을 비판하고 대승사상을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게 한 점은 다른 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색이다.
더 나아가 중국 선종의 발전에 있어서 6조 혜능(638~713)의 제자들이 활약할 무렵에 와서야 선종이란 이름은 명실공히 국가불교집단의 하나로서 성립되고, 당시 재가 불자의 힘이 대단히 컸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선승이 사원 내부에서 수행·포교·구제를 행했다고 한다면 신자는 사원 밖에서 일반에게 널리 퍼진 선승이라고 할 정도로 선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방온 거사를 대표적으로 거사 재속세계가 선禪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신라 때 부설 거사는 도인거사로서 계戒와 정定이 정명精明하고 식견이 예민하여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자기 아내 묘화, 아들 등운, 딸 월명도 모두 깨달은 도인이라고 전하지 않던가.

인간을 비롯한 우주만유의 모든 존재들은 저마다 그 인연에 따른 목적이 있고 삶의 의미가 있겠다. 그런데 최상의 성인이시고 사생四生의 어버이시고 삼계의 스승인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현하신 서원과 목적은 크고 깊어서 이루 헤아릴 수 없으나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일대사 인연一大事 因緣이라고 한다.
정녕 출격장부出格丈夫가 되는 불법의 흐름에 들어 선지식善知識(바른 도리를 가르치는 스승)을 가까이 만나, 바른 법을 청해 듣고, 그 뜻(본질)을 생각하고, 그 참뜻대로 수행(기도, 염불, 간경, 참선)해야 짝할 바 없는 장부가 되는 것이리라.
마음의 믿음은 불도의 근본이 되므로 바르게 수행해서 본래 마음자리로 돌아갈 때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되며, 궁극에는 만법을 창조하는 참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이로써 불교의 근본이 ‘참주인’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만법의 근원자리요, 생명의 실상實相이기 때문이다.
“불자는 마땅히 처하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지금 서 있는 곳이 영원히 진실한 곳, 여여如如한 곳이 되리라.” ‘지금-여기-자기자신’이 처한 그 일에 열중할 일이다.
결국 주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음이 안정(定)한 공부정진을 해서 참답게 지혜로워져서, 지혜(慧)로 비추어 보면 안과 밖이 밝게 사무쳐서 자기의 본심(自性)을 알아, 석가세존처럼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하리라.’(세계에서 나홀로 존귀하도다. 3계의 생존은 모두 괴로움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이는 자기의 존재가 가장 존귀한 것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체의 모든 것은 각자 지극히 존귀한 존재임을 깊이 인식하고 서로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며 돕고 살아가야 함이요, 이것이 대자대비의 보살정신이며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도 실천인 것이다.
“마치 푸른 목의 공작이 하늘을 나를 적엔 도저히 백조의 빠름에 미치지 못하듯이, 집에 있는 자는 세상에서 떨어져 숲속에서 명상하는 성자·수행자에 미치지 못한다.”《숫다니파타(經集),무니경》 할지라도 우리들 재가거사들은 만유중생과 더불어 오염이 없는 청정한 불국토 건설을 지향하여 정진을 배가하고, 교법을 홍포하고 나라와 민족에 헌신하는 대도大道의 선도자가 되어야만 거사居士라는 그 뜻에 걸맞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본래면목을 밝혀 높고 아득한 진리의 문을 꿰뚫어 보세! 나무 마하반야 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