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은 조용히 바쁘다.
아침 6시 반, 이미 세민 주지 스님은
두 차례 내방객을 맞고 난 뒤였다.
7월 5일 해인사 성보박물관
개관을 얼마 남겨 놓고 있지
않은 때였다. 산중 임회에서
박물관 건립 추진이
승인된 때로부터 따져도
만 7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 뒤에
이루어진 일, 지관 스님 때에
시작되어 그로부터
세 번째 주지 소임을 맡은
그에 이르러 완성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주지 세민 스님의 마음이
썩 가볍지만은 않다.
귀중한 문화 유산들을 한데
모아 놓고 탈없이 그것들을
건사해 낼 일도 걱정이다.
박물관이 단순한 유물 보관소가
아닌, 역동적인 포교의 장이
되게 할 구체적인 내용 짜기는
박물관 소임자들이 맡아
할 일이지만, 그 구상을 현실화하게
되는 것은 재정일 터인데, 자립을 하기까지는 전적으로
사중의 지원으로 꾸려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보면, 절 살림을
맡고 있는 주지 소임자로서는
또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스님은 기본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보는 일에서부터
출발할 작정이다. 그 기본이란
성보 및 문화재에 대한 애정이다.
사찰 박물관을 짓는 첫 번째 의미는
유물을 잘 보존하여
더 이상의 망실이나 훼손 없이
후대에 잘 전해 주는 것이다.
스님께서 76년에서 81년까지
일본불교대학(일본 정토종
종립대학)에서 불교학과
학부 과정을 마치는 동안, 신앙의 대상인 성보를 포함한
문화재 전반에 대한 일본인들의
높은 의식 수준에 매우 놀랐다.
당신이 보기에,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서 땅이 물 속에 가라앉게 되면, 일본 사람들이 가장 먼저 챙겨
나올 것은 ‘백제관음상’이라는
이야기는 농담이 아닐 것
같았던 것이다.
일반 불자들이 집안에 모셔 둔
불단을 대하는 태도나
꾸미는 수준을 보아도 그렇다.
언젠가 삼성문화재단이 일본이
보관하고 있는 고려 불화를 모아서
국내에 소개한 전시회를 보면서, 소유주가 바뀐 것에 대한 유감은
없을 수가 없었지만, 일본인들의 그런 인식 덕분에
그것들이 그렇게 잘 보존되어
왔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국내에 남아 있는
불교 문화재 수효가 빈한한 것은, 잦은 전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보를 ‘관리’하는 산문
안의
특별한 의식도 한몫 했으리라고
그는 짐작한다. 불상이나
탱화가 훼손되면, 의식儀式을
갖추고 파묻거나 태워서
그 자취마저 없애 버리곤 했다.
점안을 하여 모신 분에 대한
우리의 예의가 그러했던 것이다.
유물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론이
있을 수 없겠으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저마다
생각이 좀 다르다.
우선 신앙의 대상인 성보를
박물관 같은 데 ‘보관해’ 두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의견도 많다.
해인사 박물관의 경우, 원래의 공간 형식대로 모시어, 성보로서의 역할을 최대한
유지하게 하려고 한다.
태조 왕건이 삼국을 통일할 때
큰 힘을 보탰다는 희랑 조사 조상은
주변을 예배 공간으로 꾸미고, 탱화 앞에는 촛대와 향로까지
갖추게 한 뒤에, 절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한다는 식이다.
전시의 묘를 살리기만 한다면, 유물이 지닌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여 감상할 수 있는 곳, 그것이 박물관이라는 인위적
공간의 묘미이기도 한 것이다.
‘뮤지엄’의 어원은 살피고
들어가면 ‘신의 처소’라는
의미가 된다. 일주문에서부터
맨 꼭대기의 장경각에 이르기까지,당우가 대칭형으로 서 있는
도량은 아닌 게 아니라
부처와 보살과 조사들의 처소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곳이다.
박물관은 그것을 압축해
놓은 곳이라 할 만하다.
장경각의 상징을 그대로 담되,구태에 머물지는 않는다, 그것이 현대적 건물의 뜻이려니와,박
물관은 사찰의 역사와
조사 스님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자, 현재와 미래를 생산적으로
연결해 내는 교육장이라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박물관 건물이 들어선 곳은
옛날에 해인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이다. 나이 드신 스님들이나
부락 사람들은 ‘허덕교 옆’이라고
해야 얼른 알아듣는, 진입로가 끝난 해인사의 들목에
해당하는 곳이다.
입구의 조경 공사도 마무리가
덜 되었고, 비가 내려서 그런가, 건물 앞의 빈터에는 포크레인이
삽날을 땅에 박은 채 쉬고 있다.
도무지 인기척이라고는 없어서, 개관일을 맞추기나 할지
쓸데없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지하층으로 내려가니, 사무실의 준비 상황 점검표에는
‘박물관 등록:초청장, 방명록, 포스터 제작:개관식 자원 봉사, 행사 프로그램 기획:주변 정
리,매표소 설치:기계 설비 보수
및 설치’ 따위의 메모가 적혀
있어서 ‘조용히 바쁜 산중’임이
다시금 확인된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 연건평 1000여 평으로서, 개관이 되면 사찰 박물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가 된다고 했다.
유리창 비중을 높이어
주위 경관을 건물 속으로
끌어들인 점이 외형적 특징이다.
21세기에 걸맞는 사찰 문화 공간을
조성할 때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서울 〈예술의 전당〉을 만들어낸
김석철 씨가 설계했다는
박물관은 전통식이 아닌
현대식 건물이기는 하나, 산중이라는 입지를 고려하여
건물의 쇠된 각도를 최대한
누그러뜨린 것이다.
둥근 돔형의 지붕 선도 그렇고, 맑은 나무색과 흰색 벽, 그리고 부드러운 회색 지붕 등을
주조로 삼은 것도 조심성 있어
보인다. 건물의 외관에는
장경각 출입문의 둥근 선과, 위 아래의 크기를 다르게 하여
공기의 순환을 돕는 살창문을
재현시킴으로써, 법보 사찰인 해인사의 상징성을
부각했다.
박물관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유물은 모두 800여 점, 그 가운데 희랑 조사 조상, 선조 임금이 사명 대사에게
내린 작은 종과 봉황 쌍촛대, 그리고 장경각에서 나온
광해군 옷, 보리수 잎에 새겨진
오백나한도, 단원의 8폭 병풍 그림,추사의 상량문 등이
손꼽을 만한 것들이다.
유물은 불상 및 조각, 회화, 공예품, 조사 영정 등으로
분류되어 1층과 2층에 전시되는데, 동선은 나선형 계단을 따라
지하층에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했다.
건물의 내벽도 거의가 곡면으로
처리된 점이 특이하다.
이 가운데 관람객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한 것은, 지하층에서 1층으로 연결된
대형 벽면에 걸리게 될
괘불일 듯하다. 국보 보물급인
산청 율곡사 괘불, 진주 청곡사 괘불 등을
바꾸어 가며 전시할 예정이다.
현재 대적광전에 있는
보물 영산 회상도 개관기념으로
중앙 홀에 일정기간 모실 예정이다.
사찰에 보관되어 있는
대형 괘불은 일반인은
참관이 거의 불가능하다.
큰 야외 행사 때만 내걸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말아서 괘불함에다가
모셔둔다. 사찰 박물관에서도
통도사의 경우말고는
이런 규모의 괘불이 상시로
전시되고 있는 곳은 없는 만큼, 자외선 등 보존의 문제에 무리만
없다면, 이 곳을 찾는 이들에게는
귀한 볼거리가 될 듯하다.
그리고 일주문 앞에 위치한
호국진혼탑으로 알려진 길상탑에서
출토된 토탑土塔 수십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여하여
개관기념으로 특별전시할
계획도 잡아 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배려가
없지 않은데도, 일반인에게는
이 절이나 저 절이나 전시된
유물은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이기
십상이다. 사찰 박물관 건립의
본디 의도와는 달리, 현재 말사에서는 보유하고 있는
유물을 본사 박물관에
위탁 보관하기를 꺼리는 추세이다.
이는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로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으로서, 지역민들로서는 없는 것이라도
만들어 지역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내세워 수익을 늘리려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충분한 준비 없이 마련된 공간을
억지로 채우려 할 일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특징을 살리어
다른 곳과 구별이 되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해인사 박물관은 고려대장경을
주제로 삼아서 다른 사찰과
차별화하려 한다.
우선 장경각을 참관한다 해도
창살문 밖에서 겉보기로
끝날 수 있는 만큼, 이 곳에서 고려대장경에 관한
이해를 높여 주려 한다.
그것이 탄생된 역사적 배경과
경판의 우수성을 이해하고
느끼게 해 주려 한다.
경판 제작과 인경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는 것도
경판에 대한 흥미와 이해를
돕는 길일 것이다.
경판을 제작하는 전과정을
재현한 시각 자료도 제공된다.
‘책의 날’인 10월 11일은
고려장경이 완간된 날을 기리어
잡은 날짜이다. 이런 곳에서
목판으로 찍어 낸
불교 관련 책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는 일도 의미있는 일이자, 목판 인쇄의 문화적 가치를
다시금 인식하는 귀한 자리가
될 터이다. 다른 곳 아닌
이 곳 해인사 박물관에서
서지학이나 판각, 판화 등을
주제로 한 학술세미나를
여는 것도 뜻깊은 일이리라.
단순한 유물 보관 창고의 의미를
넘어, 새로운 문화 창조의
공간으로 자리하기, 이는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사찰의 공통된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이 곳 해인사의 경우, 대구와 마산 등, 도시와의 거리가 만만치 않아서
이용객이나 자원 봉사자들에게는
접근 조건이 좋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그런 조건으로 치자면, 연중 행사이기는 하나
‘만해시인학교’ 같은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백담사가
더 고약하다. 어쩌면 사람들이
해인사를 좋아하는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그 외진 환경일지도
모른다. 여름 수련회가
받고 있는 큰 호응도, 스스로 자신을 외부와 단절시키고
‘짧은 출가’길에 오른
사람들의 행렬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직은 칸도
질러지지 않은 채 텅 비어 있는
지하층의 너른 공간은 소임자들의
창작 의지를 가장 강력하게 불지필
공간이 되어 줄지도 모르겠다.
이 곳에서 엮어지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고, 사람들이 해인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별다른 만큼, 그 두 가지가 행복하게 만날 때
이 곳은 해인사와는 또다른 의미로
자리 매겨지게 될 것이다.
제 몸이 얼마나 더워져 있는지
알게 하기라도 하듯 가야산에
내리는 비, 초여름의 청신한 솔숲길, 도량어귀에는 팔만대장경
연등 축제와 월드컵을 축하하는
연등으로 꾸며져 있다.
진입로를 지나 경내로 다시 들어가니
‘난데없는’ 서양 가락이 들려 왔다.
대적광전 앞에 있는 보경당에서
독일의 5인조 재즈그룹인
‘살타 첼로’가 펼치는
작은 음악회였다.
템플 스테이, 축구 경기도 보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기회도 함께
가져 보려는 외국인들을 위한
사찰 문화 체험 현장, 그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중에 올린 소리 공양이었다.
서양 가락 가운데서도 재즈라니!
그 ‘난해한’ 가락이
울려 퍼지는 시각에, 노스님들은 처소에서 기침
두어 번 하시지는 않았을지.
이들은 오후에는 스님들과 함께
텔레비전으로 월드컵 관전을 하면서
‘대~한민국’을 함께
외치기도 했다니, 세계인이 공 하나로 한몸이 되기는
이 산중에서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취재·글/김영옥, 사진/홍현숙