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奈良) 고후쿠지(興福寺) 절과 아수라상阿修羅像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성보여화 - 김진숙
2002년 07월 245호
흔히 일본은 마쯔리(축제, 祭)의 나라라고들 한다. 일본 전국 각지에서는 거의 1년 내내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린다. 특히 여름이면 불꽃놀이와 더불어 성대한 축제가 열려 더위를 잠시 잊는다. 교토에도 많은 축제가 있는데 그 중 7월 한 달 내내 열리는 기온마쯔리(祇恩祭) 축
제는 너무도 유명하여 아마 이 축제를 모르는 일본인은 없을 것이다. 기온마쯔리 축제는 천여 년의 전통을 이어 온 본래 야사카진자(八坂神社) 신사의 제례였다.
6월 말이면 벌써 시내 번화가에는 축제를 위한 장식이 걸리고 특이한 리듬의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축제에 사용되는 거대한 가마가 시내 곳곳에 설치되면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는다. 각 가마에는 가마를 담당하는 신神과 사람들을 인형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주로 진귀한 직물과 카펫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가마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임시 전시관으로 변하고 어린이들과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태운 이 거대한 가마들을 끌고 시내를 한 바퀴 돌 때면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유카타(여름용 일본고유 복장) 차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축제는 절정에 달한다. 한편 기온마쯔리 축제 때 교토의 상인과 장인들은 그들의 집을 개방하고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들을 특별히 일반에게 공개하는데 이 또한 볼거리들 중의 하나이다.
오늘은 나라(奈良) 고후쿠지(興福寺) 절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나라 공원 안에 있는 고후쿠지 절은 나라와 헤이안(平安) 시대를 걸쳐 당시 최고의 권세를 누리던 가문 중의 하나였던 후지하라(藤原) 가문의 후원을 업고 법상종法相宗 중심 사찰로서 번성을 누렸다. 그러나 긴 세월 동안 전쟁과 화재로 인해 많은 건물과 탑이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후쿠지 절은 나라 공원과 특별히 경계가 없어 언제나 사람들과 사슴들로 붐빈다. 다만 금당 등을 보려면 그 앞에서 배관료를 내고 들어간다. 동금당東金堂은 언제나 배관할 수 있으나, 남원당南圓堂은 일 년에 하루(10월17일)만 문을 열지만 올해는 국보 특별공개 제3탄으로 특별히(10월 6일~11월 11일) 배관할 수 있다. 북원당北圓堂도 봄(4월 27일~5월 6일)과 가을(10월 26일~11월 11일) 두 차례만 공개한다. 이 세 당에는 국보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많은 불상들이 안치되어 있다. 특히 북원당은 텐표(天平) 시대와 가마쿠라(鎌倉) 시대의 뛰어난 작품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외에도 고후쿠지 절은 국보관國寶館이 있어 불상조각, 회화, 공예품, 전적문서, 고고자료 등 많은 문화재를 수장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우수한 작품들은 전시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하쿠호(白鳳) 시대의 약사여래 불두佛頭(685년, 銅造)를 비롯하여 텐표 시대의 팔부중상八部衆像과 십대제자상(734년, 乾漆造), 헤이안 시대의 판조板彫 12신장상(木造), 가마쿠라 시대의 천수관음상과 법상法相 그리고 육조六祖좌상(木造) 등이 있다. 특히 팔부중상과 십대제자상은 고후쿠지 절을 대표하는 상들이다. 이 상들은 원래 고후쿠지 절 서금당西金堂의 본존의 권속 또는 수호신으로서 안치되어 있던 30구 정도의 군상群像의 일부였다고 전한다. 이 상들은 모두 등신의 크기로 비교적 가느다란 몸체를 하고 있으나 이는 좁은 공간에 많은 상을 안치하기 위한 군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십대제자 중의 수보리須菩提와 팔부중 중의 사갈라沙羅, 건달바乾婆, 오부정五部淨(하반신은 없음) 등의 얼굴 표현이다. 모두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친근하고 예쁘장한 소년의 모습이다. 보는 사람마다 모두 ‘와’하는 미소를 떠올린다. 나와 같이 보고 있던 소년 둘이서 그 앞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원래 팔부중은 인도 고유의 신들이었지만 불법에 귀의하여 수호신이 된 여덟 신들을 말한다. 특히 아수라는 여러 천신天神 특히 제석천帝釋天과 격렬한 싸움으로 수라장修羅場이란 말이 생
길 정도로 전투적인 귀신으로 알려져 있다. 고후쿠지 절의 아수라상(사진, 상 높이 153.4㎝)은 세 개의 얼굴을 하고 길고 가느다란 여섯 개의 팔을 가진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그 얼굴은 실로 청순하고 불가사의한 매력을 느끼게 해 준다. 전투의 복장 대신 조백條帛과 천의를 걸치고 하반신에는 치마를 입고 있다. 심지어 목과 팔뚝, 팔목에 장식마저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가느다란 몸매를 하고 있으나 가늘고 긴 여섯 팔 때문에 더욱 여린 느낌을 받는다. 여섯 팔 중 두 팔은 하늘을 향해 받치고 있으며, 또 다른 두 팔은 합장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 두 팔은 무엇인가를 감싸 안으려는 자세이다. 각각의 팔들은 따로 떼어서 보면 그 나름의 자세에 맞고 또한 전체적으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얼굴을 보면 우선 양 눈썹 언저리의 끝이 약간 치켜 올라가 있는 것이 주의를 끈다. 어찌 보면 찌푸린 표정으로 보이기도 하고 전투신이었던 아수라의 이미지를 느끼게 하는 미묘한 표정의 변화가 이 눈썹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두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있으나 안정되고 정감 있다. 오뚝한 코, 다물고 있는 작은 입, 눈 밑의 양 볼과 턱의 볼륨은 이목구비가 또렷한 미소년의 이미지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 또한 머리카락은 기름 바른 머리에 빗으로 가지런히 빗은 것처럼 한가운데에 가르마를 타고 양쪽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빗어 넘겨 틀어 올리고 있다. 머리 모양은 전체적으로 약간 부풀어올라 있다. 이와 같은 머리카락의 사실적 표현은 다른 팔부중의 머리카락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섬세한지 알 수 있다. 정면에서 보면 잘 알 수 없으나 옆에서 보면 약간 엉덩이를 뒤로 빼어 무게 중심를 양 다리에 균등히 둔 채 상체 를 약간 앞으로 구부린 자세로 서 있다.
이 아수라상은 다른 팔부중상과 십대제자상과 더불어 텐표 시대의 대표적인 미의식을 표현 한 작품이다. 이 시대는 전투적인 이미지도 아니고 고승의 근엄한 얼굴과도 다른 정감 어린 소년상의 얼굴도 선호되었음을 이 상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절의 남쪽으로 나와 사루사와이케(猿澤池) 연못가에 앉아 고후쿠지 절을 바라보며 시원한 음료수 한 잔을 마시면서 더위를 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