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바가 부처님께 소리공양을 올리니 그 때 산천과 대지가 모두 거문고 소리를 내었습니다.
이에 가섭 존자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종문에 전해오는 ‘건달바헌악乾婆獻樂’이라는 공안의 내용입니다.
건달바의 음악소리에 부처님의 상수제자 중 으뜸이라고 하는, 아라한 중에서도 대아라한인 마하가섭이 춤을 춘 사건은 그야말로 보통 일이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는 선가에서 많은 의단疑團을 불러 일으켰던 것입니다.
율장에서는 ‘불가무창기不歌舞倡伎 불왕관청不往觀聽’이라고 하여 직접 노래부르며 춤추거나 또는 가서 보거나 듣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는 수행자로 하여금 몸과 입의 허물을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오백명의 신선들이 신통력으로 함께 하늘을 날아가다가 땅 위에서 아름다운 무희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넋을 잃고 보다가 그 자리에서 모두 신통력을 잃어 버린 까닭에 땅 위로 떨어질 만큼 춤과 노래는 마음을 방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내가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것을 허용하였던 것입니다.
《법화경》에서 “온갖 미묘한 악기소리로 부처님께 공양하거나 환희심으로 부처님의 덕을 칭송하는 노래를 한다면 모두 불도를 이룰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종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음악과 춤 그리고 악기까지도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그리고 법거량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런 점에 선종의 수승함이 있는 것입니다.
호주湖州 지방 서여사西余寺 정단淨端 선사는 사자춤을 보고서 마음법을 단박에 깨치게 되었습니다.
그 뒤 항주杭州 용화사龍華寺에 주석하고 있는 제악齊岳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선사를 만나자마자 바로 몸을 뒤집으면서 사자춤 흉내를 내보였습니다.
이에 제악 선사는 그것을 보고서 인가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로 총림에서는 그를 ‘단사자端獅子’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자춤을 보다가 한 순간에 깨침을 얻었고 또 그 사자춤을 스승에게 보여줌으로써 인가까지 얻은 인연으로 별호까지 얻게 된 경우라고 할 것입니다.
혜충 국사에게 숙종황제가 광대놀이 구경을 함께 가자고 하였습니다. 이에 국사가 물었습니다.
“어느 몸과 어느 마음으로 구경을 하오리까?”
몸도 마음도 다 공空한 것인데 어느 것으로 보고 말고 할 것이 있느냐고 되물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가 거듭 청하니 국사가 다시 말했습니다.
“구경을 몹시도 좋아하시는군요.”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국사의 앞의 말씀과 뒤의 말씀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를 두고서 도종문에서는 견해가 분분했던 것입니다.
이 역시 하나의 의심덩어리가 되어 고래로부터 많은 납자들이 참구해 왔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악기를 다루는 것과 춤추는 것을 가지고 법문을 하신 것이 적지 않습니다.
《잡아함경》에는 유명한 ‘거문고 줄 비유’가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공부하느라고 너무 애쓴 나머지 몸이 상할 대로 상해 버린 수행자가 걱정스러운 나머지 혜안으로 그의 전직前職을 알아보시고는 일부러 물었습니다.
“너는 출가 전에 무슨 일을 했느냐?”
“거문고를 즐겨 탔습니다.”
“거문고 줄이 느슨하면 소리가 잘 나는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줄이 너무 팽팽하면 어떠냐?”
“그것도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느슨하지도 않고 팽팽하지도 않고 알맞으면 어떠한가?”“맑은 음향이 고루 퍼집니다.”
“도를 배우는 법도 역시 그러하나니라. 정진이 너무 급하면 그 들뜸을 더하고, 정진을 너무 느슨하게 하면 사람을 게으르게 한다. 그러므로 집착하지도 말고 방일하지도 말라.” 이 말씀에 그 수행자는 자기의 공부태도를 다시금 점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유명한 중도법문의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아난 존자가 어느 날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오늘 성 밖에 나갔다가 제가 기이한 일 하나를 보았습니다.”“무슨 기이한 일이 있었느냐?”
“성에 들어올 때는 한 패거리의 풍각쟁이가 춤을 추는 것을 보았는데, 성에서 나갈 때는 모두가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말했습니다.
“나도 어제 기이한 일 하나를 보았느니라.”
“어떤 기이한 일이었습니까?”
“내가 성에 들어올 때에 한 패거리의 풍각쟁이가 춤추는 것을 보았는데, 성을 나갈 때에도 그들이 춤추는 것을 보았느니라.” 이에 아난 존자는 부처님의 그 말씀을 듣고 깨친 바가 있었습니다.
아난 존자가 성에 들어올 때는 춤구경을 하였고 나갈 때는 그들이 죽었다고 했지만 사실 부처님께서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모두 춤추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신 것과 별로 다른 말은 아닌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아난 존자 말의 연장이라고 옛 선사들은 평評하셨던 것입니다.
‘건달바헌악乾婆獻樂’ 공안에 대하여 수산 주修山 主 스님이 징원澄源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건달바가 음악을 연주하면 수미산이 기우뚱하고 바다에선 파도가 높이 일어나며, 가섭은 춤을 춘다고 하였는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가섭은 전생에 악사樂士였기 때문에 그 습習을 아직 없애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수미산이 기우뚱하고 파도가 높이 일어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그러자 징원 스님은 대답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춤추는 가섭 존자를 보고 건달바 역시 의아했던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가섭은 대아라한으로 모든 번뇌가 다하였는데 아직도 저런 전생의 습習이 남아 있습니까?”
“남아 있는 습習이 없다. 공연히 법을 비방하지 말라.” 이에 다시 건달바가 거문고 가락으로 세 곡을 탔습니다.
그러자 가섭이 또 세 차례 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건달바는 다시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가섭이 춤춘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춤춘 일이 없느니라.”
이에 건달바는 부처님께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저렇게 분명히 춤을 추었는데 세존께서는 어째서 거짓말을 하십니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대가 거문고를 탔으니 산천과 대지와 목석이 모두 거문고 소리를 내는 것이 사실이 아니냐?”
“그러하옵니다.”
“가섭도 역시 그러니라. 그러기에 춤을 춘 일이 없느니라.”
춤을 추어도 춤을 추지 않은 이것이 바로 도인의 경지인 것입니다.
또 그런 경지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야말로 부처의 경지라고 할 것입니다.
다생습기多生習氣를 중염롱重拈弄하니
해용산요막관타海湧山搖莫管他로다.
여러생의 습기를 다시 잡고서 희롱하니
바다가 솟건 땅이 흔들리건 관계치 않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