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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學士臺 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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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2년 07월 245호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1705~1786) 선생은 대구 옻골에 살았던 학자이다. 백불암은 1757 년(영조 33) 2월에 가야산 아래 귀담龜潭의 곽씨郭氏 집에 들렀다가 머물렀던 집 주인의 권유로 일찍이 마음먹었던 가야산 유람을 결행하였다. 병든 몸을 무릅쓰고 쇠잔한 말을 채찍질하여 곽일주郭日柱(1731~1795)라는 사람과 함께 해인사에 당도했는데, 때는 2월 17일이었다. 이튿날 경내의 대적광전 장경각 시왕전十王殿 진상전眞常殿 학사대 관음암을 차례로 보고 저물녘에는 원융료圓融寮에 돌아와 유숙했다.
백불암의 이 날 유람은 그의 시문집인 《백불암집》 가운데 <유가야산록遊伽倻山錄>에 자세하다. 특히 학사대에 이르러 기록하기를 “최치원 선생이 손수 심은 소나무(실제로는 전나무)가 이미 말라버리고 그 등걸만 남았다. 지금 마침 2월이고 비가 오니 소나무를 심기에 적합하므로 종을 시켜 4그루의 작은 소나무를 캐서 그 곁에 심게 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곳에서 최치원 선생의 시에 차운次韻하여 읊기를, 말은 쇠잔하고 사람은 병들어 길은 높고 험한데 (馬殘人病路高巒)서쪽으로 운무 사이 솟은 우두산[가야산] 바라보네 (西望牛頭出霧間)그대가 부지런히 나를 인도하지 않았던들 (不有吾君勤導我)어찌 만 겹 산중에 깊이 들어올 수 있었으랴 (何能深入萬重山) 라고 하여 동행한 곽일주에게 사례했다.

백불암이 학사대에 오른 때로부터 245년이 지난 지금의 학사대에는 ‘말라버리고 그 등걸만 남았다’고 한 전나무가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견디며 여전히 건재하게 서있다. 고목이 회생 함이던가. 몇 아름 되는 등걸 위에 새로 난듯한 줄기가 또한 아름드리로 힘차게 가지를 뻗으며 하늘을 찌르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건대, 2~3백 년 됨직한 굵기의 전나무 4그루(1그루는 이미 枯死)와 소나무 2그루가 정정한 모습으로 가운데의 전나무를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다. 이 중에 어느 것이 과연 당시에 심은 나무일까.
백불암이 나무 심고 시 읊던 모습을 상상하며 이 나무 저 나무 어루만지고 배회하다가 머리를 돌려 바라보니 그 때처럼 운무 사이에 가야산이 아스라이 솟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